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베 뷰엘
이 시기 그녀를 거쳐 간 록 스타들의 명단을 훑는 건 비틀스 해체 이후 서구 록 뮤직의 화려한 역사를 되짚는 것과 같은데, 먼저 글램 록의 대표적 인물인 이기 팝과 데이비드 보위가 잠시 그녀의 연인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시대를 풍미했던 바람둥이인 지미 페이지가 빠질 리 없었고,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도 3년 동안 그녀와 함께 했던 연인이었다. 야생마 같은 헤어스타일의 로드 스튜어트나 영국 펑크 록의 천재 아티스트 엘비스 코스텔로도 그녀의 연인이었다.
그러나 베베 뷰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에어로스미스의 보컬 스티브 타일러였다. 수많은 뮤지션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메인 남친’은 토드 런그렌이었던 시절, 베베 뷰엘은 스티브 타일러와 잠깐 사귀었는데 그때 아기를 가지게 된다. 뷰엘은 런그렌의 아이라고 속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당시 스티브 타일러는 도저히 아빠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약에 빠져 엉망인 상태였던 것. 그렇게 낳은 딸이 바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엘프인 ‘아르웬’으로 유명한 리브 타일러. 어머니처럼 신비한 이미지로 유명한 그녀는 한때 리브 런그렌이라는 이름으로, 토드 런그렌이 자신의 아빠인 줄 알고 성장했다. 이후 리브 타일러는 9살 때 자신의 아버지가 스티브 타일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토드 런그렌은 그녀의 대부가 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뷰엘과 런그렌
하지만 이것은 훈훈한 후일담일 뿐, 1977년에 리브 타일러가 태어나고 자신이 아이의 생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런그렌은 결국 1978년에 뷰엘과 헤어졌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마약중독자 스티브 타일러를 대신해 한동안 아버지 역할을 하며, 만만치 않은 사립학교 학비를 대주기도 했다. 이후 리브 타일러는 스티브 타일러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원망보다는 진짜 아빠를 찾은 기쁨이 컸던 듯. 에어로스미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고 원만하게 지냈다고 한다.
런그렌과의 관계가 끝났다고 베베 뷰엘의 애정전선마저 끝난 건 아니었다. 펑크 록 뮤지션 스티브 배커스, 듀란듀란의 존 테일러 등과 사귀었고,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 워런 비티와 잭 니컬슨도 스쳐갔다. 하지만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결혼은 하지 않았던 베베 뷰엘은 40살 직전인 1992년 39살 때 캐나다의 배우이자 뮤지션인 스티브 시버스와 첫 번째 웨딩마치를 울린다. 그녀의 멀티플 파트너십이 멈춘 건 바로 이때. 이후 1999년에 이혼한 그녀는 2000년에 역시 뮤지션인 짐 월러스타인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베베 뷰엘
오해해선 안 될 건 베베 뷰엘이 오로지 ‘뮤지션의 여자’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 1981년에 네 곡이 든 앨범을 발표한 그녀는 ‘B-사이드’라는 그룹을 조직해 이끌었는데 1984년에 나온 그들의 앨범을 프로듀싱 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옛 연인 토드 런그렌이었다. 1985년엔 ‘가고일’이라는 밴드를 조직해 싱글을 발표하기도. 존 테일러가 자신의 멤버를 데려와 서포트 한 적도 있었다. 한때 어느 대형 음반사에서 그녀에게 러브 콜을 보냈는데, 때마침 리브 타일러의 친부 문제가 이슈로 터지면서 뷰엘은 메인 스트림에 진출하는 데 실패했다. 2011년엔 ‘하드 러브’라는 앨범을 내놓았는데, 프로듀서는 두 번째 남편인 짐 월러스타인이었다.
사실 그녀는 뮤지션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의외의 분야에서 그녀는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2001년에 내놓은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30년에 걸쳐 10여 명의 록 스타들과 만났던 기록들을 묶은 것이다. 참고로 베베 뷰엘은 자신에 대한 그루피라는 명칭은 철저히 거부한다고. 어떤 비하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