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런 질문은 이제 해묵은 것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붐이 일고 있는 e스포츠 시장의 놀라운 발전 속도를 보노라면 이런 의문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안게임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e스포츠 인구는 오는 2019년이 되면 3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앞으로는 PC와 콘솔 게임을 넘어서서 모바일 게임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e스포츠 관련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장의 잠재성을 깨달은 유럽의 명문 축구클럽들이 앞다퉈 e스포츠 구단을 창단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e스포츠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와 함께 온라인 축구팀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분데스리가의 현주소에 대해 보도했다.
디지털 시대에 성장한 젊은 세대들의 상당수가 축구나 아이스하키보다 e스포츠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사진은 2014년 시애틀 도타2 대회 전경.
e스포츠란 컴퓨터 및 네트워크, 또는 기타 영상 장비 등을 이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를 일컫는다. 주된 소비층은 밀레니얼 세대며, 지난 2000년대 말부터 e스포츠를 직업으로 하는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하면서 오늘날의 본격적인 산업 형태를 갖추게 됐다.
e스포츠의 장르는 경기 규칙에 따라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FPS(1인칭 슈팅 게임), MOBA(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 등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게임 종목들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 도타2, 스타크래프트, 위닝일레븐, 피파 온라인, 서든어택, 카운터 스트라이크:글로벌 오펜시브, 하스스톤, 오버워치 등이 있다. e스포츠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 등에서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e스포츠는 공식으로 허가받은 e스포츠 협회가 여럿 설립되어 있는 우리나라 외에도 북미, 유럽, 중국 등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다만 일본의 경우에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방대한 비디오 게임 시장 규모에 비해 아직 상대적으로 e스포츠 산업의 발달이 느린 편이다. 그 이유는 유료로 진행되는 프로게임 대회를 금지하는 일본 정부의 도박 방지법 때문이다.
그렇다면 e스포츠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어떻게 될까. ‘포쿠스’에 따르면, e스포츠 산업의 수익 구조는 스폰서, 광고료, 중계권료, 게임공급 수수료, 관련 상품 및 티켓 판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간 수익은 지난 3년 동안 세 배가량 껑충 뛰면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5년 3억 2500만 달러(약 3600억 원)에서 2016년에는 4억 9300만 달러(약 5460억 원)로 뛰었고, 급기야 2017년에는 6억 550만 달러(약 6740억 원)에 도달했다. 그런가 하면 올 한 해 수익은 9억 600만 달러(약 1조 원)를 돌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오는 2021년이 되면 16억 5000만 달러(약 1조 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스포츠 팬들의 연령대는 18~34세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시청자들의 85%가 남성이며, 한 설문 조사 결과 미국의 경우에는 밀레니얼 세대의 22%가 e스포츠를 시청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야구를 보는 인구 비율과 비슷한 것으로, 이대로의 상승세라면 머지않아 야구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 ‘포쿠스’는 디지털 시대에 성장한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의 상당수가 축구나 아이스하키보다 e스포츠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e스포츠의 시장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는 지난 8월 런던에서 열렸던 ‘피파 18’ e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의 규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e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무려 2000만 명이 넘었다.
2017년 시애틀 ‘도타2’ 대회에서 우승한 ‘팀 리퀴드’는 1080만 달러(약 120억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상금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가령 ‘팀 리퀴드’는 지난 2017년 시애틀에서 열린 ‘도타2 디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하면서 1080만 달러(약 120억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당시 ‘도타 2’ 대회의 총상금은 2400만 달러(약 266억 원)였는데, 이는 일반 스포츠 대회에 견주어도 사실 상당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가령 지난 6월 열린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 대회의 우승 상금은 260만 유로(약 34억 원)였다. 테니스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에 비해 프로 게이머들은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으로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는 일부 프로 게이머들의 수입 또한 일반 운동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다. ‘팀 리퀴드’ 주장이자 ‘도타2’ 종목의 명실상부한 세계 챔피언인 독일의 쿠로 살레히 타카소미(25)가 지난 10년 동안 우승 상금으로 벌어들인 금액은 340만 달러(약 38억 원)였다. 누적 상금 2위는 같은 팀 소속의 아메르 알-바라퀴로, 310만 달러(약 34억 원)를 벌었고, 3위는 293만 달러(약 32억 원)를 벌어들인 사힐 아로라가 차지했다.
이는 10년 전에 비하면 괄목한 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우승 상금이 선수들에게 직접 지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년 전이었다. 현재 프로 게이머들의 수입은 정해진 계약에 따라 정확하게 분배 및 지불되고 있다.
일반 스포츠와는 달리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인기가 많은 e스포츠의 나라별 우승 상금을 보면, 1위는 중국으로 지금까지 약 6846만 달러(약 760억 원)의 상금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6300만 달러(약 698억 원)의 미국이, 그리고 3위는 5738만 달러(약 636억 원)의 상금을 거둔 우리나라가 차지했다. 그 뒤로는 스웨덴, 덴마크, 독일, 캐나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상금이 가장 많은 e스포츠 종목은 ‘도타2’다. 연간 리그의 총상금은 1억 3100만 달러(약 1450억 원)며, 최대 강국은 중국이다. 이밖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에는 4600만 달러(약 510억 원)의 총상금이 걸려있다.
‘팀 리퀴드’ 주장이자 ‘도타2’ 종목의 명실상부한 세계 챔피언인 독일의 쿠로 살레히 타카소미.
사정이 이러니 독일 시장도 반응하고 있다고 ‘포쿠스’는 말했다. 2016년 5000만 유로(약 648억 원)였던 e스포츠 수익은 2018년 9000만 유로(약 1116억 원)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런가하면 이스마닝의 응용관리대학에서는 유럽 최초로 e스포츠 관련 학사 과정이 개설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쾰른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e스포츠 조직인 ESL의 부회장인 얀 폼머는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대에서 e스포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이것은 과장이나 거품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런 붐을 타고 e스포츠 산업에 거대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독일 기업들도 속속 늘고 있다. 가령 게임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DHL, 메르세데스, 분데스리가 클럽 등이 그렇다. 가령 분데스리가 소속의 샬케04는 이미 지난 2016년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을 창단했으며, 이를 위해 프로 게이머, 트레이너, 매니저, 영양사를 고용한 상태다.
또한 VfL 볼프스부르크도 ‘피파 온라인’ 선수들과 계약을 맺었으며, 이밖에 VfB슈투트가르트, RB라이프치히,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FC아우크스부르크, 헤르타 BSC 베를린, 마인츠05, FC뉘른베르크, VfL보훔, FC쾰른 등의 구단들도 프로 게이머들과 계약을 맺은 상태다. 일반적인 축구 선수들처럼 팀을 이적하는 e스포츠 선수들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유럽 최고의 피파 온라인 선수인 시하 야사를라(25)는 1년 전 샬케04에서 RB라이프치히로 팀을 옮겼다.
그런가 하면 직접 온라인 축구팀을 창단하는 현역 축구 선수도 있다.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메수트 외질(29)은 취미로 하던 비디오 게임을 이제 사업화기로 마음먹었다. 은퇴 후 트위터를 통해 직접 e스포츠 팀을 창단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던 외질은 ‘e스포츠리퓨테이션’ 에이전트와 함께 현재 전 세계에서 선수들을 모집하고 있다. 그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선수 가운데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피파 세계 챔피언인 모사드 ‘음스도사리’ 알도사리(18)도 포함되어 있다. 알도사리는 지난 8월 초, 런던에서 열린 e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당시 우승 상금은 25만 달러(약 2억 7000만 원)였다.
외질은 자신의 팀을 전담 코치, 분석전문가, 심리 트레이너, 물리치료사 등을 갖춘 전문적인 팀으로 꾸려나갈 것이라고 말하면서, 런던에 선수들의 훈련소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e스포츠에 열광하는 것과 달리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령 FC 바이에른의 회장인 울리 회네스(66)가 그런 경우다. 지난 수십 년간 탁월한 리더십과 경영 능력으로 FC 바이에른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안정적인 구단으로 만든 회네스는 e스포츠를 가리켜 “완전히 바보같은 짓”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축구업계에서는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통하는 회네스에게 디지털 스포츠 시장은 일종의 도박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회네스의 이런 태도는 독일 사회 일부 구성원들이 e스포츠를 바라보는 회의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는 가상 속의 대회일 뿐 진정한 스포츠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e스포츠가 과연 진짜 스포츠일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끝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e스포츠를 가리켜 별다른 신체 활동을 하지 않는 데다 중독 위험마저 있기 때문에 취미 혹은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날로 높아지는 인기를 생각한다면 엄연히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한 ‘신중한 전략, 정확한 타이밍, 숙련된 기술’ 등을 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스포츠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e스포츠는 과연 스포츠일까. 연구에 따르면 e스포츠 선수들은 게임을 하는 도중에 보통의 운동 선수들과 비슷한 신체적 긴장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e스포츠가 엄연히 스포츠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쾰른 체육대학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e스포츠 선수들은 게임을 하는 도중에 보통의 운동 선수들과 비슷한 신체적 긴장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는 등 분당 400회 이상의 동작을 하는데, 이는 일반 사람들의 운동량에 비하면 네 배가 넘는 것이다.
또한 양쪽 손을 움직이는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결정내리기 위해서 뇌의 다양한 부분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모든 행동들은 마치 어려운 수준의 체스를 두면서 동시에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에 버금가는 강도 높은 운동이다. 다시 말해 손과 눈을 동시에 움직이는 운동으로, 탁구 선수들에게서도 쉽게 관찰되지 않는 극도의 긴장감을 요하는 동작이다. 훈련량도 일반 운동 선수에 못지않다. 가령 타카소미는 대회를 앞두고 매일 8~10시간씩 훈련에 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까닭일까.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의 선수 생활은 20대 중반이면 끝이 나고 만다. 나이가 들수록 민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현재 e스포츠에 대한 인식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가령 2013년 캐나다의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인 대니 레는 미국의 ‘P-1A’ 취업비자를 취득한 최초의 프로 게이머가 됐다. 이 비자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운동선수들에게만 발급되는 비자로, 한동안 e스포츠 선수들에게 발급이 허용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e스포츠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앞으로 모바일 게임으로 무대가 옮겨갈 뿐 그 영향력과 규모는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나타내듯 e스포츠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며,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