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신한금융은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오렌지라이프 인수를 결정했다. 인수 금액은 2조 2989억 원(지분 59.15%, 주당 4만 7400원)으로 LG카드(현 신한카드, 7조 2000억 원)와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3조 4000억 원)에 이어 3번째로 큰 신한금융의 M&A다. 오렌지라이프 인수금액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은 6000억 원 수준이다. 오렌지라이프는 내년 초 신한금융의 14번째 자회사로 편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회사가 통합되면 자산 규모 61조 원(신한생명 30조 원, 오렌지라이프 31조 원)이 된다. 삼성(258조 원)·한화(110조 원)·교보(98조 원)·농협(64조 원)생명에 이어 5번째 규모로, 일거에 빅5로 도약할 수 있다. 올해 PCA생명을 흡수하며 5위로 도약했던 미래에셋생명(35조 원)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다. 4위인 NH농협생명과 거리를 2000억 원 차이로 바짝 좁혀 치열한 순위 다툼이 예상된다.
서울 중구 오렌지라이프 본사. 지난 5일 신한금융지주가 이사회를 열고 라이프투자유한회사가 보유한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보통주 4850만 주(지분율 59.15%)를 주당 4만 7400원에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총 인수금액은 2조 2989억 원이다. 연합뉴스
신한금융은 당분간 오렌지라이프와 신한생명을 ‘투트랙’으로 운영한 뒤 추후 합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렌지라이프가 사명을 변경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데다 상장 폐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분리 경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 단 5일 차이로 ‘ING생명’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점이 당초 염두에 뒀던 연내 합병을 접은 결정적 이유로 전해진다. 사명 변경은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짓기 위한 MBK파트너스의 무기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렌지라이프의 ING생명의 브랜드 사용 기간은 약 3개월 더 남아 있는 상황이었지만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어쩐 일인지 이를 포기하고 9월 1일자로 사명변경을 단행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MBK가 사명변경 시기를 무기로 신한금융과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한금융은 지난 8월 31일까지만 끝냈어도 오렌지라이프보다 가치가 월등한 ING의 브랜드를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ING 글로벌 본사에서도 신한이 인수할 경우 브랜드 이용 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신한금융은 이 문제를 고려해 지난 8월 30일 이사회 의결을 위해 이사회 개최를 사전 통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신한금융은 사명변경일인 9월 1일을 넘겨서야 인수를 확정지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신한이 협상 막판에 MBK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며 “ING라는 브랜드는 아깝지만 어차피 결국은 ‘신한’으로 통일해야 하는 만큼 과감히 포기하자는 결정이 나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신한금융의 결단은 사실 비용 측면에서도 적잖은 대가를 치렀다. 금융권에 따르면 오렌지라이프가 사명을 바꾸면서 300억~4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이름으로 마케팅을 해야 하고, 지점 인테리어나 비품, 문서 등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는 한동안 별도 브랜드로 영업을 한 뒤 서서히 통합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도 과거 LG카드 통합 사례처럼 물리적·화학적 결합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007년 통합된 신한카드와 LG카드의 경우 전산과 노조 등 유기적인 통합을 마무리하는 데 2년가량이 걸렸다.
여기에 오렌지라이프는 외국계 회사 색깔이 뚜렷하다. 반면 신한생명은 임원-부서장-중간관리자-직원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직급체계를 가지고 있다. 두 조직의 문화적 차이를 좁히는 게 관건이다. 고용보장과 관련한 노조와 협상도 해결 과제다. 오렌지라이프 노조는 신한금융에 7년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기존 사례에 비해 2~4년 많은 수준이다.
앞서 MBK파트너스는 2013년 오렌지라이프(당시 ING생명)를 인수하면서 노조와 3년 고용보장과 단체협상 내용 유지에 합의한 바 있다. 중국 안방보험에 인수된 동양생명과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은 각각 3년, KB금융에 인수된 KB손보(옛 LIG손보)는 5년의 고용안정을 보장받았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회사가 합병하면 사업 기반 및 연계영업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평가한다. 신한생명은 방카슈랑스(은행창구에서 보험판매)와 비대면채널인 텔레마케팅(TM)영업이 강하고 오렌지라이프는 전속설계사를 통한 대면영업을 강점으로 지니고 있다.
신한금융은 오렌지라이프 인수 후 자산과 순이익 기준으로 KB금융을 제치고 금융지주사 1위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지주사 1위 자리를 놓고 신한금융과 KB금융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KB금융의 자산은 463조 원으로 신한금융(453조 원)보다 10조 원 많았지만 오렌지라이프의 자산 규모인 31조 원을 합하면 신한금융의 자산이 21조 원 더 많아진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 기준으로 보면 KB금융이 1조 9150억 원으로 신한금융(1조 7956억 원)보다 1194억 원 많았다. 그러나 오렌지라이프의 상반기 순이익 1836억 원을 더하면 신한금융의 순이익이 642억 원 더 많아진다. 덩치와 순익 모두 신한금융이 1위에 오른다.
이와 관련,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앞으로도 내실 있는 오가닉(Organic) 성장과 국내외 인오가닉(Inorganic) 성장의 지속적인 추진을 병행해 그룹 가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