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롯데에 베트남은 중국을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은 중국의 30%에 불과한 노동임금에다 작지 않은 내수시장을 갖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트남 인구가 9459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베트남은 현재 유럽연합(EU)과 같은 거대 경제권과 아시아의 자유무역협정(FTA)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과거 원료 공급지이자 저임금 생산기지 역할에서 벗어나 주요 수출시장, 거대 내수시장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재계에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베트남 정부와 우리 기업 간 관계도 좋다”고 말했다.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 있는 중인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 공장 전경. 연합뉴스
올해 1~5월 국내 기업은 베트남에 총 19억 6770만 달러(517건)를 투자했다. 출자와 주식 매입을 포함한 투자액은 26억 2540만 달러에 달해 투자 규모면에서 일본보다 11억 180만 달러 많았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대한 전체 외국인 투자에서 26.5% 비중을 차지해 연간 투자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까지 1위 투자국이었던 일본은 15.3% 투자 비중으로 2위에 내려갔다.
대(對) 베트남 투자는 제조업 분야가 주도했다. 전 세계 휴대폰 판매량의 약 6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는 그룹 차원에서 10년 전 밝힌 140억 달러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2007년 베트남에서 스판덱스·타이어코드·스틸코드 등을 생산해 진출 10년 만에 매출 1조 원을 넘긴 효성도 올해 효성화학을 앞세워 추가 투자를 진행했다. 효성은 베트남 남부에 있는 폴리프로필렌(PP) 공장에 12억 달러를 들여 생산 공정 및 기반 시설을 늘릴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들의 베트남 투자 확대는 투자 성과에 기인한다. 베트남은 부품·소재 산업에 대한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해 국내 기업 성장을 지지했다. 응우웬 쑤언 푹 총리는 2016년 임기 시작부터 민간기업 우호 정책을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 재계에선 삼성그룹이 법인세 혜택은 물론 수입세·토지세 면제 등 특별혜택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한국에 우호적인 베트남의 분위기 덕도 있다. 실제로 베트남은 기질적으로 한국과 가깝다. 베트남어에도 ‘정감’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정(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내 기업은 베트남 정부 당국과 투자 회의를 할 때면 언제나 정을 강조해 환심을 산다고 한다.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는 유교문화와 한자 어원도 공통 요소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분단과 내전을 동일하게 겪었지만 베트남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을 부러워하고 한국 기업을 좋아한다”고 했다.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는 한 현지 주재원은 “한국 제품은 베트남에서 기본 30%는 먹고 들어간다”면서 “베트남은 문화적 친밀도가 높은 한국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베트남 동나이성 비엔화시에 있는 롯데마트에 베트남 소비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나 롯데의 베트남 진출 확대도 이 같은 배경을 두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 시장 위기 당시 찾은 베트남에서 정부 지원 혜택부터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는 지난해 850만 달러 투자를 결정, 현재 베트남 내 제2조립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대차는 연간 300만 대를 넘는 신차 판매량을 기록 중인 동남아 시장을 베트남을 기점으로 공략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롯데는 올해 롯데마트 12개 점포를 추가 출점할 예정이다. 당초 밝힌 점진적 확장과 다른 행보지만, 베트남 내 롯데마트 매출과 영업이익이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데 따른 결정이다. 특히 베트남은 제조업 기반이 강해 지역 부호들이 대부분 상품 유통을 쥐고 있는 중국과 달리 유통을 해외 투자 기업들이 직접 진행하고 있어 롯데마트 운영이 중국 시장보다 수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의 베트남 지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베트남 소비자들은 값을 조금 더 주더라도 중국 제품보다 한국 제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은 중국에 근거를 뒀던 중소기업들의 진출도 부추겼다. 해외무역투자진흥공사가 2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해외진출 한국기업 디렉토리에 따르면 베트남 진출 국내 기업은 2014년 1339곳에서 2016년 2747곳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김경돈 코트라 하노이무역관 투자지원과 과장은 “3년 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국내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면서 “국내 대부분 기업은 중국 내 사업장 규모를 줄이면서 베트남에 진출, 베트남 내 사업장 규모를 키우는 방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베트남 내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과 사회주의식 시장경제 체제로 인한 낮은 정책 안정성은 우려할 만한 사항이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인 베트남은 중국과 같이 정부의 정책 결정으로 경제를 주도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에 대해 김경돈 과장은 “중국과 베트남의 가장 큰 차이는 정부가 정책으로 경제를 움직일 돈과 힘이 있느냐다”라며 “중국은 외국 기업을 제재해도 산업 위기를 맞지 않을 정도로 내부 기업의 역량이 뛰어나지만, 베트남은 부동산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요소가 없다. 서서히 자국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중이지만 아직은 외국 기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베트남 수출의 70%는 외국 기업이 이끌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단독] LG그룹 배터리 신시장 베트남서 찾는다 LG화학 빈그룹 부지에 배터리 생산라인 증설 검토 신사업 찾기에 나선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LG화학의 베트남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구 회장은 당초 LG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LG화학 바이오사업에서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데 따라 배터리 부문의 새로운 시장으로 베트남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최근 생산설비, 품질관리, 영업 등 인력이 포함된 전지 부문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TF팀은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 부지(베트남 하이퐁) 내 배터리 생산라인 구축을 위한 사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빈그룹이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빈 스마트(VinSmart)’를 설립, 스마트폰용 소형 배터리의 직접 생산을 LG화학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빈그룹 내 배터리 생산라인 구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생산라인 구축에 드는 약 3000억 원 투자비용을 빈그룹에서 보전키로 한 덕이다. 특히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구광모 회장이 사업 추진에 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 입장에선 빈그룹이 자동차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만큼 향후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도 노릴 수 있다. 베트남 현지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LG화학 공장이 베트남 남부에 있긴 하지만, 1차 가공 정도만 진행하는 규모가 크지 않은 공장”이라며 “베트남 북부에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이 있는 만큼 빈그룹에 대한 배터리 생산라인 투자는 LG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LG화학의 베트남 투자 계획은 사실상 정해졌고 시기와 방식을 조율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LG화학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특별히 진행되고 있는 사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