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좌천·범일구역통합2지구 조합원 수십여 명은 지난 8월 27일 상경해 두산건설(주) 사옥 앞에서 시위를 가졌다.
부산 동구 좌천·범일구역통합2지구(통합2지구) 조합원 수십여 명은 지난 8월 27일 상경해 두산건설(주) 사옥 앞에서 시위를 가졌다. 이들은 앞서 지난 3월에도 두산건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이유는 명료하다. 조합원들은 두산건설이 근거 없는 이유로 시공권을 요구하며 사업진행을 못하도록 막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두산건설이 재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조합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을 주도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부산시 동구 좌천동과 범일동 일대에 자리한 매축지마을은 ‘부산 도심 속의 오지’, ‘시간이 멈춘 곳’ 등으로 불린다. 마을은 이 같은 수식어처럼 낙후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도 주목되는 요인이다. 통합2지구는 바로 이 매축지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재개발사업조합이다. 계획 층수는 최대 49층, 총 세대수는 2000여 세대에 이른다.
재개발에 나선 주민들이 기대감을 갖는 것은 북항재개발사업이 결국 매축지마을 남단에 자리한 한국허치슨터미널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렇게 되면 구도심에서 북항재개발지구와 문현금융단지를 지나 서면으로 이어지는 부산 전체의 핵심이 되는 거대한 상업업무중심지구가 형성된다. 매축지마을은 바로 이 핵심 지구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상황이 녹록지가 않다. 통합2지구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 착수가 지금으로서는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통합2지구는 일부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 ‘3지구 조합’과 법적 소송이 진행되는 갈등에 놓여 있다. 통합2지구 주민들은 기존 ‘3지구 조합’의 배후에 두산건설이 있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두산건설은 해당 지역의 도시환경정비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2005년 6월 기존 3지구 조합과 시공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기존 3지구 조합은 사업성 결여로 2007년 2월 부산시 고시에 의거해 통합2지구로 편입됐다.
매축지마을 일대 현재 모습.
하지만 기존 3지구 조합 측이 부산 동구청을 상대로 통합2지구 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조합설립인가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이에 통합2지구 조합원들은 두산건설 본사 앞에서 잇달아 집회를 개최했다. 해당 소송을 사실상 두산건설이 주도한다는 게 통합2지구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통합2지구 조합원들이 두산건설에 대해 날을 세우고 나선 것은 기존 3지구 조합 측이 두산건설의 조력을 공공연하게 적시한 데 따라서다. 기존 3지구 조합은 최근 배포한 재개발 소식지를 통해 “두산건설이 조합의 행정소송을 적극 지원할 것이며, 조합의 모든 소송비용은 조합 대여금에서 제외하겠다는 의견을 조합에 전달했다”면서 “이번 소송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동구청을 상대로 소송 진행 중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통합2지구 핵심 관계자는 “두산건설은 기존 3지구 조합과 체결한 시공계약이 해당 조합의 사업추진 불능으로 인해 계약이 해지된 문제인데도 불구, 이를 근거로 통합 2지구의 시공계약을 요구하다 좌절되자 시공참여의 특혜를 받으려고 조합 압박수단으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행위는 대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파렴치한 행위”라며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야 마땅한 꼼수 경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두산건설 김현수 부산지사장은 이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단언한 뒤 “본사 홍보팀을 통해 공식 입장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두산건설 측으로부터는 아무런 해명이 나오지 않았다.
막대한 재개발 이익을 사이에 두고 발생한 대기업과 주민들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이 부산 동구청의 안일한 행정 탓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부산동구청이 통합2지구를 인가하면서 기존 3지구의 조합 자격 문제를 깔끔하게 매듭짓지 않은 까닭에서다.
동구청이 이처럼 한 지역 내에서 복수의 조합이 존재할 수 있도록 안일한 행정을 펼치면서 갈등은 현재 제로섬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통합2지구 조합원들은 최근 최형욱 구청장 체제로 바뀐 동구청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주길 바라고 있다.
통합2지구 관계자는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는데도 이를 방기한 것은 무능한 행정의 표본”이라며 “소송이 길어지면 그 피해가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동구청이 속히 지혜를 짜내 행정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보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