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고성준 기자
“정책연구모임 등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친문계 핵심 의원은 해산한 부엉이 모임이 민주당 8·25 전당대회 이후 재탄생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계파 패권주의 논란을 빚었던 만큼, 가치와 사상, 이념 중심으로 진화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부엉이 모임은 지난 6월 말 서울 마포 인근에서 신입 회원 환영식을 한 직후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8·25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실상 영향력을 과시한다는 비판이 일자, 7월 5일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날개를 접은 부엉이 모임이 다시 날갯짓을 위한 준비에 나선 셈이다.
명분은 친문 직계의 정파그룹화다. 계파와 정파의 차이는 ‘사람이냐 가치냐’에 따라 갈린다.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 친문계와 비문(비문재인)계 등이 대표적인 계파그룹이다. 원조는 고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다. 반면 진보진영의 NL(민족자주파)이나, PD(민중민주파) 등은 대표적인 정파그룹이다. 한 정파는 계파나 정당과 관계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 친문과 비문 내 개혁파 의원이 한 정파를 구성하거나, 민주당 개혁파와 민주평화당이나 정의당 일부가 힘을 합쳐 정파그룹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부엉이 모임의 정파그룹화는 사실상 외부로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시절 수평적 당·청 관계의 실패나 열린우리당 분당 과정, 이후 10여 년간 분당과 창당을 반복하면서 정파그룹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초·재선 개혁 성향 의원이 주축이 된 더좋은미래가 출범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더좋은미래는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인 2015년 3월 수권전략을 위한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를 출범시켰다. 당시 책임운영 간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감독원장으로 지명됐던 김기식 전 민주당 의원이었다. 김 전 의원을 비롯한 22명의 의원은 1인당 1000만 원을 각출해 더미래연구소를 만들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정권 수립을 위한 정책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의 정신을 추구하는 민평련이 정책개발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고려해 연구 중심의 모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들은 주요직을 꿰찼다. 초대 이사와 2대 이사장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내각에 각각 참여했다. 김현미 의원은 국토교통부 장관, 홍종학 전 의원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각각 임명됐다. 이목희·김성주 전 의원은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았고 은수미 전 의원은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진성준 전 의원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개혁성향이란 교집합을 형성하지만, 계파별로는 친문계(김현미·배재정·신경민·진선미), 운동권그룹(우상호·이인영·유은혜·진성준), 정세균계(김성주) 등으로 나뉜다.
부엉이 모임도 정책연구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모델을 차용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부엉이 모임이 외부 문호를 개방해도 계파 패권주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다. 애초 부엉이 모임에는 ▲2012년 대선 전후 참여한 원조 부엉이 ▲2016년 4·13 총선 전후 모인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지난해 5·9 대선 전후로 합류한 범친문 및 일부 안희정계 인사들로 구분됐다.
‘원조 부엉이’ 소속으로는 3철의 핵심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비롯해 현 청와대 백원우 민정비서관과 정태호 일자리수석,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민주당 박남춘 전해철 윤호중 홍영표 의원과 노영민 주중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있다. 20대 총선 전후 합류한 회원에는 고용진 강병원 권칠승 박범계 박광온 황희 의원 등이 포함됐다. 이 중 황 의원이 간사를 맡았다. 김종민 박주민 이철희 정채호 의원 등은 지난해 대선 전후 합류했다.
부엉이 모임의 원조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담쟁이 포럼’이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만들어진 담쟁이포럼은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와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주축이 된 ‘문재인 지지’ 모임이었다. 실무 총괄은 카피라이터 정철 씨가 맡았다. 당시 공연기획자로 이름을 알린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도 합류했다. 소설가 공지영·시인 안도현 씨 등 다수의 문화예술인도 참여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부엉이 모임은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과 그해 치러진 4·13 총선, 지난해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상 친문 직계 모임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분당 과정에서 문 대통령을 지키는 홍위병 역할을 맡았다.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친문계와 초선 의원,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들어온 인사들이 조직화를 꾀하면서 부엉이 모임이 된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권이 부엉이 모임에 대해 “여당 유력 인사들의 사조직”이라고 비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이 터져 나왔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사실상 대통령의 친위조직을 자처하는 것”이라며 “과거 최고 권력자에 기댄 계파모임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알고 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실제 그랬다. YS의 상도동계와 DJ의 동교동계 간 갈등은 1987년 대선에서 야권 분열의 단초로 작용했다. YS는 차기 대선을 앞둔 1990년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을 전격 결정하면서 영·호남 지역주의에 불을 지폈다. 참여정부 땐 난닝구(실용파)와 빽바지(개혁파)가 정면충돌하면서 분당으로 이어졌다. 노선투쟁의 상징이었던 이 용어는 한때 진보개혁진영 내 금기어가 됐다. 그만큼 상처가 깊었다는 얘기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다. 이명박(MB) 정부 때는 친이(친이명박)계와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한 친박계가 사사건건 충돌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친박·비박 갈등 끝에 총선과 대선을 모두 진보개혁진영에 헌납했다.
앞서 부엉이 모임이 자진 해산을 택한 것도 계파 패권주의 ‘잔혹사’가 한몫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도 진박(진짜 친박)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지 않았느냐”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 내부에도 이런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해철·전재수·황희 의원 등은 “그저 밥 먹는 모임”이라고 계파 패권주의 의혹을 일축했지만,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밥이나 먹는 모임이면 왜 해산을 하느냐”라며 “해산했다는 것 자체가 계파 모임이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엉이 모임 파장 당시 여의도 안팎에선 ‘친문계가 민주당 A 의원 등을 받아주지 않았다’라는 설이 떠돌기도 했다. 민주당 전직 보좌관은 “문비어천가 수준”이라고 힐난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친문계가) 울타리를 치면 거기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우린 비문이구나’라고 자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국정운영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민주당 모두가 친문을 자처하는 상황에서 정파그룹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부엉이 모임의 부활을 평가 절하했다.
윤지상 언론인
“입각이 최상의 카드” 추미애 향후 행보 관심집중 “차기 국무총리부터 포스트 문재인까지….” 임기를 마친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한때 ‘당 대표의 무덤’으로 불렸던 민주당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대표로 자리매김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성공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2·8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올랐지만, 이듬해 1월27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에 전권을 넘겨줬다. 추 전 대표의 처음과 끝은 ‘최초’ 타이틀이 장식했다. 2016년 8·27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추 전 대표는 대구·경북(TK) 출신 첫 여성 민주당 당수다. 당시 추 전 대표는 “세탁소집 둘째 딸이 왔다”며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 등의 강성 이미지를 벗는 데 주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의원이다.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추 전 대표는 19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발탁, 원내에 진입했다. 추 전 대표의 주가를 한층 높은 것은 ‘임기 2년 완수’다. 문 대통령이 “역대 가장 행복한 여당 대표”라고 말했을 정도로, 민주당 당 대표는 흑역사로 통했다. 당 한 관계자는 “추 전 대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민주당에서 비대위 체제 없이 대표직을 마무리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과도 많았다. 국정농단 게이트에서 고심 끝에 탄핵 열차에 탑승,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 지난해 5·9 대선에선 9년 2개월 동안 지배한 보수정권의 고리를 끊고 민주정부 3기를 출범시켰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도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14개를 차지했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재보선에서도 12곳 가운데 11곳을 이겼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선거의 여왕이 탄생한 게 아니냐”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 변수 중 하나는 ‘추미애 연임 도전’ 여부였을 정도다. 추 전 대표의 향후 행보 중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입각이다. 일각에선 여성 정치인이라는 상징성, 지역 안배 등을 이유로 ‘최상의 카드’로 평가한다. 내각에 몸을 담지 않고 바로 차기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포스트 문재인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 아니냐”라며 추 전 대표의 대권 도전에 한 표를 던졌다. 오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추 전 대표는 임기 마지막까지 당 안팎으로부터 ‘독선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한때 추 전 대표의 ‘거친 입’은 정국 파행의 단초로 작용했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 후보였던 김진표·송영길 의원도 추 전 대표를 향해 “불통 리더십”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과반을 웃돌았던 당 지지율도 최근 들어 3분의 1가량이 빠진 상태다. 당내 추미애계가 거의 없다는 점도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친문(친문재인)계의 지원 없이 독자 행보를 할 수 없다는 게 추 전 대표의 약점”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