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소재 LG트윈타워 건물 전경. 박은숙 기자
구 회장은 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타계한 이후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지난 6월 29일 공식적으로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구 회장의 ㈜LG 지분은 6.12%에 불과하다. 고 구본무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을 수 있지만 이 경우 1조 원 규모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상속세 납부 의무가 있는 상속인 또는 수유자는 상속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상속세의 과세가액 및 과세표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구 회장의 경우 오는 11월 20일까지 지분 상속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셈. 그러나 구 회장의 상속세 신고 및 납부기한이 석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LG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남동에 위치한 고 구본무 회장의 자택 또한 여전히 상속이 이뤄지지 않은 채 고인 명의로 남아 있다.
‘8000억원에서 1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한번에 납부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재계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LG그룹 관계자는 “다양한 방안을 두고 검토 중이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LG는 공익법인을 활용하는 카드를 버렸다. LG는 지난 8월 30일 공익재단 이사장에 이문호 전 연암대 총장을 선임했다. 그간 줄곧 그룹 총수가 맡아오던 공익법인 이사장직을 구 회장이 맡지 않은 것. 현행법에서는 공익법인에 출연한 계열사 지분에 대해 5% 이내까지 상속·증여세를 감면한다. 때문에 일부 기업에서는 공익법인 출연을 통해 상속세를 감면받고 공익법인을 지배하는 형태로 지배력을 유지해왔다.
LG연암문화재단과 LG연암학원은 ㈜LG 지분을 각 0.33%, 2.09% 보유하고 있다. 두 공익법인이 증여세를 감면받는 5%를 채울 경우 각 4.67%, 2.91%, 총 7.58%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일부에서 ㈜LG 주식 6.12%와 LG상사의 자회사인 판토스 지분 7.5%만 보유하고 있는 구 회장이 지배력 강화를 위해 공익법인을 활용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개정안을 통해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키로 했다. 공정위는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 금지하되, 상장 계열사에 한해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15% 한도 내에서 예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국세청 또한 공익법인 전담팀을 꾸리고 200여 개 공익법인 전수조사에 나섰다. 이에 LG가 공익법인 이사장 자리를 포기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 LG는 경영방침상 상속 등에서 ‘꼼수’를 쓰는 것과 거리가 있었다“면서도 ”공익법인 활용 방안이 필요했더라도 그럴 수 있는 분위기나 상황도 아니다”고 전했다. LG 사정에 밝은 재계 인사는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구 회장이 경영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LG 공익법인은 ㈜LG 보유 지분도 적다”고 전했다. 구 회장이 최대주주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주식만 일부 상속받고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상속세를 내는 방안이 힘을 받고 있다.
그룹 지배력이 막강한 가문에서 후계를 정해 승계하는 만큼 친족 간 경영권 분쟁 리스크는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LG는 고 구본무 회장의 지분 11.06%를 포함하면 서른 명의 친족이 43.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구 회장 입장에서 추가 지분 확보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보는 이유다.
구 회장은 지분 확보보다 총수로서 성과를 보이는 것이 먼저다. 규제대상에서 비껴나갔지만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판토스 보유 지분도 처리해야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선대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총수에 오른 구 회장의 과제는 지분 확보보다 경영 성과를 보여 능력을 입증하고 입지를 안정화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