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이 얻게 된 병역 혜택은 정확하게 말하면 ‘면제’가 아니라 ‘대체 복무’가 맞다. 병역법 제33조에 따르면, 올림픽에서 3위 이내(금·은·동메달) 입상하거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체육 분야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뒤 34개월 동안 체육 특기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면 된다. 물론 평소와 다름없이 선수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라 ‘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엄밀히 말해 2년 10개월 동안은 ‘민간인’이 아닌 ‘예술체육요원’ 신분이다. 또 이 기간 내에 야구를 그만두게 되면 대체 복무 혜택을 박탈당해 곧바로 입대해야 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프로야구 선수 병역 특례 언제부터?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병역 의무의 특례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73년이다. 당시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기자선정위원회가 ‘학술·예술 또는 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 중 국가이익을 위하여 그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를 필요로 하는 자’를 선발해 현역병 징집을 면제해줬다. 저개발국가였던 한국이 스포츠를 통해서라도 국제적인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세계무대에 명함을 내밀 만한 선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딴 양정모가 유일한 수혜자였다.
1981년 9월 서울이 올림픽 유치를 확정하자 이번엔 전두환 정부가 관련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는 계산 때문이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할 경우 병역 특례 혜택을 준다’는 구체적 기준을 정했다. 정상급 선수 육성을 위해 ‘한국체육대학교 졸업자 중 성적 상위 10%에 해당하는 선수에게도 병역 특례 혜택을 준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가 한 손에 꼽힐 만큼 적었던 터라 ‘특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원칙으로 굳어진 것은 서울 올림픽 종료 2년 뒤인 1990년이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올림픽 3위 이내 입상 혹은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병역 혜택 범위가 좁혀졌다. 이후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다만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 부분적인 변화가 생겼다. 바로 월드컵 4강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역대 최초로 16강에 진출하자 축구계에선 “월드컵 대표팀에도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스페인과의 8강전을 앞두고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도 특례 대상에 포함하기로 긴급 결정됐다. 4년 뒤 2006년 WBC에서 한국 야구가 4강 신화를 쓰자 이번엔 야구계에서 “축구와 형평성을 고려하면 WBC도 충분히 병역 혜택을 줄 만한 대회”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대회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WBC 4강’도 병역 혜택 리스트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상대적으로 병역 혜택 기회가 적은 아마 종목 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야구와 축구 대표팀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던 여론도 병역 특례 혜택에 대해선 “국민의 의무와 관련한 일을 ‘퍼주기’ 식으로 마구 결정한다”며 손가락질했다. 결국 이듬해인 2007년 월드컵 16강과 WBC 4강은 병역 특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2009년 WBC에서 한국 야구가 4강을 넘어 준우승까지 해내자 다시 병역 혜택 가능성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청와대 만찬에서 한 베테랑 선수가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선수들이 국가대표 선발에 더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병역 혜택을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건의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1년 만에 삭제된 ‘월드컵 16강과 WBC 4강’ 조항이 2년 만에 다시 부활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자 곧 없던 일이 됐다. 그 대회 대표팀에 포함됐던 미필 선수 네 명(추신수 박기혁 최정 임태훈)에게는 아쉬운 상황이 됐다.
금메달을 딴 방콕 아시안게임 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 국제대회 성적으로 병역 혜택 받은 선수는?
야구대표팀에선 그동안 8번의 국제대회를 통해 총 89명이 병역 혜택을 받았다. 상당수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스타들이다. 이들이 병역 혜택으로 얻은 유·무형의 이익은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이 선수들이 모두 군 복무를 하느라 2년씩 리그를 떠났다면, KBO 리그 역사도 다르게 쓰였을지 모른다.
역대 가장 많은 선수가 혜택을 받은 대회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이다. 프로 선수들의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된 대회였다. 한국은 22명 엔트리 전원을 군 미필자로 구성됐다. 이로 인해 고교 시절 팔꿈치 수술 경력으로 이미 군 복무가 면제됐던 이승엽(삼성· 대회 당시 소속팀)이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때 출전해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는 박찬호(LA 다저스) 서재응(뉴욕 메츠) 임창용(해태) 최원호 박재홍(이상 현대) 조인성 이병규 심재학(이상 LG) 진갑용 김동주(이상 OB) 김원형(쌍방울) 백재호(한화) 강철민 경헌호(이상 한양대) 김병현(성균관대) 홍성흔(경희대) 강봉규(고려대) 박한이(동국대) 신명철(연세대) 황우구 장영균(이상 인하대) 강혁(현대 피닉스)이다.
입대 시기가 임박했던 박찬호, 김원형, 박재홍, 심재학 등이 최대 수혜자였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박찬호는 병역 혜택과 동시에 FA 계약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고, 공익 요원 소집 날짜를 받아뒀던 심재학은 당초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던 강동우(삼성)의 대체 선수로 선발됐다가 입대를 면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병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만 강혁은 2004년 대대적으로 터진 병역 비리 사태 때 아시안게임 이전에 불법적으로 군복무를 피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 혜택을 박탈당했다.
2년 뒤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한국 야구가 동메달을 수상했다. 올림픽 야구 종목 최초 메달을 넘어 남자 구기 종목 사상 최초 메달로 기록됐다. 리그를 호령하던 베테랑 선수들을 모두 불러 모았던 대회라 군 미필자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손민한(롯데) 박진만(현대) 정수근(두산) 장성호(해태) 이승호(SK)가 이때 병역 혜택을 받았다. 이승호는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첫 해 송지만(한화)의 대체 선수로 발탁됐다가 값진 기회를 얻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혜택을 받은 선수는 많지 않았다. 당초 미필 선수들을 최대한 많이 뽑으려 했던 한국은 그해 초 열린 야구월드컵에 젊은 프로 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을 예행연습 삼아 내보냈다. 하지만 원래 프로 1.5군급이나 대학생 선수들이 주로 출전하는 이 대회에서 한국이 대만에 패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결국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망신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전략을 바꿨다. 다시 프로 최정예 대표팀이 꾸려졌고, 김상훈 김진우(KIA) 조용준(현대) 정재복(인하대)까지 단 네 명만 혜택을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는 선수들. 연합뉴스
특별 조항이 적용됐던 2006년 WBC는 메이저리거들을 포함해 11명이 병역 혜택을 받은 대회다. 최희섭(LA 다저스) 김선우(콜로라도) 봉중근(신시내티) 오승환 배영수(이상 삼성) 김태균 이범호(이상 한화) 전병두(KIA) 이진영(SK) 정성훈(현대) 정재훈(두산)이 그들이다. 서서히 국가대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한국 프로야구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새 얼굴들이 대거 등장하던 시기다. 철저히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했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 미필자 14명이 대거 참가한 게 그 증거다. 류현진(한화) 김광현 정근우(이상 SK) 윤석민 이용규 한기주(이상 KIA) 송승준 강민호 이대호(이상 롯데) 권혁(삼성) 이택근 장원삼(이상 히어로즈) 고영민 김현수(이상 두산)이 당시 주인공이다.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올림픽에서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준우승에 빛나던 2009년 WBC 대표팀에도 4강 혜택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남은 기회는 아시안게임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그리고 올해 아시안게임 엔트리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던 이유다.
광저우 대회에서는 11명이 혜택을 받았다. 추신수(클리블랜드) 강정호(넥센) 고창성 임태훈(이상 두산) 안지만 조동찬(이상 삼성) 양현종(KIA) 송은범 김강민 최정(이상 SK)이다. 아마 선수 가운데 롯데에 입단 예정이던 김명성(중앙대)도 포함됐다. 인천 대회에선 황재균 손아섭(롯데) 유원상(LG) 이재학 나성범(NC) 이태양(한화) 차우찬 김상수(삼성) 김민성 한현희(넥센) 오재원(두산) 나지완(KIA) 홍성무(동의대·KT 입단)가 혜택을 받았다. 이번 대표팀에선 최원태 김하성 이정후(이상 넥센) 함덕주 박치국(이상 두산) 박해민 최충연(이상 삼성) 박민우(NC) 오지환(LG)까지 총 9명이 수혜자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FA 등록일수 보상’ 군필 선수들도 군침 프로야구 선수에게 몸은 곧 돈이다. 국가대표 자리가 그들에게 ‘명예’를 안길지는 몰라도, ‘실리’ 문제로 접근하면 손해 보는 장사인 것은 분명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리는 3월은 개막을 앞두고 한창 막바지 시즌 준비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고, 프리미어 12나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이 열리는 11월은 기나긴 레이스를 마친 뒤 몸도 마음도 지쳐 쉬고만 싶은 시기다. 병역 혜택이라는 확실한 ‘당근’이 있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다. 군 미필 선수들에게는 어떻게든 잡고 싶은 기회지만, 이미 병역을 해결하고 여러 차례 국가대표로서 의무도 다한 선수들은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 호소할 만하다. 이런 이유로 KBO는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을 위한 포상 정책을 야구 규약에 명문화했다. 기본적으로 선수 전원은 국가대표 소집기간 동안 1일 30만 원씩 국가대표 수당을 받는다. 대회 성적에 따른 포상금도 있다. WBC는 우승 10억 원, 준우승 7억 원, 4강 3억 원이 각각 책정돼 있다. 올림픽 역시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하면 1억 원을 기본으로 받게 되고, 이후 본 대회에서 금메달 10억 원, 은메달 5억 원, 동메달 2억 원 순으로 포상금이 주어진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올림픽 동메달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포상금이 2억 원이다. 프리미어 12는 대회 주최 측이 지급하는 상금을 선수들에게 배분한다. 물론 포상금만으로는 수십억 원대 몸값을 받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역부족이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선수가 아니라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것보다 KBO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쪽이 금전적으로는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어서다. ‘국가대표 보상 포인트제’는 그래서 생긴 제도다. 특정 선수가 국제대회에 나갈 때마다 참가 일수와 성적에 따른 포인트를 차곡차곡 적립하는 방식이다. 1포인트는 FA 등록일수 1일로 전환할 수 있다. 이전에는 참가 일수만큼만 일괄적으로 포인트가 주어졌지만, 지난해 9월 규정이 바뀌어 대회 성적에 따른 추가 포인트도 보상 받게 됐다. 한 선수가 부상으로 장기 이탈해 FA 자격 취득에 필요한 등록일수를 채우지 못했을 경우, 이 포인트는 생각보다 더 유용하게 쓰인다. 한 야구 관계자는 “국가대표가 되면 받을 수 있는 포인트가 늘어나면서 올해는 군필 선수들도 은근히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 싶어 했다”고 귀띔했을 정도다. 일단 참가만으로 10포인트(FA 등록일수 10일)가 주어지는 대회는 WBC와 올림픽, 프리미어 12, 아시안게임, APBC다. 추가 포인트는 각 대회마다 달라진다. 아시아 국가들만 출전하는 아시안게임과 23세 이하 혹은 프로 3년차 이하 선수들만 출전하는 APBC는 반드시 우승을 해야만 각각 15포인트와 10포인트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아시안게임 우승시 25포인트, APBC 우승시 20포인트를 각각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군필 멤버들도 모두 FA 등록일수 25일을 확보했다. 프리미어 12는 4강부터 10포인트씩 추가로 쌓인다. 4강에 10포인트, 준우승에 10포인트, 우승에 20포인트가 적립돼 우승시 최대 50포인트까지 받을 수 있다. 2015 프리미어 12에 출전해 우승한 한국 선수단은 모두 FA 등록일수 50일을 가져갔다. 올림픽과 WBC는 우승시 가장 많은 60포인트를 확보할 수 있는 대회다. 올림픽은 동메달에 20포인트, 은메달에 10포인트, 금메달에 20포인트씩이 차례로 적립된다. WBC는 8강-4강-준우승 순으로 10포인트씩 올라가고 우승시 20포인트가 더해진다. 물론 군 미필 선수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혜택을 받는다면 포인트 보상은 받을 수 없다. 포인트 적립은 이미 군복무를 마친 선수나 병역 혜택이 없는 대회에 출전한 선수에게만 한정된 혜택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