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인사이더 일본판에 실린 나카노 사장.
도쿄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덴노즈아일 풍경이 바뀌고 있다. 운하와 창고밖에 없던 동네가 지금은 멋진 갤러리 건물들로 하나둘 채워지는 중이다. 구석구석 팝아트 벽화도 즐비하다. 이곳을 예술이 공존하는 거리로 변모시킨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데라다창고’라는 회사다.
“미술수집가라면 데라다창고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도쿄에서 화랑을 경영하는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일본인 기업가 마에자와 유사쿠가 경매에서 바스키아의 작품을 1240억 원에 낙찰 받은 것이 화제가 됐는데, 그 작품이 예치된 곳이 데라다창고다. 이외에도 세계 갑부들이 모은 시가 수백억 원대의 미술품들이 보관돼 있으며, 수천만 원대의 고급와인들도 소믈리에의 엄중한 관리 아래 보관 중이다.
데라다창고는 1950년 창업했다. 주로 쌀이나 식료품을 맡는 일반적인 창고업체였으나 미술품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보관하는 ‘프리미엄 창고’로 전환해 성장했다. 특히 “현재의 대표이사인 나카노 요시히사 씨가 2011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패셔너블한 비즈니스 업체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데라다창고 외관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재팬
‘주간겐다이’ 보도에 따르면 “나카노 사장의 현거주지는 대만”이다. 그래서 주 2회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와 출근한다. 전 세계 아티스트로부터 ‘패트런(후원자)’이라 불릴 만큼 예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지만,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탓인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한때 “실재하는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기본적인 창고업만 해왔던 ‘데라다창고’가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로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나카노 사장은 취임 후 2년 동안 1000명이었던 사원을 100명으로 줄여갔다. 주력 사업을 매각하거나 관련회사화하는 등 규모를 10분의 1로 슬림화한 것이다. 그 결과,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졌고 사업의 신진대사도 활발해졌다.
사원의 평균연령은 36세. 근속연수 10년 미만이 약 75%를 차지한다. 마치 벤처기업과도 같은 숫자다. 다만 7000억 원이었던 매출액은 1000억 원대가 됐다. 이처럼 매출액이 딱 7분의 1이 됐지만, 캐시플로(현금보유)는 8배나 증가해 ‘작아도 강한 회사’로 거듭났다. 평단가도 7년 전과 비교했을 때 5배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언뜻 숫자만 놓고 보면 ‘정리해고가 심하고 이직률이 높은 회사’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의외로 사원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 일본 경제지 ‘주간다이아몬드’는 “오히려 데라다창고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함으로써 사원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독립하거나 타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데라다창고가 미술품을 보관하는 창고. 해외고객이 30%를 차지한다. 사진=데라다창고 홈페이지
나카노 사장은 취임 직후 “매출액은 1000억 원 정도가 알맞다. 그 이상 회사가 커지면 재미있는 일을 기획하고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1000억 원이 넘으면 관련 사업을 매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노 사장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던 사업을 점차 일반 소비자로 넓혀갔다. 특히 개인이 전용상자에 물건을 담아오면 월 2000원에 보관해주는 서비스 ‘미니쿠라’가 큰 주목을 받았다. 보내오는 물품들은 주로 의류나 책이 많았는데, 맡긴 물건이 필요해지면 다시 택배로 보내준다. 또 맡겨진 물건은 인터넷을 통해 매매도 할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공유해 수익도 창출하는 일석이조의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때마침 일본에서 일어난 ‘단샤리(断捨離, 미니멀라이프)’ 열풍을 타고 소위 대박이 났다. 여기서 단샤리란 끊을 단(斷), 버릴 사(捨), 떠날 리(離)로, 불필요한 물건들을 과감히 끊고 버림으로써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나카노 사장은 관련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일본의 집은 좁다. 물건을 맡기면 공간에도, 마음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믈리에의 철저한 관리 아래 소중한 와인을 보관한다. 사진=데라다창고 홈페이지
‘주간겐다이’에 의하면, 나카노 사장 스스로도 미니멀라이프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동차도, 집도, 심지어 손목시계도 없다. 고급와인을 보관하는 일을 하지만, 술도 마시지 않는다. 재물을 모으는 데도 관심이 없어 번 돈은 생활비를 제외하곤 대부분 기부한다. 나카노 사장의 친구이자 저명한 건축가인 구마 겐고 씨는 “나카노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그 순간을 즐긴다. 예술 거리 조성과 예술가 지원에 돈을 기부하는 일도 자신의 꿈이 거기에 있어서”라고 밝혔다. 덧붙여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경영감각이 뛰어난 현실주의자로 그간 일본에서는 별로 본 적 없는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사장의 영향 때문인지 데라다창고도 이례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올해 8월, 동사는 세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후원자에게 주는 ‘몽블랑 국제문화상’을 수여해 화제가 됐다. 법인체가 수상한 것은 일본 최초이며, 더욱이 창고업체라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다.
덴노즈아일을 예술이 공존하는 거리로 변모시킨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데라다창고다. 사진=데라다창고 홈페이지
‘비즈니스 인사이더’ 일본판은 나카노 사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데라다창고가 현대미술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했다. 나카노 사장은 “현대미술이라면 100년, 200년에 걸쳐서 새로운 가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면 경쟁도 적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덴노즈아일 일대를 예술 거리로 조성하고, 사업도 재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나카노 사장은 “세계 미술시장은 무려 67조 원대다. 하지만 일본의 점유율은 4% 미만. 게다가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된 탓에 활발한 소비자도 한정적”이라면서 “이와 달리 예술엔 국경이 없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현재 데라다창고는 사장 개인적으로도, 기업으로서도 차세대 아티스트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주말이 다가오면 나카노 사장은 대만으로 돌아가 일상을 보낸다. 거처하는 곳은 자택이 아닌 호텔. 일에 전념하기 위해 하우스클리닝은 따로 맡기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남겨 골칫거리를 떠안는 인생은 원치 않았다. 일반 부유층과 달리 ‘소유하지 않은 채 지금을 즐기고 싶다’는 게 그의 삶의 방식이다. 데라다창고에는 사장실도 없다. 단샤리 인생을 걷는 나카노 사장은 오늘도 의자가 없는 책상 앞에 선 채로 집무를 본다.
나카노 요시히사(73) : 1944년생. 이세탄백화점을 거쳐, 주식회사 스즈야에서 해외사업 및 상품개발 담당 전무를 역임했다. 이후 대만으로 건너가 해외 기업 경영에 종사. 2011년 데라다창고 사장으로 취임한 뒤로는 웹 서비스 구축과 공간을 활용한 아트 콘텐츠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2015년부터 중화민국 정부 문화부 명예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