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전경. 연합뉴스
지난 8월 2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국민연금 주식대여 금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개인 투자자 접근이 제한된 공매도 제도 하에서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로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인데, 일주일 새 3만 3000명이 참여했다. 앞서 올라온 ‘공매도 금지’ 국민청원은 한 달 만에 24만 명 참여를 기록했다. 또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은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자산으로 국민에 피해를 주는 공매도를 지지하고 있다”며 “공매도는 가격 발견과 같은 순기능을 잃은 채 주가 하락으로만 작용, 국민연금기금 손실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7월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율을 가진 상장사는 300여 개에 달한다. 이에 국민연금은 공매도 세력 돈줄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상반기 5174억 원 주식을 대여해 86억 원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수익률도 2016년 1.44%에서 지난해 1.66%로 전년(1.44%)에 비해 소폭 상승했을 뿐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주식 대여로 얻는 수익은 크지 않다.
국민연금은 대여 주식이 공매도에 활용되는지 알 수 없고 외국인 공매도는 국민연금 기금 손실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액면분할 후 공매도 대상 종목으로 부상, 지난 7월 말까지 10% 넘는 주가 하락을 겪었다. 삼성전자 액면분할이 거래량 증가로 이어져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증권가 예상이 공매도에 무너진 것이다.
배동준 공매도제도개선을위한주주연합 대표는 “국민연금이 작은 수수료 수익에 취해 허벅지살을 뭉텅뭉텅 떼어 주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공매도 순기능이라고 말하는 고평가된 주가를 내려 시장 안정성을 가져온다는 부분은 국내 증시에서 다르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 종목에서 1년도 넘게 지속하는 외국인 공매도를 가격 발견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가격 변동이 적어 이른바 ‘안전주’로 불렸던 LG디스플레이는 1년 넘게 공매도 세력에 조정받고 있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를 달렸던 셀트리온은 지난해 10월 공매도 세력을 피하기 위해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다. 실제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는 사석에서 “공매도 때문에 죽겠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공매도로 주가 하락이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말하는 대여거래 수익률이 의미 없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지분 9.6%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삼성전자 주가가 공매도로 지난 5월 4일 이후 6월 말까지 10% 가까이 하락하면서 올해 상반기 국민연금이 기록한 국내 총 주식의 수익률은 –5.3%였다. 지난 2016년의 경우 시가총액 대비 공매도 비중이 높았던 코스피 종목 50개 중 절반인 25개에 대해 국민연금이 5억 원 넘는 주식 대여를 진행했는데, 이 중 8개 종목의 주가가 떨어졌다.
국민연금은 공매도 잔고 상위 기업 주식 보유현황과, 주식 대차 종목에 대한 대차 수익률 감안 전체 수익률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는 정보공개법을 들어 공개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전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팀 팀장은 “국민연금은 대여거래로 넘어간 주식이 불법 무차입 공매도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여부도 파악하지 못한 채 대여해 준 주식으로 어느 정도 수익을 올렸나만 가지고 수수료 부가수익으로 노령연금수급자에게 연금을 줄 재원을 확보했다고 말하고 있다”며 “개인 투자자가 많은 국내 증시에서 국민연금의 안일한 주식 대여가 외국인 공매도 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공매도로 인해 국민연금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주식 수탁은행에 대여거래를 위탁할 뿐 어떤 목적으로 활용됐는지를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국민연금은 대여 종목, 대여 수량, 수수료 수준이 대여 기준에 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한국예탁결제원의 대여거래 중개 시스템을 통해 대여거래를 진행한다. 대여거래 이후엔 주식을 빌려 간 차입기관이 해당 주식을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대여거래가 갖는 순기능을 믿고, 차입 기관의 활용 방식을 알 수가 없다는 게 국민연금의 설명이다.
8월 2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연금 주식대여 금지’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여기에 금융당국 역시 추가적으로 주식·채권을 발행하지 않고도 유동성이 증대되는 대여거래 순기능에 적극적인 제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최근 불거진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사태와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사건으로 금융당국이 공매도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시장에선 국민연금 대여 주식도 공매도 세력에서 무차입 공매도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대여거래 주식 활용을 주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차 주식이 재대차 재재대차로 번지며 주식 규모가 무한 재생산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공매도 거래를 요청할 시 주식 차입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해외 수탁은행을 통해 투자자 A에게 1만 주를 빌려주고 A가 투자자 B에게 재대차 1만 주, B가 투자자 C에게 재재대차 1만주를 하면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할 수 있는 주식 수는 3만 주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무차입 공매도는 시스템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지만,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68개사가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민연금만이라도 주식을 대여하고 적은 수수료를 챙기는 것을 막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민연금법 제102조 3항에 적시된 ‘증권의 매매 및 대여’ 중 ‘대여’라는 단어를 빼는 것만으로 공매도 불안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주식대여를 통해 기금을 운용하는 방식은 지난 2000년 12월 23일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최초 도입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대여를 빼는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 논의는 있었지만, 자본시장법이 허용하는 합법적인 공매도와 대차거래까지 제한될 수 있다는 반대로 무산됐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