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버킨 백. 사진=에르메스
에르메스 켈리 백. 사진=에르메스
그가 말한 방법은 일정 금액의 에르메스 상품을 팔아주는 일이었다. 아무 상품이나 구입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특정 상품을 구매해야 수월해진다. 그는 “에르메스는 전세계적으로 가방이나 스카프 등 가죽과 액세서리 상품이 잘나간다. 그에 비해 의류와 주얼리 인기는 시들하다”며 “의류와 주얼리 판매를 촉진하려다 보니 작은 가방, 팔찌, 스카프 등을 1000만 원어치 사는 사람보다 의류와 주얼리를 1000만 원어치 사는 사람을 더 높게 쳐준다”고 일렀다.
여러 매장을 돌아 다니며 구매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옷이랑 주얼리 등을 사더라도 여러 매장에서 돌아가며 사면 셀러가 특정인의 구매 이력을 살펴보지 않는 이상 고객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셀러가 가진 권한이 따로 있다고 알려졌다. 한 매장의 한 셀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게 더 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판매원을 ‘셀러’라 불렀다. 에르메스 판매원을 보통 ‘셀러’나 ‘딜러’로 불린다.
그렇게 구매를 이어가다 보면 판매원은 소비자에게 “가방 하나 안 필요하냐”는 제안을 던진다. 이런 제안을 ‘오퍼’라고 부른다. 그는 “에르메스 옷을 종종 사는 편이었다. 어느 날 셀러가 ‘고객님 혹시 이 옷에 어울리는 가방 하나 안 필요하세요?’라고 묻더라. 어느 정도 구매하다 보면 가방을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새로운 시즌마다 에르메스에서 미는 가죽 색상 핸드백이 그나마 구하기 쉽다고 알려졌다. 그는 “검정색이나 회색 계열의 에토프(Etoupe), 에땅(Etain), 낙타색 등 잘 팔리는 색상은 구하기 힘들다. 친해진 직원에게 오퍼가 들어올 때 ‘색깔 상관없이 그냥 버킨 백이나 켈리 백 빨리 되는 거로 아무 거나 상관없다’고 하면 그나마 좀 빨리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인기 품목 구매 이력이 쌓이고 안면을 트면 고객의 등급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게 확연하게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매장에 방문한 누군가에겐 차와 케이크가 나오는가 하면 어떤 소비자에게는 쿠키나 음료만 주는 때도 있다는 게 그가 경험한 에르메스의 고객 관리였다. 판매원과 친분을 쌓으려는 소비자의 ‘조공’이라는 행동 양식까지 나왔다. 조공은 매장에 갈 때마다 자신이 공략하는 셀러에게 케이크나 음료 등 간식거리를 사 들고 가져다 주는 일을 일컫는다.
에르메스 소비자 등급은 1년에 한 번씩 있는 에르메스의 반값 세일 때 확연히 드러난다. ‘노 세일’을 표방하는 에르메스는 1년에 한 번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50% 세일을 한다. 올해는 6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에 걸쳐 열렸다. 각 날짜 별로 출입 가능한 시간대가 나뉘었다. 19일 오전이 가장 중요한 고객에게 열렸고 순차적으로 중요도에 따라 특정 시간대 초대장이 고객에게 뿌려졌다고 알려졌다.
에르메스의 특정 상품 소유 여부는 일부 주부 사이에서 ‘급’을 평가하는 척도가 됐다. 무리해서 소비를 이어가는 사람도 생겨났다. 익명을 원한 한 주부는 최근 친구에게 전해들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에르메스를 두르고 다니던 여자 이야기’를 털어놨다.
“최근 친구에게 ‘한 학부모’를 경계하란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그 여자가 이따금 ‘에르메스에 오더해서 이거 샀는데 나보단 XX 엄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이거 구하기 힘든 거야’라며 자신이 이미 구매했던 물건을 권했다고 하더라. XX 엄마는 에르메스가 매장 간다고 사기 쉬운 것도 아니니 그냥 샀다. 알고 보니 아예 그런 방식을 이용해 한 시즌 입고 팔고 하며 최저 비용으로 에르메스를 온몸에 감고 다녔던 거였다. 친근하게 다가왔던 게 그 학부모의 거래처 영업 방식이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