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공판 이후 한 검찰 관계자가 내놓은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수수 혐의 사건 평이다. 검찰의 구형은 이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진 지 150일 만이자, 5월 초 첫 재판에 들어간 이래 넉 달 만이었다. 350억 원대 다스 자금 횡령과 110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의 구형량은 징역 20년이었다. 당초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의 구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검찰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낮은 구형을 선택했다. 구형 후 검찰 내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평이 우세하다. 직접 뇌물을 받은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인데, 왜 구형량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높을까. 그 이유를 자세히 짚어봤다.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20년, 벌금 150억 원, 추징금 111억여 원을 구형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을 나와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 “박 전 대통령 징역 30년은 ‘국가 혼란 야기죄’ 포함”
“검찰이 밝힌 구형 이유에 답이 있다.”
구형 배경에 대해 묻자 앞선 검찰 관계자가 내놓은 설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을 직접 받고, 심지어 국회의원 자리로 매관매직까지 했지만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과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 괘씸죄가 정치적, 사회적인 분위기로 더 가중된 사건이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미 정치적인 공소시효가 다 끝나 ‘부관참시’하는 사건”이라며 “개인의 도덕성을 봤을 때는 이 전 대통령이 훨씬 악의적이지만, 그로 인한 국가적 혼란은 박 전 대통령이 크다”고 풀이했다.
실제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 2심 결심 공판에서 징역 30년을 구형하며, “박 전 대통령은 국정 질서를 혼란에 빠뜨렸고,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이르게 하는 등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에게 부여된 권한을 사인에게 나눠줬다”고 범죄로 인한 여파를 진단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 혼란’ 같은 단어 대신, ‘권력형 비리’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검찰은 6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사건은 최고 권력자였던 제17대 대통령의 총체적 비리 행각이 낱낱이 드러난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며 “피고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 위임받은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남용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통령의 본분을 망각하고 재벌과 유착한 것으로 최고 권력자의 극단적인 모럴 해저드 사례”라며 “전례를 찾기 어려운 부패 사건으로 엄정한 법의 심판이 불가피하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결심 공판 때 검찰 워딩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통령이 사익을 추구한 것을 강조하는 게 이 전 대통령 사건이라면, 박 전 대통령 사건은 국가를 사인에게 넘긴 더 큰 범죄라는 판단이라는 점을 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직접 주머니에 뇌물을 받은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구형된 벌금이 더 큰 것 역시 이를 방증한다. 앞선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 2심 결심에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벌금 1185억 원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는데,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1심 결심에서 5분의 1 수준인 “벌금 150억 원과 추징금 111억 원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는 데 그쳤다.
# “유죄 입증은 이 전 대통령 사건이 더 쉬워”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재판에 응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최후진술에서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나는 모든 사법절차를 따랐다”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서서 매우 송구스럽다. 부정부패는 치욕스럽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최후 변론만 듣고 넘어가기에는 이 전 대통령의 혐의가 너무 많다. 이 전 대통령 혐의 수는 박 전 대통령만큼이나 다양하다. 기소된 범죄 사실은 다스 비자금 등 특경법상 횡령 4개, 특가법상 조세포탈 1개, 다스 투자금 회수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1개, 삼성그룹 소송비 대납 및 국정원특활비 수수 등 특가법상 뇌물수수(특가법상 국고손실, 정치자금법 위반 포함) 9개 등 모두 16개에 해당한다. 박 전 대통령(18개)과 비슷한 수준인데, 법조계에서는 “상대적으로 혐의 입증이 비교적 잘된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박 전 대통령 사건만큼,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20년, 벌금 150억 원, 추징금 111억여 원을 구형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을 나와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실제 검찰 수사 단계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은 대부분 수사에 협조했고, 삼성 측도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다스 소송비용을 대납했다고 진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무죄가 날 가능성이 박 전 대통령보다 낮다는 평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 중 한 명은 “아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수사를 받았으면 20년이 아니라, 더 중형을 구형받았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최후변론에서 혐의 하나하나에 대해서 다투기보다는 “내 잘못은 반성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한 일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얘기한 점도 이 같은 설명을 뒷받침 하는 근거다.
# 최종 법원 판단은?
그렇다면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나올까. 현재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 중 가장 무거운 것은 특가법상 뇌물수수다. 특가법의 뇌물죄 가중처벌 조항에 따르면 수뢰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이 전 대통령은 피고인신문에서 검찰의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스스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쳤는데, 결국 법조계는 다스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 맞는지, 삼성전자에서 대납해준 다스의 소송비가 뇌물로 인정되는지에 따라 양형 규모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구형한 형 이상으로 선고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나이 등을 감안할 때 대부분 유죄가 나온다는 전제 하에 징역 15년 안팎이 나오는 게 법원 입장에서도 가장 무난한 판단”이라고 풀이했다.
안재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