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최근 2018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병역특례 대상이 되며 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상승했다. 특히 야구의 경우 국가대표로 뽑힐 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 몇몇 선수들이 병역특례를 이유로 차출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5월에 이어 또 다시 미국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왜 똑같이 국위선양을 해도 스포츠스타는 되고, 한류스타는 안 되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과연 한류를 선도하며 한국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한 연예인들도 병역특례 대상이 될 수 있을까?
# 병역법 개정 후 설 자리 더 좁아진 한류스타
지난 5월 개정된 병역법은 27세 미만의 경우 국외여행은 1회 6개월 이내, 최장 2년 이내로 제한되며, 허가 횟수도 5회까지로 제한됐다. 또한 28세 이상인 사람은 대학원, 홍보 대사 등 공익 국가 업무 수행, 형제 동시 복무, 각종 시험 등을 이유로 입대시기를 연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병역법 개정 전까지만 해도 한류스타들은 대다수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최대한 입대시기를 미루다 30세가 되면 입대하곤 했다. 가장 활동이 활발한 20대 시기를 연예 활동에 ‘올인’하겠다는 셈이다.
하지만 바뀐 병역법에 따라 만 28세가 된 한류스타들은 사실상 활동이 어려워졌다. 최근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3’를 촬영하던 도중 입대하게 된 가수 겸 배우 윤두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예전처럼 입대를 연기할 수 없어 결국 16부작으로 준비되던 드라마는 2회 축소한 14회로 막을 내렸다.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3’를 촬영하던 도중 입대하게 된 윤두준. 사진 출처 = ‘식샤를 합시다2’ 홈페이지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대학원 진학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입대를 미룬 것은 ‘편법’이었지 ‘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병역법이 개정된 후에는 연기할 방법 자체를 찾기 어렵고 28세 이후에는 해외 활동을 접어야 한다”며 “연기 방법을 찾는 것조차 알려지면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류스타들이 찾는 새로운 돌파구 중 하나는 의경 지원이다. 의경이 되기 위해서는 지원 후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합격한다면 약 반 년 후에 입소 날짜를 받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최근 하이라이트 양요섭을 비롯해 비투비 이민혁 등 연예인들의 의경 지원이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윤두준의 경우 의경에 지원했다가 탈락해 곧바로 입대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험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며 “의도적인 군역 기피가 아니라면 합법적 범위 내에서는 그들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여력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문화 영역 중 ‘연예’만 소외?
국가적 스포츠 행사에서 입상한 이들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것을 두고 “왜 스포츠는 되고, 문화는 안 되냐?”는 지적은 잘못됐다. 문화 영역 중 병역특례를 받는 분야도 있기 때문이다.
병역법 시행령 제68조의11(예술·체육요원의 추천 등)에 따르면,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2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내예술경연대회(국악 등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대회만 해당)에서 1위로 입상한 사람으로서 입상성적이 가장 높은 사람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따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에서 5년 이상 국가무형문화재 전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병무청장이 정하는 분야의 자격을 취득한 사람 등에게도 병역특례를 부여한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 따거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들처럼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군역을 마치게 된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을 비롯해 2013년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한 선우예권 등이 해외 유수의 콩쿠르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며 병역특례를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또 다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진다. 여전히 대중문화를 순수문화보다 하위로 두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가치를 수치로 따질 수 없다지만, ‘국위선양’이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전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알린 방탄소년단의 성과 역시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인을 얕잡아 ‘딴따라’라고 부르던 선입견이 아직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며 “확실한 기준이 없는 병역특례법을 대대적으로 손봐 한류스타들도 그 대상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 방탄소년단 페이스북
# 연예인의 특례대상 포함, 가능할까?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지난 7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는 “발레는 있는데 비보이는 없고 연극 1등은 있는데 영화 1등은 리스트에 없다”며 “병역특례 리스트는 많든 적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2018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자의 병역특례와 빌보드 차트에서 연이어 1위를 차지하고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 의원은 3일 SNS에 “바이올린 등 고전음악 콩쿠르 세계 1등은 군 면제 받는데 방탄소년단처럼 대중음악 세계 1등은 왜 면제 못 받느냐는 상식적인 문제제기가 발단이었습니다. 그 방탄소년단이 또 세계 1등을 했군요. 같은 음악이면 차별해선 안 됩니다. 아니 국위선양 기준에서 볼 때 오히려 한류를 선도하는 대중음악이 더 우대받아야 됩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 의원의 주장은 많은 이들의 동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법제화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계량화다. 빌보드를 포함해 어떤 시상식까지 그 대상으로 삼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칸, 베니스, 베를린영화제처럼 ‘3대 영화제’ 주요 부문 수상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3대’의 개념이 모호하다. 세 영화제 역시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해 혜택을 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가대항전에 나서는 스포츠스타와 한류스타를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스포츠스타의 경우 자신의 소속팀을 잠시 떠나 ‘태극전사’로서 올림픽, 월드컵 등에 참여하는 반면 한류스타들은 개인의 영달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한류스타들이 활동하며 그들의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