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일요신문이 BMW 520d 차종 등 화재 유발 제작결함 차량 리콜 정비 견적서 25건을 분석한 결과, 520d 차량 정비 견적서 3건에서 ‘ECU 프로그래밍’이 적시된 것을 확인했다. 견적서에 ECU 프로그래밍이 적히지 않은 차량에선 대부분 사이드미러를 자동으로 펴고, 후방 카메라 위치를 조정하는 프로그래밍(코딩)이 초기화됐다. 코딩 초기화는 EGR 모듈 교체와 함께 ECU와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작업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일부 부품 교체로 차량 내 코딩 전체가 초기화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잇단 차량 화재 사고가 발생한 BMW의 결함 은폐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BMW 한국지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프트웨어인 ECU는 이른바 자동차의 두뇌로 엔진이나 변속기는 물론 출력 및 토크, 브레이크 상태 등 자동차의 거의 모든 부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차량 내 전자장비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일부 성능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최근 한 완성차 업체가 자동차 시동 꺼짐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엔진 출력을 높이는 방식의 ECU 프로그래밍을 진행한 것이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리콜 사례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은 차량 결함을 완벽히 해결하기 위한 성격이라기보다 고객 불편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BMW는 차량 화재 리콜 과정에서 지난 4월 환경부에 제출한 배출가스 부품 결함 시정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BMW가 결함을 은폐·축소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설계 전반이 BMW 차량 화재 원인임에도 결함 시정 계획은 국토부와 환경부에 각각 달리 발표, 결함을 은폐·축소했다는 것.
BMW가 환경부에 낸 520d, 420d Gran Coupe 등 1만 3037대에 대한 리콜 계획서에 따르면 “EGR 쿨러가 고온의 배출가스에 의해 파손되면 냉각수가 누출돼 엔진이 파손될 우려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BMW가 국토부에 화재 원인으로 밝힌 내용과 같다. BMW는 국토부에 제출한 리콜 계획서에서 “고온의 배기가스가 냉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흡기다기관에 유입 화재가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환경부에선 엔진 파손이었다가 국토부에 화재로 달리 표현된 수준이다. 또 BMW 측은 지난 8월 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EGR 쿨러가 고온의 배출가스에 의해 파손, 파손된 쿨러에서 나온 냉각수 침전물이 쌓여 있다가 고온의 배기가스에 노출돼 불이 붙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결국 동일 결함에 대한 시정 계획이 지난 4월엔 ECU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었다가 지난 8월 리콜에서 EGR 모듈, 즉 하드웨어 교체로 바뀐 셈이다.
BMW가 화재 위험을 알고도 ECU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라는 미봉책을 낸 뒤 차량 전반의 화재 위험성을 하드웨어로 한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BMW는 4월 EGR 밸브, EGR 쿨러 결함에 따른 내용으로 EGR 밸브가 이물질 등에 의해 초기 상태로 복귀되지 못하고 열림 또는 닫힘 상태로 고착된다면서 ECU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시정 계획으로 낸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물질이 밸브를 열거나 닫는 물리적 결함에 대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진행하려 했던 것. BMW 사정에 정통한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BMW는 하드웨어로 화재 원인을 한정했지만, 소프트웨어에도 어떤 문제가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BMW가 지난 4월 환경부에 제출한 리콜 계획서(위) 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최근 화재로 불거진 리콜에서 동시 처리하고 있다. 사진은 BMW 520d 차주가 받은 리콜 견적서 중 일부(아래). 일요신문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 민간 전문가들과 소비자협회가 주장한 ‘EGR 바이패스 밸브에 대한 ECU 프로그래밍 오류’가 차량 화재의 새로운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드웨어 교체와 함께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 사실 바이패스 밸브 재프로그래밍 아니냐는 것.
앞서 소비자협회는 리콜 대상이 아닌 BMW 차량 2대와 리콜 대상인 BMW 차량 4대를 이용해 진행한 주행 실험에서 리콜 대상인 차량은 주행 중 바이패스 밸브가 열리는 현상이 발견됐다고 했다. 바이패스 밸브는 배기가스가 쿨러를 거치지 않고 곧장 엔진으로 들어가 연비나 산화질소 배출량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EGR 바이패스 밸브가 산화질소 감소를 위해 탄력주행이나 감속 운전 시 열리도록 설계되면서 뜨거운 배기 온도에 따른 화재 위험이 상존했다는 것이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BMW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모두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뒀던 셈”이라며 “하드웨어만의 결함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한편 BMW코리아는 리콜 시작 이후 제기된 코딩 초기화와 같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교통안전공단이 BMW 차량의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 주행 중에도 바이패스 밸브가 열리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실험을 통해 검증하기로 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 부문을 살피겠다는 것.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바이패스 작동 오류로 화재가 발생하는지 실험을 통해 밝힐 것”이라면서 “실험에서 BMW 차량 화재 원인을 하드웨어 결함에 제한할 수 있는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간 상관관계 등을 다각도로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목소리’ 큰 차주, 리콜 빨라진다? BMW코리아가 차량 화재 리콜에서 불만 목소리를 크게 내는 차주를 EGR 모듈 리콜 우선순위에 올리고 있다. 특히 렌터카 대차를 지속 요청하는 차주는 당초 리콜 예약 일정보다 빠르게 처리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렌터카 대여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 28일 520d EGR 모듈 교체를 받은 박 아무개 씨(47)는 당초 10월 24일로 리콜 일정이 잡혔다. 박 씨는 “렌터카를 요청하자 처음에 기아차 K5를 내주겠다고 했다”면서 “벤츠 E클래스나 아우디 A6와 같이 동급 차량을 달라고 하자 리콜을 해줬다”고 했다. 6일 리콜을 받은 520d 차주 김 아무개 씨(38)는 “내년 1월 14일로 예정됐던 리콜이 대차를 받자 10월 10일로 앞당겨지더니 9월 6일 리콜이 완료됐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대차로 현대차 대형세단 아슬란을 받았다. 아슬란은 단기 렌트 기준 하루 약 18만 원 상당이다. BMW코리아가 밝힌 연내 리콜 완료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예약 일정이 차주 목소리 크기에 따라 꼬이는 데 더해 BMW 화재 리콜이 유럽과 일본으로 번지면서 부품 수급에도 차질을 겪는 탓이다. BMW 일본법인은 지난 8월 31일 총 3만 9000대 리콜 방침을 정했다. BMW가 유럽서 예정한 리콜 대상 차량은 32만 4000여 대에 달한다. BMW코리아 리콜전담센터 관계자는 “긴급 안전점검을 받았을 시에 큰 이상이 없어 정상으로 판명된 차량은 후순위 대상으로 10월 말 부품 수급 이후에야 리콜이 진행될 예정”이라며 ”대차 요청 차주에 대한 부품 교체가 먼저 이뤄지는 것에 대해선 아는 바 없다”고 했다.[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