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학제 개편과 함께 새롭게 발간된 북한의 새 교과서에는 ‘김정은 우상화’ 작업이 관철돼 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집권 이후 이듬해인 2012년, ‘12년제 의무교육’을 골자로 한 교육시스템 전면 개편 법령을 공표했다. 이렇게 교육시스템에 자기 ‘색(色)’을 드러내기 시작한 김정은 위원장은 그해부터 서서히 본인의 ‘우상화’ 내용을 교과서에 삽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2년제 의무교육을 도입한 2014년, 새로운 교과서를 배포했다.
이 새 교과서에 김정은 위원장의 우상화 대목이 대거 포함됐다. 김 위원장의 짧은 일대기와 미천한 경력을 감안하면 무슨 내용이 있겠냐 싶겠지만 앞서의 선대와 마찬가지로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 활동(이하 혁명 활동)’ 과목을 새롭게 편찬해 그 뜻을 널리 전하기 시작했다.
서울통일교육센터 엄현숙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혁명 활동’은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 과정에 각각 배정된 것으로 확인된다. 초급중학교에선 21과 22시간 분량으로, 고급중학교에선 총 4장-14절 25시간 분량으로 새로이 배정됐다.
고질적인 물자난으로 교과서 물려받기가 일상인 북한에서도 이 새 교과서 보급만큼은 한 학생도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해당 교과의 교원용 참고서에는 그 교과의 목적을 두고 이렇게 적시됐다. “혁명 활동에 대한 교수는 오늘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원수님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가슴깊이 지닌 참된 혁명 전사들로 키우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교과목을 통한 김정은 위원장의 우상화 목적을 굳이 숨기거나 하지 않은 셈이다.
그 내용은 김정은 위원장의 탄생과 가정사, 혁명가로서의 성장, 비범한 예지력과 탁월한 영도력, 훌륭한 품성 등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 기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 활동 과목처럼 여러 스토리텔링을 통해 특출성과 비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엄현숙 박사는 논문을 통해 기존의 그것과 비교해 차별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단 살아온 일대기가 짧기 때문에 그 탄생과 가정에 대한 비중이 적은 반면, 후계자로서의 정당성과 역량을 과시하는 대목이 대대적으로 첨부됐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후계자로 점지되고, 또 얼마 안 가 그 권좌를 이어받은 김정은 위원장의 약점을 최대한 상쇄하고자, 그리고 ‘3대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자 노력한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알려졌다시피 본처의 아들이 아니다. 선대에서 강조해온 ‘가정적 배경’과 ‘혈통’ 면에서 약점이 많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새로운 혁명활동 교과서에선 앞서의 경우와 달리 가정에 대한 언급을 대폭 축소했다.
앞서 김정일의 경우 교과서에서 김일성의 정실이자 본인의 친모인 김정숙은 물론 그 친인척까지 대대적으로 강조했지만, 김정은의 친모인 고용희와 친인척에 대한 언급은 ‘혁명적 가정’ 정도로 단출하다.
새롭게 발간된 북한의 새 교과서. 연합뉴스
“어느 해인가 초고속 배 생산에서 세계적으로 이름 있다고 하는 외국의 한 회사 기술자가 우리 나라에 왔었다. 그 기술자는 회사의 시험운전사 겸 기관전문가로서 초고속 배 운전기술에서 제노(최고)라고 뽐내는 사람이었는데 ‘마운틴’이라는 배까지 가지고 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어리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와 한번 겨루어보실 결심을 하시고 그날 밤으로 기차를 타고 원산으로 가시었다. 영웅다운 담력과 배짱, 뛰어난 지략으로 경기에서 이겼다.”
그런가하면 특유의 ‘과장’은 매한가지지만 특별히 주목할 부분도 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벌써 3살 되시던 때부터 자동차를 운전하시였으며 8살도 되시기 전에 대형 화물차들이 많이 다니고 굽인 돌이와 경사지가 많은 300여리 구간의 포장하지 않은 도로를 승용차를 몰고 질주하시여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신 적도 있었다. (중략) 얼마 후 승용차는 산골길을 누비며 쾌속으로 달렸지만 너무도 어리신 분이 차를 능숙하게 몰며 굽인 돌이가 많고 기복이 심한 길을 속도 내여 질주하시니 처음 한순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일군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앞서의 엄 박사는 교과서의 이 대목을 두고 “김정은 교과서에 제시된 사례는 선대의 모범과 거리가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정신, 도덕적 품성의 완벽을 추구한다”라며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즉 앞서의 대목은 김정은의 특출성과 비범성을 나타내지만 그 과정에서 미성년자 불법운전, 운전면허 미취득, 과속위반 등 법이 정한 규율을 위반했다는 점이다. 모범성면에서 완벽하게 묘사됐던 선대들과는 달리, 교과서 속 김정은은 개구쟁이 같은 인간적 면모도 엿보인다. 선대들이 살던 과거와는 다른 시대상을 살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캐릭터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교과서를 통한 김정은 우상화 작업은 ‘혁명 활동’뿐만이 아니다. 애초 말과 글을 통한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삼는 국어와 윤리는 물론 체제 선전의 수단이기도 한 음악무용 과목에도 김정은 우상화가 관철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i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