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부처님 오신날 축사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설정 스님의 사퇴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그동안 조계종은 각 세력이 얽히고설켜 막장극 같은 상황을 연출해왔다. 설정 스님 사퇴 이후에도 조계종의 내홍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설정 스님에 대한 의혹은 지난해 11월 총무원장 선거 당시부터 불거졌던 것이다. 여러 의혹 제기에도 설정 스님은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런데 지난 5월 1일 MBC PD수첩이 설정 스님과 관련한 의혹을 집중 조명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6월 11일 조계종 교권 자주·혁신위원회 회의가 발족됐고, 6월 20일부터는 세수 87세인 설조 스님이 설정 스님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7월 14일에는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가 조계사 대웅전에서 시위를 하겠다며 난입해 조계사 측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는 지난 7월 17일 ‘설조 스님을 살려내기 위한 국민행동 연석회의’를 발족했고 불교시민단체와 신도단체, 시민사회단체, 전국교직원노조를 포함한 70여 개 단체가 참여했다.
설조 스님이 퇴진운동에 앞장서자 설정 스님 측 노현 스님은 ‘설조 스님이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호적을 바꿔 실제 나이는 76세이며, 불국사 주지 재임 당시 분담금 수십억 원을 체납했다’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설정 스님은 논란이 커지자 8월 1일 중앙종회 임시회 이전에 퇴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가 약 2주 뒤인 8월 13일 돌연 입장을 번복해 올 연말에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8월 16일 중앙종회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자 21일 전격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22일 원로회의의 인준을 하루 앞둔 상황이었다.
설정 스님은 물러나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설정 스님은 학력 위조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나 숨겨둔 자녀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맹세코 아니다”라면서 다시 한 번 결백을 주장했다.
설정 스님의 숨겨진 딸로 알려진 전 아무개 씨는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가 귀국해 설정 스님과 유전자 대조를 해보면 진실은 쉽게 밝혀질 수 있지만 전 씨가 현재 어느 나라에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불교계 일각에선 설정 스님에 대한 동정론도 있다. 과연 종단 내에 학력위조, 은처자, 사유재산 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스님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설정 스님은 종단 내 계파 갈등 와중에 희생양이 된 것뿐이라는 것이다. 설정 스님을 퇴진시키려면 같은 계율을 위반한 스님들을 모두 발본색원해 동일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설정 스님이 사퇴함에 따라 조계종 사태는 한 고비를 넘겼지만 이제는 차기 총무원장 선출을 놓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현재 조계종 종헌종법은 총무원장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도록 돼 있다. 이 일정에 따르면 제36대 총무원장 선거는 오는 10월 19일 이전에 치러야 한다.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당장 조계종 제도권과 재야 세력의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총무원장 선거는 321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인데 그동안 설정 스님의 퇴진을 요구하며 장외 투쟁을 벌여온 ‘불교개혁행동’ 등 조계종 재야 세력은 직선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간선제로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면 기득권 세력이 재집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 불교계가 종권을 두고 갈등을 겪는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 선거제도, 문중 중심 문화, 정치 계파(종책모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현재 승가에서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시주물은 욕망과 집착의 대상이 됐고, 평등해야 하는 승가에서는 불평등이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조계종은 지난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선거제를 도입했는데 이후 종권을 놓고 내부 갈등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한 불교계 관계자는 “총무원장이 되면 종단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 보수, 방재시설 등과 관련된 예산이나 국고 보조금 등 어림잡아 한 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이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종권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총무원장 자리 둘러싼 갈등의 역사…98년 ‘쇠파이프 폭력 사태’ 이후 폭로전 이어와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싼 조계종 내부 갈등은 역사가 깊다. 20년 전인 1998년에는 제29대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유혈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일부 스님들은 쇠파이프까지 사용해 폭력을 행사했다. 이 사건은 ‘스님 쇠파이프 폭력 사태’로 지금까지 회자되며 불교계에 대한 국민 인식이 크게 나빠지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0년에는 성호 스님이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 선출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된 갈등이 폭로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성호 스님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자승 스님이 성매매를 했다고 주장했다. 성호 스님은 “(자승 스님이 성매수를 벌인) 신밧드 룸살롱은 (실천승가회) 스님 90%가 단골”이라며 “늘씬하지 않은 미운 여자들을 바꾸라고 시키는 것을 자승 스님이 최고 잘한다”고 주장했다. 폭로전에 발끈한 조계종은 성호 스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비구니 스님 성폭행 미수 사건, 외제차 구입과 사찰 재정 유용 등 성호 스님과 관련한 의혹을 보도자료 형태로 만들어 공개했다. 총무원장 자리를 놓고 조계종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특히 전임 자승 총무원장 시절에는 조계종과 정치인들이 연결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명진 스님은 지난 7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승 총무원장의 여러 가지 비리를 감사원에서 감사하려고 할 때 직접 감사원장한테 전화를 걸어서 ‘불교는 특별히 따로 다뤄야 된다. 종교탄압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러면서 본인이 막았다고 그러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명진 스님은 “박영선 의원뿐만 아니라 자승 총무원장이 여러 정치인들을 선거 때 도와주는 방식으로 관리했다”면서 “그런 관계 속에서 자승 총무원장이 조계종을 이렇게 타락시킬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