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나 설정, 수애가 맡은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따르는 영화를 내놓게 된 배경은 그런 갈증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세계로 가면 내가 채우지 못한 걸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서게 됐다”는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위치에 안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대신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 덕분에 자신만의 분위기도 한층 깊어진 듯했다.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 “욕망의 다른 이름은 열정…욕망을 열정이라 포장해왔다”
수애가 영화 주연을 맡은 건 2016년 ‘국가대표2’ 이후 2년 만이다.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팀의 이야기인 스포츠영화에 도전해 새로운 모습을 보인 그는 이번엔 상류사회로 진입하기를 노골적으로 원하는 인물을 맡고 관객 앞에 섰다. 영화 ‘상류사회’는 제목처럼 이야기도, 등장인물도 ‘속물’에 가깝다. 그들만의 ‘룰’을 통해 견고한 카르텔을 꾸린 상류사회로 올라서려는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가 큰 줄기다. 수애는 재벌가에서 운영하는 대형 미술관의 부관장. 남부러울 것 없는 부부는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욕망에 휘말려 더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한다.
“욕망을 굳이 감추지 않은 인물에 호기심이 생겼다”는 수애는 “진짜 상류사회라는 곳이 어떤지 알지 못하는 내 입장에서, 그들의 사회에 대한 궁금증도 작동했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베드신을 소화하는 건 크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극 중 옛 연인이자, 잘나가는 아티스트(이진욱 분)와의 짧은 외도 가운데 벌이는 베드신은 극 흐름에 전환이 되는 장면이라고 여겼다. 수위가 어찌됐든 수애가 베드신을 소화했다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끌기 충분한 상황. 이에 대해 그는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충분히 논의했고, 덕분에 촬영 현장에선 원활하게 찍었다”고 담담하게 돌이켰다.
“사실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지 않나. 크든 작든, 실현하든 포기하든 저마다 가진 욕망의 무게가 다를 뿐이지. 욕망의 다른 이름은 열정 아닌가. 나는 욕망이란 단어가 싫어 그걸 열정이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영화에서 수애는 성공을 위한 욕망에 휘말려 주위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런 모습은 관객에게 낯설지만 한편으론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제 막 정계 입문을 앞둔 경제학 교수인 남편(박해일 분)을 향해 내뱉는 노골적인 대사들이 수애의 입을 통해 나올 땐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남편을 향해 ‘네 꿈은 원대한 꿈이고, 내 꿈은 OO이냐’는 대사를 한다. 그 욕설은… 정말, 태어나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욕지거리였다. 하하! 바로 그 대사가 나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나한테 ‘힐러리 같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너도 클린턴 되고 나서 사고쳐!’라고 일갈하는 장면도 짜릿했다.”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모든 작품을 끝내고 나면 배우가 받는 느낌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번 ‘상류사회’는 수애에게 더 큰 잔향을 남겼다.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극복하는 인물”에 갖는 만족과 기대도 있지만 어느덧 ‘선배’라는 위치에 올라선 자신의 상황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류사회’에 나설 수 있던 배경에는, 함께 한 박해일 선배의 영향이 컸다. 작품을 할 때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꼭 같이 연기하고 싶었다. 이번에 해일 선배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봤다. 나는 과연 후배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많이 배웠다. 늘 배움의 과정이다.”
덤덤하게 말을 잇는 수애는 “요즘 가장 염두에 두고 추구하는 건 편안함”이라고 했다. 경력이 쌓이다보니 새삼스럽게 ‘선배’의 위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선배의 입장이 됐는데 지금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반성을 많이 한다”고 했다.
물론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수애는 데뷔 직후의 상황을 꺼냈다.
“첫 드라마가 MBC ‘베스트극장’이었고 그 뒤 미니시리즈 ‘러브레터’를 했다. 그때부터 중저음 목소리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감독님이 ‘너 때문에 채널 돌아간다’면서 목소리 톤 높이라고 혼을 내기도 했다. 목소리가 나에겐 핸디캡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목소리가 좋다.”
단아한 이미지는, 수애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다양한 작품에 참여할 기회도 안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 바뀌는 건 당연지사. 수애는 “지금은 (작품)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며 “그런 환경에서 내면을 단련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여유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초월명상을 배우고 있다는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혼자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상류사회’ 촬영을 마치고는 혼자 벨기에를 다녀왔다. “배우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만의 ‘뭔가’가 필요해 명상과 여행을 한다”고 했다. 요즘은 세계 어딜 가든 한국인을 만날 수밖에 없다. 알아보는 이도 많을 텐데 어떻게 혼자여행을 즐길까.
“아무도 못 알아볼 정도로 꽁꽁 싸매고 다닌다. 모자 푹 눌러쓰고 운동복에 운동화 신고 다니면 아무도 모른다. 하하! 혼자 다니면 동전을 많이 줍는다. 언젠가 친구한테 동전 줍는 얘길 했더니 ‘넌 땅만 보고 걸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 말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그렇다고 혼자 하는 여행을 멈출 생각은 없다. 수애는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말을 실천하긴 쉽지 않지만, 더 단련해 나중엔 모자 벗고 혼자 다닐 여유를 갖고 싶다”고 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