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가수 넬리. 연합뉴스
공연기획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을 초청하기 앞서 내한공연 관련한 요구사항과 초청 비용 등을 뮤지션의 소속사나 대리인과 조율한다. 조율된 양쪽의 조건은 계약서로 작성된다. 보통 초청 비용과 법적 분쟁 기준 등이 담겨 있다. 세계적인 뮤지션을 초청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물론 돈이다. 하지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부칙이다. 공연 준비에 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칙은 크게 기술 부칙(Technical Rider)과 의전 부칙(Hospitality Rider)으로 나뉜다. 기술 부칙은 뮤지션이 사용하는 악기와 음향 기기 등 공연에 필요한 장비 사양이 명시돼 있다. 공연 문화가 확대되며 장비 임대 업체가 생겨나 대부분의 장비는 한국에서 수급이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장비를 직접 공수해 오는 뮤지션도 많았다. 기술 부칙은 어느 정도 범위가 정해져 있어서 진땀 뺄 일이 적지만 정작 예측할 수 없는 건 의전 부칙이다. 어떤 의전 부칙이 주최사를 당황케 할까. ‘일요신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힙합 가수 넬리의 의전 부칙을 입수했다.
음식은 가장 중요한 의전 부칙 가운데 하나다. 스타의 입맛은 천차만별이고 리허설 등 공연 준비에는 무던한 에너지가 필요한 까닭이다. 넬리의 요구사항에는 그의 치킨 윙 사랑이 잘 드러났다. 넬리의 의전 부칙에는 파티용 치킨 윙 100개가 포함됐다. 치킨 외에 육류는 칠면조만 그의 식탁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작은 접시에 칠면조 샌드위치를 준비해 달라는 요구 사항 외에 돼지고기 또는 소고기 등 그 어떠한 종류의 고기를 두지 못하도록 일렀다.
술도 빠질 수 없었다. 넬리는 데킬라와 위스키, 보드카를 모두 주문했다. 데킬라는 로카 패트론이 넬리의 식탁에 올라갔고 위스키는 크라운 로얄 사과맛이 제공됐다. 보드카는 티토스와 시락 애플 서머 콜라다가 낙점됐다. 음식 외에는 운송차량 관련 요구사항이 구체적이었다. “도시에 대한 제반 지식이 풍부한 운전사를 배정할 것”을 요구했다.
넬리 정도면 까다로운 편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었다. 익명을 원한 한 업계 관계자는 “넬리 정도면 양반”이라며 “내가 한 번 담당했던 가수는 꽤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해 와 까다로웠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맡았던 한 가수는 “모든 샤워 시설과 개인 화장실은 하루 종일 점검하고 소독하도록 요구했다”며 “쓰레기 통에는 봉지가 늘 깔려 있어야 했다. 방을 특정 온도로 맞춰주되 냉난방 구멍을 다 막아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이보다 더 특이한 요청 사항도 있다. 일부 국가에서 합법화된 대마초는 우리나라에서 엄격히 금지된다. 이런 상황을 몰랐던 한 영국 출신 밴드는 공연 직전 주최사에 ”지금 당장 대마초를 좀 공급해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마를린 맨슨은 특이한 요구 사항으로 유명하다. 무대 한편에 촛불과 거울로 채워진 방이 임시로 제작돼야 한다. 공연 전 마를린 맨슨은 이곳에서 대기를 하거나 애인을 앉혀 놓곤 한다.
2012년 내한했던 데미안 라이스. 연합뉴스
결국 데미안 라이스는 2012년 한국을 찾았다. 당시 데미안 라이스는 특별한 요청 없이 구멍난 통기타 한 대만 멘 채 한국을 방문했다고 알려졌다. 공연장에서는 별 다른 스태프의 도움 없이 통기타 한 대와 일명 꾹꾹이로 불리는 음 변환기로 2시간 내내 관객을 감동시켰다.
공연 기획사와 홍대 근처에서 막걸리를 마신 뒤 술집에 걸려 있던 기타로 미니 공연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처럼 공연 전후로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생겨난다. 비욘세와 마룬5는 내한공연 당시 서울 광진구의 한 호텔에서 머물렀다. 호텔 안의 유명한 바에서 술을 마시던 둘은 바텐더에게 자신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 바는 비트가 빠른 하우스 음악이나 일렉트로닉 음악만 틀어주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비욘세 요청은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알려졌다. 꽤나 묵직하게 부탁한 까닭이었다.
마룬5의 요청은 몇 차례 거절됐다. 익살스런 그들의 요청을 바 직원이 새겨 듣지 않았다. 마룬5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애교를 부리며 요청했다고 전해졌다. 그런 뒤 자신의 노래 한두 곡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제임스 블런트는 축구광으로 유명하다. 공연이 끝난 뒤 자신이 머물렀던 호텔 바에서 축구 경기를 홀로 본 뒤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과잉 의전으로 종종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나오기도 한다. 마를린 맨슨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웨스 볼란드는 공연 도중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공연장 뒤쪽에서 그냥 선 채로 일을 봤다. 경호원이 놀라서 다가오자 ”오지마“라고 짜증스럽게 소리친 뒤 계속 볼일을 봤다. 머쓱해하는 경호원이 한참 웨스 볼란드의 볼일 보는 시간을 기다려주기도 했다.
공연을 주최한 회사는 종종 어려운 부탁을 받기도 한다. 따로 뮤지션을 만나 인사하고 싶거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VIP의 요청이다. 한 거장의 한국 공연 당시 한 기업의 유명 CEO는 직접 뮤지션의 대기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성사되진 못했다. 공연장 대기실 앞에서 제지당했다. 이 CEO는 ”미리 합의된 계약 사항 외에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뮤지션의 매니저 거절을 듣고 나서야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