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왼쪽)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각 사
이번 결과로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경영능력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반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삼성카드보다 파격적인 조건 제시를 통해 코스트코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코스트코는 국내에서 1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1국가, 1카드사 제휴 정책’과 ‘회원제 운영’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코스트코는 카드사로부터 가맹점수수료율을 낮춰 상품 판매가격을 인하해 소비자에게 혜택을 돌려주겠다는 방침이다. 코스트코 매장에서 카드 결제는 독점 계약을 체결한 카드만 사용 가능하고 코스트코 회원 100만 명을 고객으로 유입 가능하다는 점에서 카드사에게 코스트코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만큼 코스트코의 방식은 카드사들에게 출혈 경쟁을 야기하면서 다른 대형 카드가맹점들이 카드사들을 압박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 원기찬, 재계약 실패로 경영능력 시험대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인사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 왔지만 금융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2014년 삼성카드 대표 취임 당시 카드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원 사장은 삼성카드의 디지털 경영을 선도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17년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원 사장은 2015년 코스트코와 재계약을 진두지휘했으며 0.7%란 초저 카드수수료율로 재계약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카드수수료율은 카드사의 수익과 직결된다. 삼성카드가 코스트코와 체결한 카드수수료율은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전체 가맹점 평균수수료율은 2.09%에 비해 불과 3분의 1 수준이다. 대형마트 평균 카드수수료율이 1.5%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코스트코의 0.7%는 초저 수준이다.
삼성카드는 올해 1분기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와 시장점유율 격차를 2% 대까지 좁히며 신한카드를 바짝 뒤쫓던 상황에서 코스트코 재계약에 실패했다. 카드업계 1위를 꿈꿔 왔던 원기찬 사장으로선 재계약 실패가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카드는 카드업계 3위인 현대카드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또한 원 사장은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이란 악재도 헤쳐 나가야 한다. 금융사 경영실적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당기순이익이다. 원 사장 취임 첫해인 2014년 삼성카드는 6560억 원 규모의 당기순이익을 시현했지만 삼성카드가 당시 보유했던 제일모직과 삼성화재 지분을 2000억 원 규모에 매각하면서 거둔 일시적인 성과였다.
삼성카드는 2015년 3337억 원, 2016년 3494억 원, 2017년 3867억 원 규모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외형 성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삼성카드의 순이익 중 2015년 이후 10% 안팎은 르노삼성의 배당금이었다.
삼성그룹은 1995년 자동차산업 진출을 위해 삼성중공업 자동차사업부문(삼성자동차)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IMF외환위기를 맞아 삼성차가 경영난에 시달리자 삼성그룹은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결국 프랑스 르노그룹이 지난 2000년 삼성자동차 지분 80.1%를 사들였고, 삼성 계열사로 유일하게 삼성카드가 현재까지 지분 19.9%를 보유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2015년부터 획기적으로 배당을 늘렸다. 2015년 1400억 원, 2016년 3104억 원, 2017년 2135억 원 등 3년간 총 6639억 원을 배당했다. 삼성카드는 지분에 따라 3년간 르노삼성의 배당금의 5분의 1규모인 1321억 원을 챙겼다. 만일 르노삼성의 배당금을 반영하지 않았다면 삼성카드는 2017년 순이익은 오히려 전년에 비해 감소했고, 2016년 순이익 역시 전년에 비해 5% 미만 증가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삼성카드의 올 상반기(1~6월) 연결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은 1942억 원으로, 전년 동기 순이익 2135억 원에 비해 9.0% 줄었다.
카드업계 유일한 상장사인 삼성카드는 카드업계를 둘러싼 악재들이 반영되면서 주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원 사장 취임 후 삼성카드 주가는 2016년 9월 13일 최고점 5만 5300원을 찍은 후 이달 현재 3만 5000원 안팎에서 횡보 중이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당사가 코스트코와 체결한 카드수수료율이 0.7% 수준이라고 전해진다. 그 출처가 경쟁사인지 코스트코인지 모르지만 사실과 다르다. 여신전문금융법상 명시한 적격비용에 따라 그보다 높은 수준이다”라고 해명했다.
지난 18년간 코스트코와 체결한 카드수수료율 변동 여부에 대해 이 관계자는 “확인하는 중이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 정태영과 현대카드 ‘승자의 저주’ 전망 우려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부회장은 이번 코스트코와의 계약 체결과정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했다. 정 부회장은 코스트코를 통해 부진에 빠진 현대카드의 수익성 개선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기 불황으로 위축된 소비 심리가 회복되지 않고 코스트코를 통한 매출 또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정태영 부회장과 현대카드에게 ‘승자의 저주’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번 코스트코와의 계약으로 당분간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번 계약을 위해 코스트코에 초저가 카드수수료율, 파격적인 제휴 혜택 확대 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전산시스템 구축 등 초기 추가 비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카드는 삼성카드가 제시할 수 없는 조건을 코스트코에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카드수수료 측면에서도 삼성카드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기에 승자가 된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현대카드는 실적과 재무상태도 양호하지 않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현대카드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77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08억 원에 비해 40.8%나 감소했다. 이 기간 현대카드를 포함한 전업 8개 신용카드사들의 순이익이 31.9%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카드의 순이익 감소 비율은 평균치를 9%포인트나 상회하는 수준이다.
현대카드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앞서 지난 1분기 회수 불가능한 채권 200억 원을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하면서 그만큼 순이익도 줄었다.
현대카드는 부채성 비율로도 불리는 ‘레버리지 비율’이 금융당국의 제한 수치에 근접해 있어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레버리지 비율이란 기업이 타인자본에 의존하는 수준을 말하며 유동성 비율과 함께 재무위험을 측정하는 비율이다.
금융당국은 카드사의 건전성 강화를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6배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카드의 올해 상반기 기준 레버리지 비율은 5.6배로 금융당국의 제재 수치에 근접한 상태다. 같은 기간 삼성카드의 레버리지 비율은 3.5배로 현대카드에 비해 훨씬 양호한 수준이다.
정 부회장은 코스트코와 계약 체결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현대카드 회원님들, 기뻐해 주세요. 내년 5월 24일부터 코스트코(Costco)에서는 현대카드와 현금만 통용됩니다. 혜택을 상향시킨 코스트코 카드는 출시 예정입니다.”라고 소감을 적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코스트코와 계약한 카드수수료율은 공개할 수 없다. 영업비밀이다. 다만 업계에서 통용되는 수준으로 체결한 것으로 안다”며 “이제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본격적인 제휴를 위해 준비할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제휴 혜택 제공과 전산시스템 구축 등과 관련한 비용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게 없다. 현재로선 계약 체결 당일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 외에 당사의 입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카드는 앞서의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코스트코가 고객에게 제공했던 독보적 혜택과 현대카드의 마케팅 역량을 더해 코스트코 회원들에게 맞춤형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간단한 입장을 밝혔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