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에서 강북 ‘한 달 살이’를 마친 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오전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을 나서며 주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이해찬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높은 민주당 지지율을 배경으로 한 자신감으로 보인다. 20년 연속 집권은 앞으로 3명의 대통령이나 더 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연속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없다. 그럼에도 이해찬 대표의 이 같은 말은 당 지지율과 별개로 당 내 대권후보급 ‘선수’가 많기 때문으로 읽힌다. 특히 경쟁할 만한 당들이 대권후보급 선수를 한두 명도 꼽기 어려워보이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선수’들의 구성도 다양한 편이다. 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당 내 한 핵심 관계자는 “2강 1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가 말한 2강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고 1중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였다.
먼저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건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여론조사 업체인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31일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범진보 진영 1위는 박 시장이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박 시장은 최근 계속되는 ‘쇼’ 행보로 관심과 논란을 동시에 받았다. 지난 7월 22일 “강북 실태를 파악하겠다”며 폭염 속 삼양동 옥탑방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이 같은 ‘쇼’가 다소 부정적 평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쨌건 국민들의 이목을 끄는 효과가 있었는지 박 시장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할 체험도 계획돼 있다.
옥탑방에서 나온 박 시장은 지난 9월 2일 “하루 동안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 대중교통을 체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 겨울엔 ‘한파 체험’도 준비 중이다. 옥탑방 살이 중이었던 8월 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겨울철 혹한기에는 금천구 옥탑방에서 살아볼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중적으로 소구하는 힘이 강한 박 시장의 약점은 반대로 당 내에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냐는 점에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나이 지긋한 대의원들이 박 시장을 지지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비교적 최근 입당한 데다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점이 기존 정치권 위주로 정치를 보던 시각으로는 낯설다는 분석이다.
김부겸 장관은 영남 출신으로 두루 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DJ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모두 영남 출신이다. 더군다나 진보적인 색깔 대신 중도 이미지가 강하다는 게 강점이다. 일단 당내 경선을 뚫어야 하지만 출마한다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와 함께 영남지역 출신에다 중도 색채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도 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검경수사권 조정도 무난하게 해냈다는 평도 플러스 요인이다. 김 장관은 앞서의 리얼미터 조사에서 10.4%로 민주당 내에서 3위를 차지했다.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도 “민주당 후보 중에서는 김 장관이 당내 경선 통과는 어떨지 몰라도 출마했을 때 가장 파괴력 있는 후보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 때마다 영남 지역에서 표를 받을 수 있는 후보가 ‘대망론’, ‘이길 수 있는 후보’ 등으로 포장됐던 과거를 돌아보면 대선이 다가올수록 영남 출신 프리미엄이 커지리란 기대도 나온다. 영남 프리미엄은 박 시장보다는 김 장관에게 쏠릴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되고 있다. 박 시장과 김 장관 모두 영남 출신이지만 서울시장으로 수도권 이미지가 강한 박 시장보다는 어렵게 대구에서 지역구도를 뚫고 당선된 김 장관의 ‘지역색’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김부겸 행정자치부장관이 지난해 6월 여의도 국회를 방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최근 정치권 정보지에는 ‘이해찬, 김부겸 대선 지원설’이라는 소식이 돌기도 했다. 골자는 이해찬 대표가 김 장관을 차기 대권주자로 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 어떻게 당 대표가 대놓고 차기 대권주자를 미냐”며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했다가는 엄청 욕 먹을 일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최근 전당대회에서 김 장관이 이 대표를 지지했다는 것이 정설인 만큼 흘려듣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분석도 있다. 만약 이 대표가 당 대표직을 내려 놓고 김 장관을 돕는다면 그 파괴력은 굉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낙연 총리도 차기 대권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 총리의 강점은 전통적 친노 지지자들의 압도적인 호감이다. 이 총리가 국회 출석해 소위 ‘사이다 발언’을 이어간 것을 두고 호평이 이어졌다. 반면 앞서의 당 내 핵심 관계자는 이 총리의 출마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 총리가 출마 생각이 없다는 게 거의 확실하다”며 출마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출마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 다음 대선에서 이 총리의 나이가 70대에 돌입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만약 이 관계자의 관측이 빗나가 출마한다면 호남 출신인 점, 높은 인지도, 호감형 이미지의 3박자로 당내 경선 통과는 어렵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이 총리는 앞서의 리얼미터 조사에서 10.7%로 민주당 내 2위를 차지했다. 총리였던 정치인의 대망론은 여럿 있었지만 실제로 실현된 적은 없다는 점에서 이 총리가 첫 사례가 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1중으로 불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스크래치’가 너무 많이 났다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배우 김부선 씨 관련 루머, 조폭 연루설, 혜경궁 김 씨 논란 등 갖은 구설수에 올랐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 시장에 대해 “지난 대선 경선보다 대권이 훨씬 멀어졌다고 봐야 한다”며 “경기도지사로서 엄청난 성과를 보여 국민들에게 논란보다 더 큰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김경수 지사도 지지자들의 출마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8·25 전당대회에서도 김 지사를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높았다. 김 지사를 향한 박수는 전당대회에 참석한 각 지자체장을 호명하면서 나왔다. 다른 지자체장에게는 큰 반응이 없다가 사회자가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외치자 엄청난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때 전당대회 득표를 위해 김 지사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진 배경이 무엇 때문인지를 보여주는 목소리였다. 투표 이후 퇴장하는 김 지사를 향해 민주당 당원들은 “지사님 힘내세요!”를 외치며 김 지사가 가는 길을 함께 따라갔다.
다만 전문가들은 김 지사의 등판 가능성 자체를 낮게 보는 데다 등판해도 당선 가능성은 더욱 낮게 보고 있다. 드루킹 논란이 있었던 데다 몸이 지방에 묶여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서울시장을 제외하고 경기도지사를 포함해 지방자치단체장은 중앙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 김경수 지사도 ‘드루킹’으로 주목받은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추문 발생하기 이전부터 충남지사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의 뜻이 있다면 지방자치단체장을 맡는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여의도에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다만 당선 가능성은 역시 높지 않게 보고 있다. 특히 임 실장은 역대 정권들도 그랬고, 정권의 속성상 후반기로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정권 지지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신율 교수는 “비서실장은 속성상 현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를 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몇몇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면 정권 말기에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는 특히 급락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비서실장을 지내고 대통령이 됐지만 그 사이 2번의 선거가 있었다.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차기 대선에 나가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라고 지적했다.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도 출마 이야기가 나오지만 친노, 친문 같은 거대 계파가 없고 강력한 지지층이 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계파가 없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기도 어렵고 두둔해서는 지지율을 올리거나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추 전 대표는 앞서의 여론조사에서 3.4%로 민주당 내 7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김두관 의원 등이 대선을 준비한다는 말이 있지만 앞서의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10위 이내 들지 않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접촉해 본 전문가들은 지금 대선을 전망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지금 가능성이 있다, 없다를 이야기할 순 없다. 누구든 정치하는 사람은 대통령을 꿈꾼다. 본인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 어떤 비전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10위에서 1위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아직 대선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누구든 ‘용’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