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전국민주동지회, 노동조합 본사지방본부, 노동인권센터 등이 지난 8월 30일 서울 광화문 KT 지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대법원의 판결과 달리 정 씨와 한 씨는 전혀 연대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에 앞서 KT노조 집행부는 노조 운영비로 2016년 1월 원고 226명에 대한 손해배상금 7215만 원(법정이자 포함)을 지급했다. 또한 노조 집행부는 법무법인 ‘태평양’ 선임 등 법무대리 비용으로 3억 4100만 원을 운영비로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는 매월 조합원들의 월급에서 1%씩을 공제해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운영비는 연간 7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4월 황창규 회장 취임 3개월 만에 노사는 직원 8304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단행하자는 데 합의했다. 당시 구조조정 방안에는 대학학자금 지원 폐지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를 후퇴시키는 안도 대거 포함돼 있었다. 그럼에도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측과 합의했고, 구조조정안 대부분이 관철돼 시행되고 있다. 동의를 받지 않은 복지 후퇴에 대해 조합원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로부터 모은 운영비를 써가며 소송에 대응하는 형국이다.
비용지출 결정이 KT노조 하급 회의기구인 중앙상무집행위원회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논란이다. KT노조 규약을 확인한 결과 중앙상무집행위원회는 조합원 총회, 전국대의원대회, 중앙위원회 아래의 하급 회의기구로 노조 예산변경 관련 결정 권한이 없다. 하지만 정 위원장 주재로 열린 중앙상무집행위원회는 해고 등 신변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신분보장기금’ 형태로 비용 지출을 결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7월 원고 226명은 정 위원장과 한 실장, 그리고 KT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손해배상금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정 위원장이 이끌 당시 KT노조 집행부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법무법인에 노조 운영비로 소송비를 지출했다. 특히 집행부는 법무법인 ‘광장’과 함께 업계 2~3위를 다투는 대형 법무법인 ‘태평양’에 소송 관련 비용의 80%가 넘는 2억 750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이한 것은 KT노조 기록에 지출항목으로 손해배상금은 조사연구비로, 법무대리 비용은 조사연구비와 기타사업비로 각각 기재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박 아무개 씨는 “정 위원장 등 당시 노조 집행부는 연대 책임을 회피하면서 조합원들의 피 같은 운영비로 막대한 손해배상금과 소송 관련 비용을 충당했다”며 “원고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선임한 변호사 비용이 2000만 원 미만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도대체 어떻게 노조 운영비가 쓰였는지 기막힐 뿐이다”라고 질타했다.
최근 대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청구 내용으로 2015년 7월 2차 소송에 508명, 2016년 3월 3차 소송에 686명이 참여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대법원이 노조와 위원장 등의 손해배상 연대책임을 확정 판결한 만큼 2차와 3차 소송도 유사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2차 소송 건은 이르면 9월 중에 2심 법원의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승소할 경우 KT 노조와 정 씨와 한 씨 등이 연대책임져야 하는 금액은 법정이자를 포함해 수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8월 20일 김 아무개 현 KT노조 위원장은 성명에서 “이전 집행부에서 일어난 사안이지만, 조합원들의 뜻을 확인하고 받들지 못한 명백히 잘못한 행위에 대해 위원장으로서 전 집행부와 조합 간부를 대신해 충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근로조건과 단체교섭 사안은 어떤 경우든 조합원들의 뜻을 묻고 받들겠다. (노조) 규약이 정한 노조의 중요 의사결정기구에서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하고 집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 아무개 KT노조 위원장 당시 집행부에서 사용한 소송 관련 지출 내역. 사진=KT 전국민주동지회
KT 내부조직인 전국민주동지회, 노동조합 본사지방본부, 노동인권센터 등은 정 씨를 횡령 등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이들 조직은 “정 씨는 즉각 한국노총 IT연맹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그와 한 씨에 대한 징계도 이뤄져야 한다. 불법 사용된 노조 운영비 내역을 조사 후 확인해 환수하고 2014년 노사합의 당시 또 다른 책임자인 황창규 회장도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씨는 2011년부터 2017년 말까지 KT노조 위원장을 연임한 후 현재 상급조직인 한국노총IT연맹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 씨 또한 현재까지 KT노조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정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한국노총IT연맹 관계자는 “정 위원장은 지금도 소속이 KT로 돼 있다. KT노조 시절 일어난 일인 만큼 KT노조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KT노조는 “담당자에게 메모를 남기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현 노조 집행부 간부인 한 씨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2014년 노사합의는 사리사욕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당시 비용 지출과 관련해선 집행부에서 노조 규약 절차에 따라 결의 후 집행됐다. 절차상이나 내용상으로 전혀 문제없는 사안이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곧 있을 2차 소송 2심 판결과 관련해 현 노조 집행부는 아직까지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판결 후 입장이 정리되면 그에 따라 조치를 이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KT 사측은 “노조의 내부 문제에 대해 사측은 조심스럽고 어떠한 입장도 내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