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 판빙빙이 최근 영화 출연료를 받는 과정에서 실제 수령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썼다는 이면계약 의혹에 휘말렸다. 판빙빙으로 시작된 논란은 중국 엔터테인먼트 관련 주식의 폭락으로 이어졌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은 출연료를 받는 중국 톱스타의 몸값이 과연 타당한지를 두고도 논란이 시작되고 있다. 특정인만 특혜를 받는 고액 출연료나 세금 문제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특히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 판빙빙으로 촉발된 차이나 엔터 쓰나미를 이래저래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영화 ‘스킵트레이스’ 홍보 스틸 컷
# 판빙빙 미국 망명설, 왜?
중국어권 매체들은 이달 초 일제히 판빙빙이 미국 망명을 시도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홍콩 빈과일보 등의 매체는 “판빙빙이 8월 31일 미국 LA공항에 도착해 입국 절차를 밟았다”며 “기존에 판빙빙이 가진 주재원 비자를 정치보호 비자로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주장의 발단은 LA공항에서 판빙빙을 목격한 한 누리꾼의 트위터 글이다. 진위 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목격담이지만, 워낙 구체적으로 진술된 탓에 중국어권 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판빙빙이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을 신청했고, 허가까지 받았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중국 출신의 스타 청룽(성룡)의 도움을 받았다는 추측성 보도까지 이어졌다. 이에 청룽 측이 즉각 부인하면서 진위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른 쪽에서는 세금 탈루 의혹을 받는 판빙빙이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거나 방어하지 않은 채 돌연 망명을 신청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판빙빙의 미국 망명설은 곧 국내에도 실시간으로 전해지면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렇다면 판빙빙은 지금 중국에서 왜 뜨거운 감자가 됐을까. 시작은 중국 CCTV의 전 진행자인 추이융위안(최영원)의 폭로다. 추이융위안은 지난 7월 중국 SNS인 웨이보를 통해 “톱스타 OO가 영화 출연을 하면서 이중계약서를 작성했고, 정작 영화 촬영장에 4일만 나왔다”고 썼다. 판빙빙이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곧 누리꾼들은 추이융위안이 지목한 톱스타가 판빙빙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영화 ‘만물생장’ 홍보 스틸 컷
그의 주장에 따르면 판빙빙이 영화와 출연 계약을 맺으면서 1000만 위안(약 16억 원)을 받는다는 계약서를 썼다. 하지만 이는 이중계약이라는 주장. 실제로는 이와 별도로 5000만 위안(약 83억 원)을 받는다는 이면계약을 맺었다고 폭로한 뒤 이를 뒷받침할 계약서 사진을 공개했다. 겉으론 16억 원을 받은 것처럼 꾸미고, 뒤로는 83억 원을 챙기면서 실제로는 100억 원에 이르는 출연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추이융위안의 폭로에 따르면 판빙빙은 실제로 이 영화 촬영장에 단 4일만 참여했다.
이에 판빙빙 측은 “증거도 없는 음모”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판빙빙이 몸담은 회사가 2015년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추가 보도가 등장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판빙빙이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 여배우 수입 5위에 오른 백만장자 스타란 사실은 충격을 더욱 키웠다. 중국 내 여론은 물론 외신까지도 이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판빙빙으로 촉발된 사태를 다루면서 “중국 국가세무총국이 대대적인 연예계 탈세 조사에 나선다”고 알렸다.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중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다. 판빙빙 사건을 계기로 당국의 세무조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영상 관련 회사의 주식은 일제히 폭락했다.
판빙빙은 추이융위엔이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정작 8월부터 공개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에 판빙빙의 출국금지설, 연금설이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판빙빙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한 LA공항 목격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미국 망명설까지 나돌게 된 셈이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판빙빙 개인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최근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투입된 중국 자본이 상당한 데다 자회사 개념으로 국내에 설립된 회사들도 있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관련 주가 폭락이 드러내듯, 판빙빙 사태 추이에 따라 국내 엔터테인먼트와 한류스타의 활동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영화 서우지 포스터
# 망명 가능한가…중국 등진 여배우들
판빙빙의 미국 망명설의 진위는 여전히 확인할 수 없지만 의혹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앞서 여러 이유로 중국을 등진 여배우들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배우는 탕웨이다. 그는 2008년 홍콩 영주권을 취득했다. 2007년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에 출연하면서 중국에서의 연기활동이 금지당했다. ‘색, 계’는 일본에 협력하는 친일정보부장의 비밀을 캐내다가 결국 그와 사랑에 빠지는 중국 독립운동가의 이야기. 친일파를 사랑하는 역할을 맡고 친일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탕웨이는 중국에서 압박을 받았고, 결국 홍콩 영주권을 따고 활동 무대를 옮겼다.
이쯤에서 궁금증은 높아만 간다. 추이융위안은 중국에서 만연한 고액 출연료와 이중계약과 탈루 의혹의 당사자로 그 많은 스타들 가운데 왜 하필 판빙빙을 지목했을까. 이에 대해 중국 여론은 영화 ‘서우지(휴대폰)’를 주목한다.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화이브라더스가 배급한 이 영화는 펑샤오강 감독이 연출하고 판빙빙이 주연한 작품. 인기 아나운서의 불륜이 주요 내용이다. 영화가 개봉한 뒤 주인공 아나운서가 추이융위안을 모델로 삼은 것 아닌지 의심을 샀다. 추이융위안은 영화에서 모욕적으로 묘사된 인물 탓에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가운데 최근 ‘서우지’의 후속편이 촬영을 시작하자, 그 작품에 출연한 가장 유명한 판빙빙을 지목해 이중계약서를 폭로했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