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은 법률가를 양성하는 3년 과정의 전문대학원이다. 2009학년 첫 신입생을 선발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현재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다. 총 정원은 약 2000명으로 전국 대학 25곳에 설치돼 있다.
대입 시험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은 로스쿨 전형에서 약자 배려를 받는다. 장애인은 특별전형으로 로스쿨 지원이 가능하다. 문제는 장애인의 로스쿨 입성이 통계상 매우 어렵다고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제껏 인구 대비 장애인비율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의 장애인이 로스쿨 관문을 통과했다.
‘일요신문’이 교육부에 요청해 받은 정보공개 자료와 2013년 참여연대의 자료에 따르면 10년 동안 총 2만 776명이 로스쿨 문턱을 넘었다. 이 가운데 장애인은 0.65%인 135명이었다. 한국 인구 약 5163만 명 가운데 장애인은 4.9%인 약 524만 명이다.
로스쿨 입학생 가운데 장애인 비율이 인구 대비 장애인 비율에 비해 유독 적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직 세분화되지 않은 특별전형 선발 기준 탓이다. 일단 대학 입시에서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경쟁한다. 특별전형 안에서 장애인 전형이 별도로 나뉘어 있는 까닭이다. 특별전형은 각각 경제적 약자, 신체적 약자, 사회적 약자 등 별도의 전형으로 세분화돼 있다.
로스쿨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전형을 세 갈래로 나눠놨다.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배려 대상을 일반 전형의 5% 수준으로 선발한다. 경제적 약자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말한다. 사회적 배려는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의 자녀 및 농어촌출신자와 북한이탈주민과 그 자녀 등을 지칭한다. 문제는 대입과 달리 로스쿨의 특별전형은 각각의 갈래 정원이 따로 나뉘어있지 않다는 데 있다. 특별전형이라는 큰 바구니 안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경쟁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1급 장애인이 독립유공자 자녀와 맞붙는다.
중중장애인은 더 불리하다. 2015년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제도 개선 권고로 마련된 특별전형 선발 기준 통일은 신체적 약자를 장애등급 6급 이상으로 통합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상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이상 없는 안경 쓴 사람과 휠체어를 탄 두 다리 마비 장애인이 경쟁하게 생겼다. 두 눈 가운데 나쁜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사람이 6급이다. 두 다리가 모두 마비된 사람이 1급이다.
게다가 각 학교가 내놓은 로스쿨 특별전형 우선 선발 조건은 장애인 수험생을 더욱 좌절케 한다. 성균관대, 인하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4곳을 제외한 로스쿨 21곳은 특별전형 정원 가운데 30~50%를 경제적 약자 먼저 뽑으라고 이른다. 아예 경제적 배려대상만을 뽑겠다고 공고한 곳도 있었다.
7월 15일 장애인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고 있는 국립서울맹학교.
장애인 로스쿨 수험생의 반응은 어떨까? 7월 15일 오후 3시쯤 ‘일요신문’은 2019학년도 법학적성시험이 열리는 국립서울맹학교 시험장을 찾았다. 장애인과 몸의 불편함을 호소한 지원자 일부가 이 시험장에서 로스쿨 필기 시험을 치렀다. 비장애인 수험생은 로스쿨 시험이 종료됐던 오후 4시쯤부터 시험장을 빠져 나왔다. 오후 5시가 넘어서도 장애인 수험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후 6시가 돼서야 하나둘씩 휠체어를 이끌고 나오는 장애인 수험생 모습이 포착됐다. 시각, 청각 장애인 등에게 주어지는 추가 시간이 모두 끝나야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대부분 장애인 수험생은 인터뷰를 거부했다. 휠체어를 끌고 시험을 봤던 한 수험생을 어렵사리 만나볼 수 있었다. 2013년 불의의 사고로 양 다리가 마비된 A 씨에게 올해 로스쿨 시험은 벌써 세 번째였다. 사고 원인 제공자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이며 억울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변호사에 큰 매력을 느꼈던 그였다. 그는 이미 2번이나 면접전형까지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통과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A 씨는 “한번은 면접장에 올라갔는데 ‘일반 학생도 비전공자면 하루 10시간이 넘는 공부 때 고되다고 호소한다. 장애인이 따라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체력은 자신 있었다.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몸 상태를 묻는 질문이 면접 내내 3~4회나 이어졌던 까닭이었다. 문득 ‘아, 몸 상태 물어보는 게 아니구나. 지원하지 말라는 소리를 돌려 하는구나’하고 느꼈다”고 했다. 최종 관문인 인성 면접까지 가고도 A 씨는 떨어지기 일쑤였다.
이어 그는 “로스쿨은 평등과 정의를 우선시하는 사람을 선발하려 만든 제도다. 기관은 각 학교의 양심에 맡겨 수험생 선발을 맡겼다. 하지만 정작 그게 지켜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몸이 건강한 비장애인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더 높을 거라는 추측 때문에 효율성 위주의 선발시험이 돼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지금의 로스쿨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에만 목숨을 거는 구조”라며 “대입이든 공무원시험이든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붙게 해놨지만 로스쿨만 유독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붙을 수밖에 없고 합격한 특별전형 수험생은 대부분이 경제적 약자라 장애인에겐 너무나 높은 문턱”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험생은 작은 염원 하나를 전했다. A 씨와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몸을 싣고 이번 시험을 치렀던 B 씨는 “로스쿨은 다양한 인재를 모아 좋은 사법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 장애인에게 주어진 어려움이 설립 취지와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며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다. 특히 면접장에선 더 하다. 조금 보완돼서 장애인으로 받을 수 있는 차별적인 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전국 로스쿨 25곳 특별전형 모집정원은 지난해보다 24명 증가했다고 나타났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내놓은 2019학년 로스쿨 입학전형 기본계획에 따르면 전국 로스쿨 25곳 모집정원은 일반전형 1856명, 특별전형 144명이다. 지난해 일반전형 1880명, 특별전형 120명에 비해 일반전형이 24명을 줄었고 특별전형이 그만큼 늘었다.
로스쿨 25곳 가운데 중앙대는 로스쿨 가운데 유일하게 10년 동안 단 한 명의 장애인도 선발하지 않았다고 나타났다. 중앙대 관계자는 “지원 인원 자체가 적어서 그렇다”고 짧게 해명했다. 하지만 서울대와 고려대, 아주대는 로스쿨이 도입된 이래 총 10명 이상씩 뽑았다. 장애인이 중앙대만 피해 서울대와 고려대, 아주대만 지원했을 리 만무하다.
두산그룹은 2009년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으로 광고 캠페인을 벌여 왔다. 이에 앞선 2008년 5월 두산그룹은 중앙대를 인수했다.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은 2008년 중앙대 이사장 취임식에서 “중앙대를 성균관대보다 경쟁력 있는 학교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성균관대가 10년 동안 장애인을 총 8명 뽑는 동안 중앙대는 아무에게도 로스쿨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중앙대가 생각하는 경쟁력과 미래는 무얼까.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