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가 삼성카드를 제치고 미국계 대형할인점 코스트코와 독점계약을 따냈다. 업계에서는 현대카드의 승리에 정태영 부회장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말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카드를 제외한 다른 카드사들에 코스트코는 그동안 사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신포도’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내심 탐이 나지만 “큰 돈은 안 된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삼성이 구축해둔 20년 가까운 철옹성을 뚫기도 어려웠다.
주로 5년 단위였던 삼성카드와 계약 만료가 다가올 때면 카드사들은 저마다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가며 입찰경쟁에 나섰지만 결과는 매번 삼성카드의 승리였다. 2000년 코스트코가 한국에 진출한 뒤 18년 동안 이 공식은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정태영 부회장이 이끄는 현대카드가 작심하고 코스트코 잡기에 나서면서 이변이 일어났다.
금융권은 정태영 부회장이 코스트코와 계약에 직접 몸을 던진 이유로 연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카드 수수료 수입과 신규 회원 유치를 꼽는다. 코스트코는 연간 회비로 법인 3만 3000원, 일반인 3만 8500원을 받는다. 유료회원으로 가입해야 코스트코 매장을 이용할 수 있다. 또 결제는 현재 현금 또는 삼성카드로만 할 수 있다. 지난 회계연도 코스트코 매출액은 역대 최고인 약 3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3조 5000억 원)보다 8.7% 늘어난 규모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코스트코와 계약을 따내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강한 의지를 갖고 직접 코스트코와 계약을 진두지휘했다고 들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기밀유지 조항에 따라 결국 비밀로 남겠지만 기본적으로 삼성카드의 기존 조건을 뛰어넘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태영 부회장의 ‘승부수’는 장기계약과 마케팅 지원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 계약자인 삼성카드는 수성을 위해 수수료에 집중하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했던 데 반해 현대카드는 수수료 외에 코스트코의 구미를 당길 만한 다양한 혜택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10년 계약’과 함께 코스트코와 새로운 제휴 상품을 개발하고, 이 상품에 대한 홍보와 공동 마케팅 등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겠다는 청사진을 펼쳤다는 것이다. 코스트코 입장에서 할인점 사업 외에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제안이었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은행계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현대카드가 제시한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는 삼성카드와 한 기존 계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며 “대신 정태영 부회장과 현대카드 특유의 창의력이 발휘된 새로운 제안들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스트코와 계약을 맺는 사진을 올리며 소감을 밝혔다. 사진=정태영 부회장 페이스북
정 부회장은 처음 계약 사실이 알려진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코스트코와 계약을 맺는 사진을 올리며 “기뻐해달라”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이 20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발급받은 코스트코 회원카드도 올리며 남다른 소회도 남겼다.
그렇다면 정태영 회장과 현대카드, 나아가 신용카드사들이 이처럼 코스트코와 독점계약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는 뭘까. 코스트코는 창고형 할인점이다 보니 구매금액이 큰 경우가 많아 고객들이 현금보다 카드 결제를 선호한다. 현재 삼성카드가 코스트코와 맺은 가맹점 수수료는 0.7%다. 예컨대 3조 8000억 원의 매출을 카드로 결제했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을 해보면 카드사는 연간 최대 266억 원의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또 코스트코를 이용하는 고객은 독점 계약된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카드사는 회원모집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카드사가 결제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딱 두 가지, 회원 늘리기와 결제금액 높이기”라면서 “이런 점에서 카드사에 코스트코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파트너다”라고 전했다.
코스트코의 성장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코스트코는 현재 서울 양재점·양평점 등 전국에 1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서울 양재점은 세계 코스트코 매장 중 가장 높은 매출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코스트코 본사 회장이 “한국은 장사가 너무 잘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을 정도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용카드사의 평균 수수료율은 2.09%다. 수수료율은 3년에 한 번씩 카드사의 적격비용 등을 반영해 재산정한다.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 상공인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카드 수수료가 평균 0.3%포인트 인하된다. 가맹점 수수료는 카드사 전체 수익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인하되면 그만큼 수익도 줄어든다. 카드업계에서는 이번 수수료 인하로 연간 5500억 원가량의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카드사들엔 코스트코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금융권의 평가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신용카드사들은 정부의 수수료 인하 압박과 고금리 카드대출 규제 등 각종 악재로 인해 어느 때보다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이라면서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익에다 성장성까지 높은 코스트코와 독점계약을 놓친 삼성카드에는 뼈아픈 일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