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이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뒷걸음쳤다. 문 대통령밖에 안 보이던 여권 권력구도에도 균열이 발생했다. 그 틈새 사이로 당·정·청 5인방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문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다. 이들의 역학관계는 여권발 권력구도 재편의 분수령이다. 물밑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왼쪽부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사진=청와대 제공
“포스트 문재인이 누구냐고? 임 실장이지.” 다수의 친문(친문재인)·운동권 그룹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2인자가 없다”는 지적에 이같이 한목소리를 냈다. 그는 뜨거운 감자다. 여권 내부에서도 ‘대망론과 견제론’을 동시에 받는다. 지난 6·13 지방선거 이후 단행된 청와대 비서관 인선, 문 대통령과 임 실장의 관계를 담은 미확인 정보지 등은 임 실장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에선 임 실장의 파워를 재확인했다. 다른 한쪽에선 임 실장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됐다. 그만큼 그의 위상이 커졌다는 얘기다.
여권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6월 26일과 8월 6일 각각 임명한 청와대 김종천 의전비서관, 김우영 제도개혁비서관 등은 ‘임종석 사람’으로 분류된다. 김근태(GT)계인 김 비서관은 지난해 대선 때 임 실장과 함께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2016년 4·13 총선 땐 서울 은평을 공천에 도전했던 임 실장을 도왔다. 임 실장도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GT의 정치적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GT가 열린우리당 시절 임 실장을 특별히 챙겼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우영 제도개혁비서관도 ‘임종석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반면 같은 운동권 출신인 김영배 정책조정비서관, 민형배 자치발전비서관 등은 임 실장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선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도 ‘임종석 견제용’이란 설이 파다했다. 이 비서관이 몸을 담았던 혁신과통합(혁통)은 2012년 총선 때 임 실장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공천 철회 및 사무총장 사퇴를 주장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개혁 공천’이었다. 임 실장은 2012년 공천 당시 1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상태였다. 대법원에선 무죄로 판명 났다.
당시 싸움의 본질은 민주당 중심의 친노계와 외곽에 있던 친노계의 알력다툼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 대표는 당시 ‘탈당 카드’까지 들고 나오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구민주계 출신 당직자들은 “혁통 출신 인사들이 공천에서 밀리자, 어깃장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초대 대표였던 한명숙 전 의원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임 실장은 공천도 직도 포기한 채 불명예 퇴진했다. 친노계 관계자는 “한 전 대표의 ‘누님 리더십’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초 여의도에 떠돌았던 임 실장의 대기업 인사 개입, 군 관련 정보보고 누락 등으로 문 대통령과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내용의 정보지도 ‘임종석 견제용’의 일환으로 보인다. 여권 물밑에선 임 실장의 대망론과 견제론이 강하게 맞붙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관전 포인트는 ‘임종석 vs 이해찬’ 관계설정이다. 임 실장은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1순위다. 이 대표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만든 개국공신이자, 여의도의 대표적인 킹메이커다. 킹과 킹메이커의 미묘한 역학구도다. 또한 이 지점은 수평적 당·청 관계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중·후반기 주도권 확보와 차기 대권 구도 등이 ‘임종석·이해찬’ 관계설정에 따라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당분간 양자는 당·청 공동운명체론을 앞세워 전진하겠지만, 당 균열이 커질 경우 ‘전략적 동거관계’로 한 단계 낮추면서 치열한 힘겨루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8·27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친문계는 물론, 86그룹 등 운동권 일부도 분화한 상태다. 전임자인 추미애 전 대표와 김부겸 장관 측근들도 8·27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에서 ‘임종석 견제론’이 확전될수록 이해찬 호가 출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전당대회 막판 변수로 작용했다.
“세력과 구도를 눈여겨봐라.” 전계완 정치평론가의 말이다. 임 실장을 주축으로 하는 86그룹이 문재인 정부의 신주류로 부상했지만, 당·정·청에는 이해찬 사단이 적지 않다. 청와대 한병도 정무수석과 정태호 일자리수석은 2007년 대선 당시 이해찬 후보 비서실장과 13대 국회 보좌관을 각각 지냈다. 백원우 민정비서관도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연) 간사 출신이다. 차기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노영민 주중 대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활동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태년 정책위의장, 윤호중 사무총장 등도 여기 출신이다. 당내 사단급 우군을 거느린 ‘킹메이커’ 이 대표의 도움 없이 임 실장이 독자적 정치행보를 꾀할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구도도 변수다. 임 실장의 주 활동무대는 서울이었다. 16·17대 모두 서울(성동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으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전남 장흥이다. 지역색은 옅지만, ‘호남 대망론’ 프레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남지사를 지낸 이낙연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김부겸 장관은 여권 필승 카드인 영남주자다. 이에 대해 전 평론가는 “흔히 여권의 충청과 호남주자는 ‘대망론’, 영남주자는 ‘필승론’으로 얘기하지 않느냐”라며 “정권 후반기 ‘호남 대통령’의 당위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모두 부산 출신이다.
이에 따라 정부내각에 몸을 담고 있는 이 총리와 김 장관의 움직임도 분주해질 전망이다. 둘의 강점은 인지도다. 애초 손학규계였던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에 지명되면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국회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사이다 총리’라는 애칭을 얻으면서 친문 지지층에 녹아든 모양새다. 김 장관도 대구·경북(TK) 지역주의 벽에 도전하면서 ‘바보 노무현’에 빗대 ‘바보 김부겸’으로 불린다. 높은 인지도는 지지도로 연결됐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8월27∼31일(공표는 9월3일)까지 5일간 전국 성인남녀 2507명을 대상으로 범진보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이 총리는 15.3%를 얻어 박원순 서울시장(15.8%)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김 장관은 7.3%로 6위에 올랐다. 임 실장은 2.8%로, 직접 등판 가능성이 낮은 이 대표(2.9%)보다 0.1%포인트 낮았다. 3∼5위에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13.2%). 김경수 경남도지사(12.8%), 이재명 경기도지사(7.8%)가 이름을 올렸다.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도 5.0%로 7위를 차지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이며,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총리와 김 장관이 ‘포스트 문재인’으로 거듭날지는 미지수다. 이 총리의 경우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고건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의 길을 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장관은 지난 8·27 전당대회에서 BH(청와대) 오더를 기다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여권발 권력재편의 변수다. 최근 최저임금, 고용쇼크, 부동산값 폭등 과정을 거치면서 여권 내부에서도 ‘장하성 비토론’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회의장 출신인 정세균 의원은 “국민 체감과 거리가 멀다”며 장 실장에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20대 국회 전반기까지 정책 보좌관 업무를 봤던 한 인사는 “장 실장 라인에서 결재가 막혔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위론에 빠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충고했다.
당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갈등설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김앤장(김동연·장하성) 리스크’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문 대통령은 경제투톱 교체 없이 2기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두 사람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했지만, 당 한 관계자는 “사실상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까지가 마지막 기회가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그 이후부터는 21대 총선 공천권 싸움”이라고 귀띔했다. 김앤장이 동시 낙마할 경우 여당 공천 물갈이 폭이 커질 수도 있다. 21대 낙천 대상자가 그 자리를 꿰찬다면, 개혁 공천의 명분으로 중진 물갈이를 단행할 수 있어서다. 이 지점은 여권 5인방의 권력다툼의 백미가 될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