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통문 전문을 실은 ‘황성신문‘ 보도 사진=여성가족부
18세기 말 페미니스트 ‘올랭프 드 구주(1748~1793)’가 발표한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이하 여권선언)의 일부다. 이성을 가진 모든 존재는 동등하며 따라서 남녀는 동등하다고 주장한 구주는 결국 ‘반혁명’이라는 죄명 아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여권선언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여성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20년 전 우리나라에도 여성 인권에 대해 언급한 인권선언문이 발표됐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 ‘여권통문(女權通文)’이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에서 양반댁 부인들에 의해 발표된 여권통문은 여성의 근대적 권리인 참정권, 교육권, 직업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혹시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의 벌어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그 절제만 받으리오. 먼저 문명 개화한 나라를 보면 남녀가 일반 사람이라”
여권통문은 교육을 통해 여성이 정치참여 의식과 직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여성도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독립된 인격을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에 여성도 개화정치에 참여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여권통문은 당시 ‘황성신문’, ‘독립신문’, ‘제국신문’ 등의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여권통문을 발표한 여성들의 사회운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한제국 시기인 1898년 9월 한국 최초의 여성 단체 ‘찬양회’를 조직해 여권 신장을 위해 활동한 것. 찬양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사립여학교인 ‘순성여학교’를 설립하고 이후 독립협회의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8월 24일 여성가족부 산하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여권통문 발표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시대를 앞선 여성들의 외침: 여권통문과 세계의 여성인권선언’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오랫동안 제대로된 역사적 의의를 평가받지 못했던 여권통문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자생적인 여성운동의 전통을 복원하자는 취지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권통문’ 선언은 19세기 말 우리 사회 여성들이 전통적 여성관에서 벗어나 여성의 근대적 권리를 주체적으로 자각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며 “이 같은 자각과 행동이 세계적인 여성운동의 흐름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