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한 맷 달튼. 연합뉴스
빅토르 안의 한국행은 러시아빙상연맹 회장이 언급하며 알려졌다. 러시아 측에서 밝힌 이유는 그의 ‘가정 사정’이었다. 러시아는 그에게 코치직까지 제의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러시아 빙상계 일부에서는 그를 두고 ‘배신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다만 현지 팬들은 그의 결정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빅토르 안이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은퇴 선언 글에는 러시아 팬들의 응원 댓글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응원과 비판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한편 아버지 안기원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보답하길 원했다”마 아쉬운 듯 한 말을 남겼다.
이처럼 빅토르 안의 결정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가운데 평창 올림픽에서 맹활약한 귀화 선수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국내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성공의 사명을 띠고 아이스하키, 루지, 바이애슬론 등 일부 종목에서는 해외 우수선수 귀화를 추진했다. 귀화 이외에도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교포나 입양인, 혼혈 선수 등을 국내로 데려오기도 했다.
#국내 생활 이어가는 빙판 위 전사들
아이스하키는 귀화선수를 가장 활발히 활용한 종목이다. 남자팀에서는 7명의 선수가 대회에 나서 주축으로 활약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선수들을 귀화시키며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조직력과 적응력이다. 단체 종목인 아이스하키는 특히나 팀워크가 강조된다. 이미 국내 구단에서 다년간 활약 중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귀화를 진행했다.
수백 개의 선방으로 팀을 구했던 골리 맷 달튼을 포함해 대다수의 선수들이 원 소속팀인 안양 한라, 대명 킬러웨일즈로 돌아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귀화 1호’ 브락 라던스키만이 올림픽과 이어진 세계선수권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008년부터 인연을 이어온 안양 한라에서는 그의 은퇴식도 준비했다.
다만 여자팀은 상황이 다소 달랐다. 남자팀과 같은 실업 구단이 전무했던 여자팀은 해외에서 선수를 물색했다. 교포, 입양인, 혼혈 선수 등에게 제안을 했고 팀에 합류시켰다.
팀 구성 과정이 달랐듯, 대회 이후 상황 또한 남자팀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랜디 희수 그리핀, 임대넬, 박캐롤라인, 박윤정, 이진규 등의 선수들은 모두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돌아갔다. 해외에서도 여자 아이스하키의 저변이 탄탄하지 않기에 이들 중 대다수가 하키 스틱을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 기여하겠다” 약속 지키는 바이애슬론·루지
세계의 벽이 높은 바이애슬론 종목에서도 선수 귀화가 추진된 바 있다. 대한바이애슬론연맹은 러시아연맹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여러 지도자와 스태프가 대한민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티모페이 랍신, 알렉산드르 스타로두벳츠, 안나 프롤리나, 예카테리나 에바쿠모바가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들은 대회 준비와 참가 과정에서 한국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불모지’ 한국에서 바이애슬론을 더 알리고 발전을 이끌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현재는 이들 중 일부가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 대회 전 부상으로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던 알렉산드르와 예카테리나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랍신과 안나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루지 대표팀의 유일한 귀화선수였던 아일린 프리쉐도 여전히 국내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올림픽에서 종합 8위를 기록해 귀화 선수 중 최고 성적을 올리고 있는 그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도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대표팀에도 합류해 동료들과 훈련을 하고 있다. 오는 10월이면 해외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결별 선택한 선수들
올림픽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태극마크와 멀어진 선수들도 있다. 아이스댄싱 대표로 아리랑에 맞춰 공연을 선보인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조는 지난 7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돌연 해체를 발표했다. 미국 교포로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던 민유라는 한국 국적을 선택했고 미국인 겜린은 귀화를 한 바 있다.
결국 한국팬들에게 작별을 고한 알렉산더 겜린. 사진=겜린 인스타그램 캡처
소셜미디어에서 이어지던 둘 간의 설전은 결별로 최종 결론이 났다. 이들은 폭로전을 멈췄고 겜린은 한국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민유라는 “다시 시작한다”는 심경을 밝혔다.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한민국 대표로 2022 베이징 올림픽에 나서겠다”던 계획이 지켜질지는 알 수 없게 됐다.
귀화 선수는 아니지만 크로스컨트리 대표로 올림픽에 나섰던 김마그너스도 한국을 떠난 이 중 한 명이다. 노르웨이와 한국 이중국적자였던 그는 2015년부터 한국 국가대표를 선택해 활약했다.
그러던 지난 5월 돌연 ‘태극마크 반납’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스키협회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노르웨이로 떠났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