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투자계획 발표 전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만남에서 약가 정책 개편을 비롯한 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를 요청했으며 정부는 바이오 관련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8대 선도사업에 바이오산업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또 금융감독원은 올해 초부터 테마감리를 진행해오던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비용 회계처리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잇단 악재로 침체해 있던 바이오업계가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다시 날갯짓을 시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적극적인 지원만큼 철저한 감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연합뉴스
최근 분위기로 보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다. 재계에서는 분식회계 논란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삼성바이오가 제약·바이오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과 규제 완화 약속 덕에 ‘부활’을 노릴 수도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 분식회계에 대한 검찰수사가 낮은 강도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정부와 삼성의 화해 무드에 검찰이 난감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새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 같은 전례도 없는 데다 최근 정부와 삼성의 스킨십이 늘어난 만큼 처리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주식시장에서 삼성바이오의 주가가 빠르게 회복한 것도 삼성바이오와 제약·바이오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난 7월 30일 37만 1000원으로 추락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지난 24일 45만 8000원으로 마감했다. 삼성바이오의 가파른 상승세와 함께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 주가도 폭등세를 보였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 따른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시장의 시선은 긍정적”이라며 “상승 동력을 잃어버린 국내 증시가 다시 기지개를 펼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업계 전반을 얼어붙게 했던 회계처리 리스크가 완화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최근 금감원이 바이오기업 R&D(연구개발) 비용의 무형자산 처리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가 반색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그간 제약·바이오기업이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던 연구개발비에 대해 테마감리를 실시하고,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수정해 처리하도록 주문한 바 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 K-IFRS 제1038호는 연구개발비에 대해 기술적 실현 가능성 등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무형자산으로, 충족하지 못할 경우 비용으로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152개 제약·바이오 상장기업 가운데 55%인 83개 기업이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금감원 관계자는 “R&D 자산화 처리 기준 완화 검토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금감원 회계기획감리실 관계자도 “현재 테마감리를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오히려 금감원은 지난 16일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시실태 및 투자자 보호 방안’을 발표하면서 고삐를 더 죄고 있다. 산업 특유의 투자위험 요소들에 대한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체계적이고 상세히 기재하도록 모범사례를 마련하고 올해 3분기 보고서부터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제약·바이오산업이 경제의 신성장 산업으로 가능성을 주목받으며 투자자들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나 지난해 기업 사업보고서 점검 결과 중요 정보 및 위험에 대한 공시 내용이 불충분해 공시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이 같은 공시 강화는 그간 제약·바이오주 투자자들이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피해를 봤던 사례가 다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은 투자자가 확인하기 어려운 임상시험 중단 정보 등을 늦게 공시하거나 알리지 않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네이처셀은 주가 조작 논란으로 대표가 구속기소 되고 임원 3명은 불구속기소 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 후보물질인 ‘조인트스템’의 식품의약품안전처 조건부 품목허가 승인 신청과 관련해 허위·과장된 정보를 보도해 주가를 높여 수백억 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자를 보호하고 옥석을 가리기 위한 관리감독 강화는 당연하지만 신약개발에 장기간 많은 금액을 투자해야 하고 성공을 장담하기도 힘든 산업의 특성이 있다”며 “3상 이상일 때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하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미국은 투자자가 엑시트할 기회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IPO가 유일한 엑시트 방법이다.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지원과 감독이 병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국내 바이오산업 강점은? 중소·벤처기업 참여 활발 최근 삼성을 비롯 SK, LG, 코오롱 등 다수 대기업들이 제약·바이오사업을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바이오시장에 뛰어드는 까닭은 높은 성장 전망 때문이다. 한국바이오협회 조사에 따르면 바이오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13년 330조 원에서 2020년 635조 원으로 연평균 9.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규모는 그리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 면에서도 신약개발보다 대부분 복제약 중심의 바이오시밀러 생산·유통에 치우쳐 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신약개발을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쏟아붓고 있는 데다 임상시험을 준비하거나 돌입한 상태지만 이들이 신약개발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지만 바이오시밀러가 오히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강점이라고 강조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 대기업 위주로 바이오시밀러에 특히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국내 바이오산업의 강점으로 높은 생산력과 활발한 중소·벤처기업의 참여를 꼽는다. 이들이 국내 바이오산업을 이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신규 창업 바이오 중소·벤처기업은 전년 대비 2.2배 증가했다. 중소·벤처기업이 많이 육성되면 다수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다국적 제약사나 대기업에 판매하고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산업은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리스크도 크다”며 “중소·벤처기업이 받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바이오 산업 생태는 해외보다 좋다”고 자신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