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대선이 끝나면 정치권 시선은 차기 대통령이 단행할 첫 인사로 쏠린다. 인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주요 보직을 놓고 여권 내에선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인사 결과는 곧 실세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이명박 정부 때 박영준 전 차관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인사를 좌지우지하며 최고 실세로 떠올랐던 게 대표적 사례다.
낙하산 인사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전문성이나 업무 관련성보단 ‘자기 사람 심기’ 또는 ‘나눠먹기’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대선 승리 후 여권에선 자리싸움이 벌어졌다. 10년 만에 되찾은 권력인 탓일까. 인사마다 수많은 경쟁자가 몰렸고, 임명 후엔 어김없이 뒷말이 나왔다.
사실 낙하산 인사는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으면서도 모든 정권마다 반복됐다. 선거로 권력을 쥐는 대통령제에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야권 시절 낙하산 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에서 문재인 정부 낙하산 인사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이 9월 4일 발표한 ‘공공기관 친문(文) 백서: 문재인 정부 낙하산·캠코더 인사 현황’에 따르면 정권 출범 후 올해 8월까지 340개 공공기관에서 새롭게 임명된 임원 1651명 가운데 365명이 ‘캠코더(대선캠프·코드인사·더불어민주당)’ 출신이었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불출마했거나 낙선한 민주당 전직 의원들의 기관장 발탁이 눈에 띄었다. ‘보은 인사’인 셈이다.
여권엔 아직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다. 챙겨야 할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한정돼 있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여기에 전문성이나 업무 관련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이미 발탁된 인사들을 흠집 내기 위한 마타도어식의 소문만 무성하다. 남은 임기 동안 낙하산 인사가 계속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선 특정 그룹이 인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대두됐다. 몇몇 친문 실세들이 모임을 꾸려 정권 출범 직후부터 공공기관 기관장 인사 등에 관여했다는 게 골자다. 이들 모두 친문 핵심으로 분류된다. 친문 진영에선 이들이 낙하산 인사의 ‘컨트롤 타워’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친문 인사 말이다.
“대선 때부터 문 대통령을 지원 사격하던 모임이었는데, 대선이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개국공신이다 보니 아무래도 주목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인사에 있어서 그랬다. 이들을 통해 한 자리 받으려는 정치권 인사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교통정리도 하고, 납득할 만한 ‘민원’인 경우 들어주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이게 조금씩 외부로 알려지면서 인사와 관련해 잡음이 생긴 것 같다.”
한 공공기관 기관장으로 임명된 전직 의원의 경우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친문 인사와 밀접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이 전직 의원은 당초 기관장 후보로 전혀 거론되지 않았지만 ‘깜짝’ 발탁되면서 그 배경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간 바 있다. 더군다나 그는 친문계도 아니어서 여권 내부에서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모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한 친문 의원은 “(이 모임에서) 그 전직 의원을 기관장으로 강하게 추천했던 게 맞다. 원래 유력했던 후보의 반발이 심했지만 밀어붙였다”면서 “그 정도 힘은 있다”고 귀띔했다. 이 친문 의원이 언급한 유력 후보 측은 “우리가 낙점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판에 뒤집혔다. 한 실세 의원이 지금의 기관장을 밀었던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모임에서 사실상의 ‘면접’을 봤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 기관장·임원 인사 때 복수의 인사들이 후보로 거론됐는데, 이들이 한 후보를 직접 불러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 후보가 공공기관 임원으로 최종 낙점됐다. 이들이 이 공공기관 인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오해를 사기엔 충분한 장면이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여권 인사들 중 일부는 실제 이 모임에 속한 멤버와 만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인사 때문이었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나랑 과거에 함께 일했던 정치인이 그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한 공공기관 보직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부탁을 하기 위해 만남을 가졌다. 약속 장소로 나가 보니 그분뿐 아니라 다른 친문 인사들이 여럿 있었다. 말로만 듣던 그 모임인가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모임에서 포스코 회장 선임과 관련된 논의가 오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들이 공석이던 포스코 회장 후보로 여러 인물을 거론했었다는 것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포스코 회장) 인사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여러 회장 후보들 중 누구는 어떻다더라. 누구는 적폐 아니냐와 같은 생각들을 주고받았던 수준이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아무런 권한도 없는 이들이 사기업인 포스코 회장직에 대해 언급했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포스코 회장 선임 당시 얼마나 많은 뒷말이 나왔느냐. 자기들끼리 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은 자유겠지만 그들이 다 여권 실세라는 점에서 자칫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처신”이라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