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별로 주차공간을 분리했다. 인도 카스트 제도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국회는 지난 2012년 제2 의원회관을 준공했는데 의원전용 주차 공간을 배정했다. 가장 가까운 지하 1층 주차장은 전체가 의원전용이고 지하 2층은 20면이 의원전용이다. 보좌직원은 지하 2층부터 5층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계급별로 사용할 수 있는 주차장 층수를 나눈 것이 인도 카스트 제도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다.
한 국회 보좌진은 “경력이 오래된 보좌직원은 우리는 의원을 모시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의원들이 가까운 주차장을 쓰고 우리는 멀리 있는 주차장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더라. 그런데 젊은 보좌진들 생각은 다르다. 같은 사람인데 먼저 온 사람이 가까운 곳에 주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주종 관계나 다름없다. 최근 한 국회보좌진은 익명 게시판에 ‘국회의원 자식들 추석 열차표까지 예매해야 했다’고 폭로해 화제가 됐다.
이 보좌진은 “내가 의원 자식들 휴가 비행기표 끊는 것까지는 투덜거리면서 했다”며 “그런데 모 의원이 어젯밤 연락해 자식들 추석 열차표를 잡으라고 했다. 아침 7시부터 일어나 대기번호 1만 번을 받고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이거 뭐하나 싶다. 예매 실패하면 하루 종일 취소표 뜨는지 사이트 들어가서 봐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국회 경비 직원은 지하 1층에 일반 보좌진이 주차를 하면 단속을 하느냐는 질문에 “지하 1층에 단속 요원이 따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CCTV로 보고 있다가 일반 차량이 주차를 하면 내려가서 제지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하 1층에 주차했다가 제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채 의원은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2002년식 흰색 쏘나타 차량을 직접 운전해 출근한다. 지하 1층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이곳은 의원차량을 주차하는 곳이니 지하 2층으로 가야 한다”고 제지했다. 채 의원은 자신이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야 지하 1층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채 의원은 평소 수행원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국회의원 특권을 폐지하겠다는 그런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제가 직접 운전하거나 지하철을 타는 게 더 편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채 의원은 “국회 보좌진 중 한 명을 운전기사로 쓰지 않고 정책 등을 담당하게 하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나. 저도 멀리 갈 때는 수행원에게 운전을 부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 내 의원전용 공간은 또 있다. 건강관리실과 의원열람실 등이다. 의원전용 건강관리실은 약 345평 넓이로 헬스장, 수면실, 욕실과 사우나, 미용실 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에는 일반 기업에서도 직원 복지 차원에서 사내에 이런 시설을 많이 만드는 추세지만 문제는 일반 직원용 건강관리실과 국회의원용 건강관리실을 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의원회관 지하 1층에 있는 의원전용 건강관리실 입구.
한 국회 보좌직원은 “우리 같이 천한 것들과는 함께 씻기 싫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농담 섞인 해석을 내놨다. 이에 대해 한 국회의원은 “저도 의원용과 일반직원용을 왜 따로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의원들과 시설을 같이 쓰면 일반 직원들이 오히려 불편해 할 수도 있지 않나. 꼭 국회의원 특권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이 바로 앞에 있지만 국회는 의원들의 편의를 위해 의원회관 내에도 의원열람실을 따로 만들어 놨다. 기존 국회도서관에도 국회의원만 이용할 수 있는 의원 개인연구실이 5개나 있는데 의원회관에 또 이런 시설을 만든 것이다.
평일 오후 의원회관 의원열람실을 찾아가 봤지만 이용자는 한 명도 없었다. 직원 두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의원열람실 직원은 “이곳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보좌진도 이용할 수 있다”면서 “오늘은 이용자가 없지만 평소에는 이용자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출입과정에서도 의원들은 남들과 다르다. 모든 보좌직원과 출입기자, 방문객들은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지만 의원들은 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출입한다. 경비직원들은 새로 국회가 개원하면 모든 국회의원들의 얼굴을 외워야 한다. 국회의원의 얼굴이 출입증인 셈이다.
지난 2016년 국회는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던 ‘금배지’를 신분증으로 대체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가 국회의원 특권 남용 방지책을 두 달여간 논의한 끝에 내놓은 개선안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회 내 의원전용 시설은 왜 필요한 것일까. 국회사무처 측은 “국회라는 곳이 국회의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 아닌가.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의원전용 시설을 구별해 놓은 것”이라고 답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