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연합뉴스
지난 8월 26일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인 ‘대기업 총수일가 보유 상장사 계열사 지분’을 현행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또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대기업 계열사가 50% 넘는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편입하기로 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으로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에게도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공정위가 현대글로비스를 현대·기아차가 만든 차량을 실어 나르는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의 상징’으로 지목한 데 따라,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처분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앞서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이 낸 지배구조 1차 개편안에서 정 부회장은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70%에 가까운 현대글로비스를 경영권 승계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AS·모듈 사업을 분할,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안으로 지분 강화를 꾀했다. 현대모비스 핵심 사업인 AS·모듈사업에 기대 23.29% 지분을 가진 현대글로비스 지분가치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1차 개편안은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만 방점이 찍혀 두 달 만에 철회됐다. 주주들은 현대차그룹 1차 개편안에 제시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이 “총수일가에만 이익”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고, 지배구조 개편 과정상 주주가치 훼손까지 없는 경영권 승계 묘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법무법인 김앤장을 필두로 회계법인까지 동원한 이유다.
현재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를 승계 자본으로 활용하는 지배구조 2차 개편안을 고심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내부 관계자는 “수많은 지배구조 개편안 중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상장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안다”며 “오는 9월 지배구조 2차 개편안에 대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2차 개편안은 현대모비스 AS·모듈사업부문(현대모비스 분할법인)을 인적분할 방식으로 설립하고, 신설사업부문을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상장 이후 정의선 부회장을 포함한 총수일가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처분해 현대글로비스 처분 자금으로 신설상장법인 지분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10% 지분을 팔면 현대글로비스 총수일가 지분율은 19.99%로 공정위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비껴날 수 있다. 또한 주주가치 제고에도 유리하다. 신설상장법인은 시장에서 가치평가를 받아 ‘총수일가에만 이익’이란 비판에서 자유롭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안정성이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기로 정할 경우 주가는 떨어진다. 떨어진 주가는 정 부회장 재원과 직접 연결된다. 재원 부족은 곧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가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이미 현대글로비스 지분가치는 지난 2015년 정 부회장이 지분 매각으로 재원 마련에 나설 때와 비교해 주당 매각가에서 10만 9500원(29일 종가 기준)이나 차이 난다. 당시 정 부회장은 322만 2170주를 주당 23만 500원에 팔아 7427억 원을 확보했다. 현재 정 부회장이 공정거래법 개정 법률안에 맞춰 10% 지분을 팔아 얻을 수 있는 재원은 375만 주로 4593억 7500만 원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거 매각한다는 방침을 정하면 주당 매각가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미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을 진행하기도 부담일 것이라 지금은 사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라 보는 게 맞다”고 평가했다.
지배구조 1차 개편안과 달리, 지배구조 2차 개편안이 증시 상장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정 부회장에게 위험하다. 신설사업부문 상장을 통해 시장에서 가치평가를 진행할 경우 주가는 당초 가치평가보다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대주주 지배력 확대를 원하는 총수일가가 지분 확대에 나설 게 분명한 상황에선 수요가 몰려 주당 거래가격이 오르게 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1차 개편안에서 현대차그룹이 사업성 높은 현대모비스 AS·모듈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영업이익률이 2~3%에 불과한 신차 부품을 따로 두는 것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가진 현대글로비스 지분가치를 올리기 위한 묘수를 짰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다시 말해 정의선 부회장이 가진 재원 중 상당수가 현대글로비스에 몰려 있고 나머지는 규모가 크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를 제하고 현대엔지니어링, 이노션, 현대오토에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모두 이른바 현대자동차그룹 내 계열사 내부거래로 성장했다. 다만 이들 지분을 모두 매각해도 정의선 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에서 경영권 승계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준의 재원은 안 되는 상황이다. 2018년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정의선 부회장이 가진 재산을 3조 1117억 원으로 평가했다.
지배구조 2차 개편안이 갖는 문제는 또 있다. 개편에도 불구하고 순환출자 구조가 그대로 남는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기존 순환출자를 보유한 경우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순환출자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순환출자 구조를 마냥 유지할 수는 없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가 9월 중 공개를 예고한 2차 개편안에 대해 “현대글로비스(합병법인)→현대모비스(존속법인)→현대차→기아차→현대글로비스(합병법인)의 순환출자 구조가 유지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의선 부회장이 지배구조 2차 개편안을 시장 반응 점검 차원에서 우선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지배구조 2차 개편안에 대한 시장 평가를 일단 받겠다는 것이다. 앞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지배구조 1차 개편안 철회에 대해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 충분히 반영하겠다”며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 구조 개편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금융 자문을 전문으로 하는 임정근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는 “재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문제가 불거져도 국내 분위기는 대기업의 선제적 변화를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며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서둘러 내부거래를 줄이거나 지분을 대거 팔아야 하는데 지분율이 낮아지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고, 지분을 팔더라도 지분을 사줄 투자가를 찾기도 마땅치 않아 고민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