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의 안현수. 로이터/뉴스원
안현수는 2011년 12월 29일 러시아로 귀화했다. 안현수는 당시 “러시아에 올 때 처음부터 귀화에 대한 생각을 갖거나 확신을 갖고 온 게 아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저를 위해, 운동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며 “부상 여파가 컸던 내게는 믿어준다는 것이 가장 컸다. 러시아는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귀화 생각 없이 러시아로 향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당시 러시아는 한국인 쇼트 트랙 선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안현수가 러시아와 연결됐던 건 러시아에서 이미 쇼트 트랙을 하고 있었던 한 한국 선수 덕이었다. 외국을 두루 돌며 운동을 했던 쇼트 트랙 선수 A 씨(여·24)는 2010년 이미 러시아에서 쇼트 트랙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최상위권 한국 선수 영입을 시도했다. A 씨 소개로 당시 한국 최상위권 고등학생 선수였던 B 씨(여·24)가 A 씨에 이어 러시아로 향했다. 2010년 10월 두 선수는 러시아 소속으로 국제대회를 참가하겠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빙상연맹에 제출하고 승인 요청을 했던 바도 있었다.
러시아는 최상위권 선수였던 B 씨보다 금메달 획득이 더 확실한 선수에 목말라 있었다. 소련 해체 뒤 신통찮은 성적 때문이었다. 미국과 냉전으로 한 세기를 보냈던 소련은 체제 선전용으로 외부 대회 메달 획득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그 습관은 소련 해체 뒤에도 계속됐다. 소련 시절 러시아는 참가했던 동계올림픽 15회에서 절반에 가까운 7회나 1위를 기록했었다. 허나 1991년 12월 31일 소련 해체 뒤 처음 러시아 국호로 출전했던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 5번이나 참가했던 동계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하지 못했다.
금메달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효자 종목이었던 빙상에서 단 1개의 금메달도 목에 걸지 못했다. 빙상 종목에 배정됐던 포상금은 계속 적립됐다. 당시 러시아행을 조율했던 한 인사에 따르면 빙상 메달 포상금 적립액은 약 32억 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이미 금메달을 딴 적 있는 안현수가 외국행을 알아본다는 사실이 구미에 당길 수밖에 없었다. 안현수와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애초 안현수는 일본으로 향할 조건을 알아보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조건이 좋지 않고 국민 감정을 건드릴 수 있어 고민하던 차에 러시아의 탁월한 조건이 안현수의 구미에 맞았다는 게 이 인사의 판단이었다.
안현수의 부친 안기원 씨 역시 이 부분을 일부 인정했다. 11일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안 씨는 “현수가 외국에서 운동하고 싶어해 처음엔 일본을 알아 봤다. 일본 귀화를 염두에 둔 건 아녔다. 조건이 숙식 제공과 월 100만 원 지원이라 다른 곳을 알아보다 러시아 빙상연맹과 닿는 사람이 있어 소통하기 시작했다”며 “현수가 소치 동계올림픽 뒤 러시아에서 한 10억 원 정도 받았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안현수는 2011년 4월 16일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쇼트트랙 종합선수권에서 국가대표 진입에 실패하자 두 달 뒤인 6월 러시아로 출국했다. 귀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밝힌 안현수는 두 달쯤 지난 2011년 8월 17일 러시아 귀화를 신청했다.
2013년 5월 17일 안현수는 JTBC 스포츠뉴스에서 “러시아 대표로 뛴다는 결정을 할 당시 한국 국적이 소멸되는 줄은 몰랐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귀화 뒤 한국 국적 포기를 두고 비난 여론이 일었던 까닭이었다. 2011년 러시아 귀화를 신청한 날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면 우리나라 국적은 자동으로 소멸된다고 들었다”면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이유가 어찌 되었든 반성하고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안현수는 귀화 때 이미 한국 국적 소멸을 알고 있었다는 여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안현수의 ‘특별한 행동’ 때문이었다. 안현수는 러시아 귀화 신청 직전이었던 2011년 7월 연금을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찾아가 월 100만 원의 최고 한도를 채웠던 월정금을 일시불로 받아갔다. 연금 규정에 따라 일시불로 연금 4년치인 4800만 원이 지급됐다. 안현수는 당시 금전적인 문제도 없었다고 알려졌다.
안현수의 귀화를 두고 동정론도 일었다. 전명규 한체대 교수의 전횡에 따른 희생양이란 소리도 들었다. 2008년 1월 16일 큰 무릎 부상을 입었던 안현수가 몸 상태를 거의 끌어 올렸던 2010년 국가대표 선발전 일정이 4월에서 9월로 바뀐 까닭이었다. 안현수는 2010년 5월 기초 군사훈련을 이수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선발전 연기가 안현수를 견제하려는 전명규 교수의 의도였다는 의혹이 당시 제기됐었다. 기술 없이 속도로만 순위를 정하는 방식 역시 안현수의 특기를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음모론도 일었다. 안현수는 2007년 12월 11일 한체대 졸업을 앞두고 전명규 교수의 대학원 진학 요청을 뿌리치며 성남시청과 계약금 포함 5억 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빙상연맹은 파벌 논란, 짬짜미 파문으로 정부 차원의 조사까지 받고 있었다. 조사 때문에 선발전을 제대로 열 수 없어 일정이 바뀌었다. 짬짜미가 불가능한 속도 측정 방식이 도입됐던 때였다.
빙상계에 따르면 최근 안현수와 전명규 교수의 옛 조교이자 한체대 빙상단의 실제 지도자 C 씨는 한체대 빙상장 외부 강사 자리를 두고 물밑접촉을 하고 있다. 외부에는 안현수와 전 교수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안현수와 전 교수는 갈라섰던 적이 없었다. 안현수를 현재에 있게 한 게 전 교수인 까닭이다.
전명규 교수는 한체대 총장 시절 자신을 임용해 준 이정무 옛 장관을 자주 찾았다. 메달리스트를 끼고 갔다. 안현수 역시 이정무 전 총장에게 2016년까지 인사를 다녔다. 사진=한라대 제공
2002년 국가대표 선발전 때 탈락했던 안현수를 국가대표팀에 지도자 추천으로 넣었던 게 당시 감독이었던 전명규 교수였다. 전 교수는 안현수에게 출전 기회까지 줬다. 전 교수는 ”민룡과 이승재의 전력이 이미 경쟁 국가에 노출됐다“는 이유를 대며 선발전으로 뽑혔던 민룡과 이승재 대신 안현수를 1000m 경기에 내보냈다. 안현수는 귀화 뒤에도 한국을 찾을 때마다 전 교수에게 인사를 다녀갔다는 게 한체대 출신 선수의 증언이다. 게다가 안현수는 2016년까지도 전 교수를 한체대 교수로 임용했던 이정무 옛 한체대 총장이자 옛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찾아 인사까지 하곤 했다.
‘일요신문’은 11일 안현수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해 상세한 내용을 들어보려 시도했다. 안현수는 계속된 전화에 ”누구세요?“라는 문자만 보낸 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