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지난 7월 어렵게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에 합의를 이뤄냈다. 동시에 비상설특위 6개 활동에 뜻을 모았지만, 7월 통과된 비상설특위는 아직 첫 삽도 못 뜨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자유한국당의 ‘몽니’가 있다. 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박영선 사개특위 위원장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개특위 위원장으로 지명된 지 한 달을 넘겼는데 아직 회의 한 번 못했다. 한국당이 명단을 제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개특위 구성은 지난 7월 10일 각 당 원내대표들이 원 구성 협상과 동시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8월이 되도록 깜깜 무소식이었다. 물론 많은 의원들이 자신들의 여름휴가와 지역구 활동 일정 등의 이유로 7‧8월 국회를 비운 기간이 많았기 때문에 신속한 진행은 어려웠다. 하지만 휴가 기간이 마무리된 9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박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한국당 때문에 사개특위 진행이 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에 윤재옥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특위 인원 숫자가 (민주당과) 서로 협상이 안 됐다. 합의가 안 된 상태”라며 “사개특위는 어느 한쪽 정당에서 일방적으로 법안을 단독 처리하지 못하게 여야 동수로 구성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민주당에 꾸준히 전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답이 없다”고 말했다. 윤 수석부대표는 박 위원장의 글에 대해서 “구성 인원에 대한 합의가 안 됐는데 민주당 입장 관철을 위해 공세를 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표결에서 자기들이 절반의 표를 확보하고, 나머지 (진보성향의)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에서 한 명을 확보해서 숫자 우위를 가지기 위해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 수석부대표의 협상파트너인 서영교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측의 입장은 달랐다. 서영교 의원실 관계자는 “여야 동수 18인으로 이미 다 합의한 사안이다. 민주당은 9명이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이 남은 9명을 알아서 나누면 될 일이고 이는 우리가 관여할 일도 아니다”라며 “이미 여야 합의문에 서명하고 끝난 사안인데 지금 구성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사개특위뿐만이 아니라 남북개혁특위, 윤리특위, 에너지특위, 4차산업혁명특위, 정개특위 모두 법안이 통과된 지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한국당 측에서 특위 소속 의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여야는 7월 10일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발표하며 ‘각 비상설특별위원회의 위원은 여야 동수의 18인으로 하며, 활동 기간은 2018년 12월 30일까지로 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했고, 이 합의문은 같은달 16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합의문대로라면 여당인 민주당 9인, 야당에서 9인이 위원회에 배정돼야 한다.
이처럼 여야 합의를 이뤄냈음에도 한국당이 위원회 활동에 소극적인 이유는 인원 구성 때문이다. 윤 수석부대표는 합의문과 관련해 “‘여야동수’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정당마다 각자 다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입장에서 ‘여야 동수 18인’이란 민주당 9명과 한국당‧바른미래당‧정의당이 9명을 나누는 것을 뜻하는데, 한국당은 여기서 공동교섭단체가 아닌 정의당은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이 합의문을 통과시키던 7월은 정의당이 민주평화당과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라는 이름의 공동교섭단체로 활동하던 시점이다. 하지만 이 합의문이 통과된 후인 7월 23일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 국회 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하게 됐다. 따라서 한국당의 주장은 정의당이 공동교섭단체를 상실하며 얘기가 달라졌으니, 지금이라도 정의당을 야당의 몫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합의문에는 여야 동수 18인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문구만 놓고 보자면 정의당도 포함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한국당 측에선 정의당은 제외하고 나머지 세 교섭단체만 포함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수석부대표는 기자가 ‘합의문에는 교섭단체여야만 한다는 문구가 없지 않느냐’라고 묻자 “(그런 문구는 없지만)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느냐.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아니겠느냐”라며 “또한, 합의문에선 ‘여당이 9인, 나머지 한국당‧바른미래당 그리고 그 외에 군소정당까지 합쳐서 9인’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라고 부연했다.
이어 윤 수석부대표는 “합의문을 문호적으로만 해석하지 말라. ‘여야 동수’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여야 동수로 합의한 것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못하도록 균형 잡기 위해 동수로 꾸린 것 아닌가”라며 “정의당이나 평화당이 야당이지만, 사실상 (진보성향이 강하니) 표결에서 민주당과 같은 표를 던지지 않겠느냐. 민주당이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하지 못하게 하려면 민주당이 9석, 한국당이 7석, 바른미래당이 2석을 가져가야 한다. 우리가 정부에 비판하고 견제하는 유일한 야당인데, 이런 최소한의 수단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주장했다. 정의당이 민주당에 유리한 표를 던질 것이라고 미리 단정짓고 표결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차에도 조율을 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서영교 의원실 측은 “차라리 합의를 무르자고 요구를 하던가, 그런데 한국당은 그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윤 수석부대표는 “(직접적으로 요구는 안 했지만) 이미 민주당도 지금의 문제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저쪽에서 모르고 있다면 이야기를 안 하는데, 서로 알고 있음에도 신경전만 하고 있는 거다”라며 “우리가 (간접적으로라도) 문제제기를 했으면 민주당이 우리 당의 요구를 수용하든지 거부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정의당은 현재 다급한 상황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개특위가 21대 총선을 위해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국회는 총선 1년 전인 내년 4월까지 지역구를 획정해야만 한다. 게다가 소수정당인 정의당과 평화당 입장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만 선거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개특위가 간절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정의당 패싱’ 요구로 정개특위를 포함한 여섯 개의 비상설특위 활동에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