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을 마친 조민수 아마 7단은 한숨을 쉬며 한 마디 내뱉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곤 이제 세상에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대국장을 나선다. 이긴 바둑에 대한 푸념은 승자만 누리는 특권이다. 막 사냥을 마치고, 포식한 호랑이처럼 걸음걸이에 묘한 느긋함이 묻어났다.
지리산 호랑이, 아마추어 최고 싸움꾼, 호남의 맹장. 크고 작은 전국대회에서 60회 이상 우승을 차지하며 아마바둑계를 호령한 조민수에게 붙는 수식어다. 올해 조민수는 아마바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내셔널바둑리그에서 전라남도팀 선수로 뛰어 15승 2패를 기록했다. 조민수가 일군 승리를 원동력으로 소속팀도 정규시즌 드림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시상식에선 3년 연속 다승상을 받은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정규리그 MVP까지 차지했다. 40년 바둑인생에서 빛났던 그 순간, 조민수와 만났다.
아마추어 최고 싸움꾼으로 불리는 조민수 아마 7단.
―별명이 ‘지리산 호랑이’다.
“내가 돌을 야무지게 놓고, 성격도 급해서 양상국 9단이 호랑이라고 불러주데. 광주 오규철 사범이 ‘무등산 호랑이’야. 내가 사는 순천은 지리산과 가까우니까 지리산 호랑이가 맞지.”
―바둑은 어떻게 시작했나?
“누구에게 바둑을 배워본 적이 없어. 두는 법은 아버지 어깨너머 배웠지. 어려서 나이 차 나는 형님들하고 좀 두다 말았어. 중학교 올라가면서 그만뒀다가 20대에 다시 바둑돌을 잡았지. 그런데 신기하게 10년을 안 뒀는데 실력이 늘어있데? 20대 무렵 내기하는 재미에 다시 돌을 잡았지. 그땐 광양제철소 짓는다고 기원에 사람이 바글바글했거든.”
―어린 시절 한국기원 연구생이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 하려다가 말았지. 연구생을 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나? 72년인가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한국기원에 가서 기력측정은 받은 적이 있어. 갓 명인타이틀을 딴 서봉수가 상대해줘서 총 세 판 뒀는데 두 점에서 시작해 다섯 점까지 내려가며 판마다 작살났어.”
―어릴 적 지도기 받은 서봉수 9단과는 9월 18일부터 한국바둑방송(K바둑)에서 생방송하는 ‘파이브지티배 치수고치기 3번기’에서 다시 대결한다고 들었다. 자신 있나?
“예전 분당기우회배에서 두 판을 둔 적이 있는데 다 졌어. 선 치수로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어려울 거야. 프로와 두면 한 번 실수로 바둑이 끝나. 만약 두 점 치수라면 나도 할 만하지.”
조민수 아마 7단은 18일부터 열리는 ‘치수고치기 3번기’에서 서봉수 9단과 대결한다.
―젊은 시절 오규철 9단과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한번은 전문 내기꾼이 순천에 내려왔어. 다들 지니까 마지막에 내가 상대했지. 초반마다 망해서 내리 7연패 당하고, 안 되겠다 싶어 흉내바둑을 두니 내가 거꾸로 7연승을 하는 거야. 40시간을 꼬박 뒀어. 마지막 결승을 하자고 했는데 그때 내가 두 집반을 이겼지. 공부한 건 없어도 내가 펀치는 셌어. 그런데 그 후에 내 바둑에 근원적인 의문이 생겼지. 힘은 자신이 있는데 포석이 뭔지 궁금했어. 좀 물어보고 싶었는데 주변에 아는 놈들이 없더라고. 나름대로 혼자 노력하던 차에 오규철 사범을 만났어.”
일요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오규철 9단은 “82년 정도 내가 프로가 되기 전 호남왕좌전이라는 아마대회에서 처음 봤다. 시골기원에서 배워 그렇게 잘 두는 게 참 신기했다. 지금도 싸움을 잘하지만, 그때는 바둑에 기초도 없고, 힘만 셌다. 내가 프로가 된 후에 친해져서 순천과 광주를 오가며 수백 판을 뒀다. 재주가 있어 바둑은 금방 늘었는데 놀기를 좋아해서 입단까진 못했다. 두 명 뽑는 입단대회에서 3등만 몇 번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입단대회 올라가면 독기를 품고 덤벼야 하는데 입단대회라고 집중하고 그런 게 없었다”라며 젊은 시절 조민수에 대해 회상했다(오규철 9단은 52년생으로 85년 입단했다. 조민수는 61년생이다).
―입단은 왜 못 했나?
“전국대회에 나가서 고수라는 부류들과 만났는데 막상 둬 보니 별거 없더라고. 우승을 자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입단대회도 나갔지. 다들 나보고 입단 0순위라고 했는데 막상 입단대회에선 6일 동안 밤새 어울려 마작을 했어. 지금 돌아가신 임선근 사범 등이 옆에서 ‘빨리 가서 자고 내일 바둑 두어야 하지 않냐’며 야단을 쳤었지.”
내셔널바둑리그 MVP를 수상한 조민수 7단(오른쪽). 왼쪽은 김용모 인천광역시 바둑협회장.
“돈 따먹는 건 모두 재미있지. 경마, 포커, 마작, 당구, 바둑 모두 돈 걸고 하면 내겐 똑같은 승부야. 뭐가 가장 돈이 됐냐고? 허허, 어떤 종목도 잘 잃지 않았어. 호구는 아니었지.”
―프로기사도 아닌데 바둑과 함께 반평생을 보냈다.
“한창 승부를 겨룰 때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지. 내가 최선을 다해서 이기면 기쁨이 수십 배야. 승부에 집착하면 질 때 아프지 않냐고? 그러니까 안 지려고 더 노력하는 거지. 그땐 다른 일로 돈 벌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바둑에 빠져 다 놓쳐서 지금 돌아보면 아주 아쉬워. 이제는 바둑도 돈이 안 되고, 그냥 즐기면서 두는 거지.”
―조민수에게 바둑이란?
“젊었을 때는 바둑을 두다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어.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지. 그런데 아무도 모르더라고. 지금도 정상급 기사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어린 시절 이세돌도 잘 알고, 김지석도 내가 바둑을 많이 두어주었지. 백홍석, 최철한, 입단대회에 같이 나갔던 조한승. 이제 이들은 내 질문에 답해줄 수 있을까? 하여간 최선을 다해서 이길 때 느끼는 쾌감, 스릴은 바둑만 한 게 없어. 내 인생에 몇 안 남은 즐거움이지. 어린 시절 꿈은 아버지 뜻에 따라 육사에 가서 군인으로 출세하는 길과 프로기사로 바둑을 두는 길 두 가지였지. 워낙 놀기 좋아해서 꿈을 이루지 못했어. 이젠 몸이 허락하는 한 이렇게 대회도 다니면서 바둑을 두는 게 꿈이야. 세상 별거 있어? 내 마음대로 편하게 사는 거지.”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