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하라와 사귀기 시작한 게 2003년인데 2004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고, 2008년 3월에 결혼했지만 아예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이노우에. 이에 팬들은 일본어 동사 ‘사게루’(내리다, 낮추다)에서 온 ‘사게망’(운을 빼앗는 여자)이라는 별명으로 그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접어드는 시기에 이노우에의 체력이 저하된 게 주원인이라는 의견이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문제는 베이징에서 일어났다. 부부는 일본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올림픽 경기장을 찾곤 했는데, 히가시하라가 블로그에 언급하거나 직접 방문한 곳의 일본 선수들은 기대보다 못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그녀의 블로그는 만화 ‘데스 노트’에서 명칭을 따 ‘데스 블로그’로 불렀으며, 2채널 사이트의 오컬트 코너엔 히가시하라의 저주에 대한 글들이 올라가기 시작해 한 달 동안 수천 개가 쌓였다. 그녀의 과거 행적은 저주라는 이름으로 소환되었고, 그것은 어느새 ‘히가시하라 아키 전설’이라는 대서사시를 이루었다.
이에 히가시하라는 모든 것이 루머이며 자신은 의연하고 계속 블로그를 할 거라고 밝혔지만, 그녀가 관련된 사례들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일단 그녀가 모델을 했던 브랜드들이 피해를 입었다. 1990년대 말 그녀는 ‘세가’의 신제품 게임기 드림캐스트의 모델이었지만 결국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에 완전히 밀려 2001년에 제품은 단종된다. 2005년엔 예금보험공사 모델이었는데 이 회사는 결국 파산한다. 2008년엔 어느 인스턴트라면 광고에 출연했는데, 라면 용기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었고 당국의 감사 결과 공장에선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모델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2007년 기술 박람회에서 도시바의 HD-DVD 설명회에 얼굴을 드러냈는데, 결국 도시바는 이 포맷을 포기하게 된다. 2008년에 맥도널드 매장에서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다음날 맥도널드 햄버거에서 기생충이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혼식을 올린 임페리얼 호텔에선 식이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불이 났다. 2011년엔 소니 카메라를 샀다고 자랑 삼아 블로깅을 했는데 얼마 후 태국에 있는 소니 공장이 홍수로 문을 닫았다.
죽음과 재난과의 관련성은 이외에도 많다.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의 투어 소식이 발표되자 블로그에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올렸지만 잭슨은 곧 세상을 떠났다. 2009년엔 자위대 기념행사의 불꽃놀이 구경을 갔는데, 일본 해군과 한국 상선이 충돌하는 일이 일어났다. 2011년 1월, 블로그에 ‘지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두 달 후 일본 관측 사상 최악의 지진인 도호쿠 지진이 발생했다. 그러자 “전력 수급 상태에 문제가 있으니 절전합시다”라고 글을 올렸는데, 바로 그 순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2012년엔 아들이 가지고 노는 비행기 장난감 사진을 올렸는데, 1개월 후 배터리 문제로 불이 나 전기종 운행 중단을 한 비행기가 바로 그 보잉 787 드림라이너였다.
동식물도 피할 수 없었다. 2010년 카마쿠라에 있는 사당에서 오래된 은행나무를 보며 “은행 열매를 먹고 싶어!”라고 블로깅 했는데, 두 달 후 800년 된 그 나무는 갑자기 고사했다. 2012년 7월 우에노 동물원에선 판다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었고 이것은 큰 화제였다. 히가시하라는 아들이 판다를 좋아한다며 “오후 8시 30분, 이제 아기를 재워야겠다”고 글을 올렸는데, 다음 날 아침 태어난 판다는 오전 8시 30분에 죽고 말았다. 과연 그녀는 고약한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일까?
마지막 에피소드 하나. 2007년 경마 쇼 ‘슈퍼 경마’ 진행자가 되었는데, 21번 연속으로 1등 예상이 빗나갔다. 대신 그녀가 1위로 지목한 말이 골절상을 입은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났고, 제발 날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기수는 낙마해서 크게 다쳤다. 그리고 20년 넘게 이어졌던 그 프로그램은 히가시하라가 맡은 지 3개월 만에 폐지됐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