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년 3월2일 열린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김종필 국무총리 인준 투표 도중 국회의원들이 투표함을 몸으로 막는 등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
한나라당측은 또한 총리서리제는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규정된 바가 없으며, 총리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정부조직법에 따라 수석 국무위원이 총리권한대행을 맡으면 된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김 총리서리에 대한 임명행위가 무효로 될 경우, 그때까지의 권한 행사의 효력도 무효가 되어 국정에 큰 혼란을 불러들일 우려가 있으니 만큼 권한쟁의심판사건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국무총리서리의 권한행사를 중지시켜달라고 했다. 또한 6공 당시 총리서리 임명 때마다 평민당 등 야당의원들이 위헌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느냐며, 그런 발언 내용이 들어있는 국회 속기록을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다.
▲ 98년 3월26일 헌재 공개변론 모습. | ||
첫째로, 국가기관만이 권한쟁의 심판청구의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회 아닌 개개의 국회의원은 당사자 적격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서 헌법상 국무총리 임명에 앞선 동의권은 국회에 있는 것이지, 개개의 국회의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총리서리 임명은 오랜 헌법적 관행으로 정착된 것이며, 국회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여 국정공백을 초래하는 등의 특수 사정하에서는 대통령의 정치행위로 서리체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역대 국무총리 30명 중 18명이 국무총리 서리를 거쳤고, 그 가운데 3명은 서리로 재직하다가 퇴임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총리임명동의안 처리 지연도 문제 삼았다.
대통령이 국무총리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도 (2월25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그 처리를 회피하였고, 3월2일의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이 국회법을 어긴 채 사실상 공개투표를 강행함으로써 파행에 이르렀다는 것. 이처럼 국회의 국무총리임명동의안 처리 지연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행정부 구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역공했다.
▲ 김종필 당시 총리 | ||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재화 재판관)는 7월14일 청구인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1백50명이 낸 이 사건 심판청구에 대하여 ‘각하(却下)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권한쟁의 심판청구의 당사자는 국회라는 국가기관이므로 국회의원 개개인은 당사자 자격이 없다”고 판시한 데 이어 “청구인들은 다수당 소속 의원들로서 스스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한 가부를 결정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므로 권리보호의 이익도 없다”고 하였다(국무총리 서리체제의 위헌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헌재는 감사원장 서리 임명을 문제 삼은 제소에 대해서도 똑같이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후 국회는 8월17일 본회의에서 김종필 국무총리와 한승헌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각각 의결·통과시켰다.
서리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JP는 이런저런 공·사석에서 나를 보고 “한 원장은 나 때문에 덤으로 마음고생한다”면서 “웬 서리가 오뉴월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남아 있느냐”고 했다. 나는 7·8월에 더워지면 서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내 예언은 적중(?)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취임(3월3일) 5개월 반 만에 서리를 면하게 되었다. 다수당의 횡포에 청와대가 시달리고 부대낀 ‘불상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