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왕의 귀환이다. 이해찬 의원이 집권여당 당 대표로 다시 돌아왔다. 8월 25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에서 이해찬 신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가 득표율 42.88%를 기록해 30.73%를 차지한 송영길 후보, 26.39%를 차지한 김진표 후보를 압도적으로 꺾고 당 대표로 선출됐다.
2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 강한 민주당의 강한 대표로 복귀한 이 대표가 과연 당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종현 기자
이해찬 대표는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투명하고 객관적인 상향식 공천, 예측 가능한 시스템 공천으로 2020년 총선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며 “문재인 정부는 차상위계층과 청년층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어 4만 불 시대를 열 것이다. 저 이해찬, 문재인 정부 성공,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선출된 당 대표는 민주당 당 대표 역사상 가장 큰 권한을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 전 추미애 민주당 당 대표가 취임할 때와는 많은 여건이 달라졌다. 정권이 교체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집권여당으로 탈바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재보궐선거 압승으로 원내 1당을 공고히 했고 지방선거 싹쓸이 승리로 지방 자치를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그런 민주당의 사령탑이 된 이해찬 대표는 더군다나 2020년 총선 공천권도 쥐게 됐다.
큰 권한만큼 당 대표 선거는 치열했다. 후보 간에 ‘쎈’ 수위의 발언도 이어졌다. 전당대회 당일 당원들도 끝까지 남아 개표 결과를 기다렸다. 사회를 맡은 백혜련 의원은 “민주당 전당대회 역사상 이렇게 많은 인원이 끝까지 남아 개표 결과를 기다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뜨거워지면서 이해찬 대표가 대체로 앞서간다는 평이 많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해찬 대표의 압승이었다. 이해찬 대표는 약 42%를 득표해 2위인 송영길 후보와 약 12% 넘는 차이를 보였다. ‘올드보이다’, ‘독선적이다’라는 공세에도 큰 타격은 없었던 셈이다.
당 대표 출마자들의 의제도 엇갈렸다. 세 후보 중에서 가장 젊은 송영길 후보는 자신의 슬로건으로 ‘평화, 경제, 통합, 역동적인 젊은 민주당 송영길’을 내세웠다. 송 후보는 56세로, 71세 김진표 후보, 66세 이해찬 후보와 비교해 10살 이상 젊다. 송 후보는 “(민주당에) 30대 국회의원 1명도 없이 노쇠해져 가고 있다”며 “두 후보를 존경하고 당의 원로지만 15년 전에 국무총리, 부총리 경험했던 인물들이다. 강철 같은 체력과 기관차 같은 추진력으로 문재인 정부 성공을 뒷받침하겠다”고 나머지 두 후보의 ‘낡은 이미지’에 직격탄을 날렸다.
김진표 후보는 ‘첫째도, 둘째도 경제’를 외쳤다. 김 후보는 “민생 경제 살리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당정청을 하나로 묶어내겠다”며 “지금 이 시기 꼭 필요한 당 대표가 되겠다”며 경제 전문가임을 자처했다. 김 후보는 이해찬 후보를 겨냥한 듯 “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협치도 필요하다. 독선적이어선 안된다. 화합의 리더십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2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대표 및 최고위원들. 왼쪽부터 김해영, 박주민, 설훈, 이해찬, 홍영표(원내대표), 박광온, 남인순. 이종현 기자
이해찬 대표는 후보로서 ‘강한 민주당’을 기치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민주당 20년 집권 플랜을 위해선 강한 민주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대표는 후보 연설에서 “7선 국회의원, 정책위의장, 당 대표, 국무총리 다 해봤다. 뭘 더 바라겠나. 차기 총선에서 출마하지 않겠다. 당 대표직을 내 마지막 소임으로 삼겠다”라며 “일 잘하는 민주당, 강한 민주당을 만들겠다. 엄격한 김대중 전 대통령 모시고 정책위의장을 3번 했다. IMF 시대를 극복하고 소득 2만 불을 만든 경험이 있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4만 불 시대를 만들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강호동 이경규 진행하는 한끼줍쇼 보셨죠? 저 이해찬이 말합니다. 한표 줍쇼. 한표 주이소”라며 평소 이미지와 달리 친근한 면모도 보였다.
결국 이해찬 신임 대표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앞으로 민주당의 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야당의 협치 요구와 관련해, 이 대표의 이미지가 ‘독선적이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이 대표의 취임 일성은 야당 대표를 향했다. 이 대표는 “주제와 형식에 상관없이 5당 대표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면 좋겠다. 힘을 합쳐 이번 정기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민주당의 강경 분위기가 더욱 강해진다는 데 시각이 모아지고 있다. 이 대표가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원칙 있는 협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협치는 양보가 전제돼야 하는데 원칙에 어긋나면 협치도 할 수 없다는 이른바 ‘원칙 있는 협치’를 강조하면서 큰 전환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특히 이해찬 대표가 적극적으로 밀었던 김해영 의원과 컨센서스가 모아진 박주민 의원 등이 최고위원에 들어오면서 이 대표의 권한도 막강해질 것으로 보여 정책에 있어서도 수정보다는 공격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관계자의 말과 같이 압도적인 득표율을 통한 당선을 이룬 데다 최고위원에 이 대표가 밀었던 후보가 두 명이나 포함되면서 이 대표 쏠리는 힘도 어느 때보다 강력해질 전망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가 총리로서 당정청 협의회를 이끈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 대표로서 당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서포트 역할에 그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참여정부 때하고는 정국 운영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당정청이 함께해 나갈 때 원활하게 좋은 성과를 내고 효과를 낼 수가 있다”며 “총리가 중심이 돼서, 당 대표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안에 따라서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해당 수석, 해당 부처 장관, 당의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가 정기적으로 만나 사안 별로 논의를 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중심을 자처한 이 대표를 두고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전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이상일 때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지지율이 떨어질 때 불협화음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으로는 친문 코어의 몰락에 가까운 성적표도 눈길이 쏠린다. 전해철 의원, 최재성 의원 등이 김진표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 사격했지만 적지 않은 차이로 3위에 그치면서 충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해철 의원의 도지사 선거부터 계속된 ‘코어 친문’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밀었던 김진표 후보가 크게 처지면서 친문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당 구성원들의 마음이 친문이라고 무조건 지지해주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비문만 아니면 된다’는 뜻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친문의 힘이 많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