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는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많은 은퇴자들이 창업을 꿈꾼다. 그들 상당수는 소자본 자영업 전선에 뛰어든다. 퇴직금에 노후자산을 보태고 여기에 대출까지 받아 점포를 내지만 ‘생존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출간해 현재 9쇄까지 찍은 ‘골목의 전쟁’의 저자 김영준 씨는 “나이 든 사람이 사업을 시작하면 더 쉽게 망한다”고 경고한다. 창업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뻔히 예측할 수 있는 실패 요인 정도는 피해가자는 거다. 9월 5일 이태원역 근처 카페에서 김영준 씨(34)를 만났다.
은퇴를 앞둔 이들 중에선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실패의 고배를 마시곤 한다. 연합뉴스
─저서 ‘골목의 전쟁’을 통해 ‘나이 든 사람이 사업하면 더 잘 망한다’고 주장했다. 왜 그럴까.
“일단 창업을 위한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신규 자영업자의 창업 준비 기간은 3개월 미만이 50%가 넘는다. 그나마 젊은 사람 중에서는 창업 전 철저히 준비하는 예도 많지만, 은퇴 전·후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큰 욕심 없이 노후에 먹고살 정도로만 벌자’는 마음으로 가게를 연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어림도 없는 마음가짐이다. 준비 기간이 이렇게 짧은데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있을 리 없다. 수십 년을 회사원으로 살다 보니 창업 후에도 회사원 마인드인 경우도 있다. 집 주변에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이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여전히 부장님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였다. 고객들이 있는데도 점원들을 큰소리로 혼내고 있으니 분위기가 어떻겠나. 결국 그 가게는 반년을 못 가 문 닫았다. 가게를 내기 전 최소한 몇 개월이라도 그 분야에서 일해 봐야 한다.”
─퇴직자 중 상당수는 본인들이 평생 일해 온 분야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창업한다. 통계청 자료에도 나타나듯 준비 기간도 길지 않다. 그런데도 창업을 한다면 프랜차이즈 창업과 개인 창업 중 어느 쪽을 권하겠나.
“준비가 탄탄하지 않다면 프랜차이즈 창업을 권하고 싶다. 실제 생존율만 비교하더라도 프랜차이즈 생존율이 개인 점포 생존율보다 좀 더 높다. 프랜차이즈는 상품 매입, 홍보, 메뉴개발, 가게 운영 교육 등 많은 부분을 본사가 담당한다. 신제품 개발은 매장 운영에 있어 생각보다 중요하다. 한동안 스타벅스에 가지 않던 사람들도 계절메뉴가 나오면 궁금해서라도 한번 들러보지 않나. 물론 질이 나쁜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피해야 한다.”
‘골목의 전쟁’의 저자 김영준 씨.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어떤 기준에서 선택해야 하나.
“가맹점을 급속도로 늘려 몰락한 ‘카페베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일 중요한 건 본사가 쉽게 점포를 내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SPC그룹 계열의 프랜차이즈, 교촌치킨은 점포 간 거리를 철저히 따지는 편이다. 이런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본사에서 가져가는 수수료가 많지만 다른 브랜드에 비해 평균적으로 매출이 좋은 편이다.”
─점포 입지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택하자니 임대료가 지나치게 비싸다. 어떤 곳을 택해야 할까.
“일단 어떤 업종을 택하느냐에 따라 입지 선택이 달라져야 한다. 사람들의 소비성향은 소비처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 집 주변 같은 생활영역에서는 저가를 선호하지만, 연남동, 이태원 등에서는 그렇게까지 돈을 따지지 않는다. 경리단길에서 흥한 스트릿 추로스가 일반적인 대학가에서는 잘 안 된 이유다. 기본적으로 요즘 뜨는 상권의 배후지는 오래된 주택가다. 서울 기준 한 달에 월세가 50만~60만 원이라면 주거지로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사업장 기준으로는 상당히 저렴한 거다. 특히 주택 1층은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로 거주지로는 썩 좋은 조건이 아니지만, 점포를 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서울만 하더라도 아직 이런 곳은 많다.”
─SBS 예능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화제다. 골목상권을 다룬 책을 쓴 저자로서 어떻게 봤나.
“‘골목의 전쟁’을 출간한 후 한 지인으로부터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이것도 모르고 창업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근데 그 지인이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영 이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줄 몰랐다’며 사과하더라. 가게에는 사업주의 생각과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도 다 드러난다. 위생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프로의식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준비 기간이 짧다 보니 본인들의 평소 습관을 그대로 가져온다. 실제로 백종원 씨의 지적 중 상당수가 위생문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추세에 각광받는 것이 가족경영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가족경영이 더 어렵다. 인건비 절감과 퇴직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장점은 분명 있지만, 문제는 운영과 관리가 잘 안 된다. 사실 ‘가족을 투입하면 되지’라는 생각 자체가 운영과 관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다. 다만 누가 들어와도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족을 투입하는 거라면 나쁠 것 없다고 본다.”
─창업을 고려 중인 은퇴자들에게 ‘이것만큼은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소비자로서의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봐야 한다. 은퇴 후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은 보통 평소 가던 가게만 가고 특히 노포를 좋아하신다. 하지만 본인이 차릴 가게는 노포가 아니다. 기준점이 너무 다른 거다. 막걸리 집을 차리고 싶다면 최소한 전국에 있는 막걸리 집은 다 가봐야 한다. 해외에도 가 볼 것을 추천하는데 특히 일본 도쿄와 오사카를 추천한다. 웬만한 곳이 맛과 서비스 면에서 실망할 일이 없다. 지인 중 한 명은 크루아상 빵집을 차리기 위해 프랑스 빵집을 돌면서 레시피 조언을 구해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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