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부동산과 교통시설 정책을 내놓으며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 정부와의 호흡보다 독단적인 정책을 진행하는 박 시장을 두고 대선을 위한 치적쌓기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제공.
박 시장은 지난 7월 10일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해 뉴욕 맨해튼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라고 발언했다. 이것이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의 신호탄이었다. 현 서울시장이자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그의 한 마디에 여의도와 용산의 집값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 7월 셋째 주 여의도와 용산구 아파트값 상승률은 각각 0.23%, 0.26%로 서울시 평균 0.11%의 2배를 기록했다.
이에 당황한 국토부는 수습에 나섰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7월 23일 “서울시의 여의도-용산 통합개발은 도시계획적인 측면도 있지만 정비사업적으로 고려할 것이 많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서 “대규모 개발계획은 중앙 정부와 긴밀히 논의한 뒤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같은 달 26일 “여의도 도시계획은 전적으로 서울시장의 권한”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곳의 아파트 매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억 단위로 올랐고 매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서울시 아파트값 상승률(한국감정원, 8월 셋째 주)이 0.37%로 오른 것이다. 이 가운데 용산구는 0.45%로 강북 14개 구 중에 상승률이 가장 컸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자 박 시장은 뒤늦게 ‘여의도-용산 통째 개발’ 계획을 접었다. 그는 8월 26일 “(의도와 달리) 재개발로 해석되면서 부동산 과열 조짐을 보인 게 사실”이라며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선 주택시장 안정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박 시장이 중앙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독단적으로 계획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을 접은 이날 서울 강남‧강북 균형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비강남권 경전철 추진에 시 재정을 투입하고 조기 착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목동선에는 1조 1000억 원, 면목선에는 9000억 원, 난곡선에는 4000억 원, 우이신설 연장선에는 3000억 원이 들어가, 비강남권 경전철 4개 노선 총사업비는 약 2조 7800억 원이다. 서울시는 여기서 60%(1조 6800억 원)를 시비로 충당하고, 나머지 40%(1조 1200억 원)는 국비를 지원받겠다고 밝혔다.
이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국토부와 기재부 등 중앙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과정은 없었다. 김 장관은 박 시장의 ‘경전철 추진 계획’ 발표 다음날 “경전철 사업은 서울시가 아니라 국토부가 승인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못을 박았다. 김 장관은 이어 “과도한 기대로 해당 지역에 자본이 유입될 경우 오히려 서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사업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서울시를 향해 다시 한 번 경고를 줬다.
이처럼 서울시는 국토부를 ‘패싱’하고 사업을 시도했지만, 매번 한계에 부딪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서울시는 보건당국과 사소한 마찰을 빚었다. 서울시는 지난 9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메르스 관련 대응 회의를 진행하며 메르스 확진 환자의 동선 등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는 질병관리본부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라이브 영상을 통해 “메르스 환자가 진실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역학조사가 좀 더 치밀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회의 내용도 앞서 질본이 발표한 것과는 다소 엇갈린 측면이 있어 마치 질본이 조사를 미흡하게 했거나 내용을 감춘 것처럼 보였을 여지도 있다.
같은 날 박 시장은 환자가 격리된 서울대병원 병실을 직접 방문했다. 그러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관련 병원 등이 메르스 대처에 전념하시도록 협조해달라. 저도 현장방문을 하지 않겠다”며 “기관들은 문의를 자제하시고, 기자의 취재도 정해진 창구와 방식을 이용해주시기 바란다. 3년 전 담당의사, 이번 담당의사의 말씀”이라고 했다. 마치 박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처럼 비쳤다.
아울러 정부‧여당은 서울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서울 내의 그린벨트(개발 제한구역) 해제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여기에도 “그린벨트 해제는 극도로 신중히 해야 한다”며 사실상 정부의 기조에 반발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 시장이 이같이 중앙정부와는 거리를 두고 독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선 20대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박 시장이 자신의 존재감을 다지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한 서울시청 관계자는 “박 시장이 이처럼 정부를 무시하고 자기 사업 추진하는 건 대선을 목표로 하고 치적 쌓으려 하는 거 아니겠냐”며 “최근 박 시장의 옥탑방 체험과 대중교통 이용, 휠체어 체험 모두 인기 몰이를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