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일 사상 처음으로 당정청 전원회의를 열고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소득주도성장 논란, 경제지표 악화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로 접어든 상황에서 적폐청산을 돌파구로 내세운 셈이다.
야권에선 “임기 내내 적폐청산만 할 것이냐”는 쓴소리가 나왔다. 경제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친문 의원은 “적폐청산은 숙명이다. 이걸 하라고 국민들이 문재인을 대통령을 뽑아 준 것이다. 임기 동안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적폐청산 말고 딱히 내놓을 카드는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집권 2기를 맞은 문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적폐청산을 강조함에 따라 사정기관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질 전망이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또 다른 비리들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 인사는 “두 대통령을 포함해 지난 정권 실세들이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찾아내는 일에 주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재인 정부는 해외범죄수익환수합동조사단(단장 이원석 부장검사)을 꾸려 유력 인사들의 해외 재산을 추적 중에 있다. 이명박 박근혜 최순실 등이 주요 타깃이다. 이들이 해외에 숨겨놓은 비자금을 찾아내겠다는 목표로 5월 22일 조사단이 출범했지만 실적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해외 은닉 재산 대부분이 여러 루트를 거쳐 세탁됐거나 조세회피지역에 보관되고 있어 발견이 쉽지 않다.
현 정권이 시중은행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가시적인 적폐청산 결과물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 박근혜 적폐 수사 과정에서 수많은 자료와 진술들도 확보한 상태다. 여기엔 친 정권 성향으로 분류됐던 금융인들에 대한 조사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성골로 통했던 영포라인 출신 친이 인사는 일본에 차명계좌를 개설했다. 한 시중은행 일본 지점을 통해서다. 액수는 100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 권력 기관이 도움을 준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앞서의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할 때 일본 계좌 얘기가 여러 번 나왔다. 금융권에서 ‘MB 4대천왕’이라고 불렸던 인사 중 한 명이 개입했다. 박근혜 정부 때 문제가 될 뻔했는데 흐지부지됐던 사안이라고 한다. 은행과 국가 기관을 동원해 해외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이다. 정권 최고 실세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경우 홍콩지점에서 부적절한 돈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 돈은 MB 정권 시절 주력 사업이었던 자원외교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명의는 친이계 인사와 친분이 있는 중국계 한국인이라고 한다. 자원외교에 혈세가 투입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나랏돈을 빼돌려 해외에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MB 금융권 4대 천왕’이 이끌었던 은행들이 사정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점친다. 4대 천왕은 어윤대(KB금융지주) 김승유(하나금융지주) 강만수(산은금융지주) 이팔성(우리금융지주)이다. 사정당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MB 정권 때 실세들이 은행들을 쥐락펴락하면서 어떻게 부정한 돈을 빼돌렸는지 광범위하게 확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의심을 받고 있는 시중은행 해외지점 계좌에 송금된 시기가 MB 정권 말기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권 교체를 앞두고 모종의 일들이 벌어졌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친이계 주변에선 MB와 가까운 한 실세 인사가 이를 주도했다는 얘기가 파다한데, 그는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이다.
박근혜 정권도 칼날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MB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에서도 ‘친박 낙하산’ 인사들이 금융권을 장악했었다. 서강대 금융인 출신을 일컫는 ‘서금회’도 그중 하나다.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포착되진 않았지만 박영수 특검 당시 박근혜 최순실은 물론 친박 실세들이 한 시중은행과 결탁해 각종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대두됐었다.
이와 관련해 사정당국에선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기업이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한 친박계 전직 의원이 은행에 외압을 행사했고, 그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첩보를 확인 중이다. 이 기업은 대출을 받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별다른 담보 없이 거액을 빌릴 수 있었고, 아직도 갚지 못했다. 대출을 받을 당시에도 은행 내부에선 ‘최고위직 임원이 직접 챙기는 회사’라는 말이 돌았는데, 이 임원은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받는 친박 전직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 석연치 않은 대출이 한두 건이 아니더라. 이로 인해 은행이 피해를 본 경우가 꽤 있었다”면서 “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지난 정권에서 이뤄진 기업 대출 등에 대해 전수조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