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것으로 시작했어도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되면 피가 마른다. 어쩌면 이기는 것 없이 즐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겨루면서 만들어지는 긴장감이 있느니. 그 긴장감을 견디며 즐기는 자가 실력자겠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서 운동이 업이 된 젊음에게 20대는 기량을 갈고 닦고 펼쳐야 하는 전성기다. 그 때 가야 하는 군대는 내 나라 내 조국의 든든한 전사가 된다는 보람보다는 넘어서기 힘든 경력 단절에 대한 안타까움일 수 있다. 그래서 경력 단절이 문제가 되는 스포츠인들에게 주는 병역 혜택은 그들에게는 큰 보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다. 역시 금메달을 딴 야구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논란이 생긴 것이다. 병역문제를 해결해주고자 실력이 안 되는 선수를 끼워넣기했다는 것! 그렇게 시작된 논쟁은 한 번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개념이었던 적이 없는 ‘국위선양’의 기준으로 번지고 있다. 특정한 입상자에게 병역 면제를 해주는 이유가 바로 국위선양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위선양, 나라의 권위나 위세를 널리 떨치게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러면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류 스타들이 빠질 수 없지 않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렇게 번지는 것이 논리적이긴 하지만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국위선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근대적인 혹은 국가주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누가 국가를 위해 축구를 하거나 혹은 야구를 하거나 혹은 노래를 할까? 국위선양과 같은 그런 개념을 넣고 살지 않아도 우리는 태극기가 올라갈 때 괜히 뭉클하거나 눈물이 난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울고 웃고 누리며 지키고자 했던 것, 우리가 공유한 어떤 생활양식이 자극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논의를 통해 병역 면제의 기준이 재정비될 듯하다. 형평성도 고려하고 공정성도 만족해야 한다고 하고 아예 없애는 것이 공정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듯 이 기준에서 공정한 것이 다른 기준에서 공정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애국심 차원에서 병역을 신성한 의무라고 광고할 것이 아니라 20대의 젊음들에게 군대가 어떤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지 사회가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운동을 업으로 하는 젊음들은 20대를 그렇게 끊어놓으면 엄청난 손실이다. 차라리 전성기를 지나 은퇴 후에 재능기부를 받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공동체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이제 병역의 기간도 18개월로 줄어든다고 한다. 짧아졌다고 좋아하기 전에 전문가가 될 수 없는 그 기간의 병역이 국가 차원에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논의해봐야 한다. 이참에 모병제 논의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