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프렌에 따르면 CJ ENM은 2016년 6월 모비프렌 블루투스 제품에 대한 판매 의사를 타진하며 방송 제작과 채널 등 자사 이점을 활용해 제품을 홍보, 판매를 늘려주겠다고 했다. CJ ENM는 “LG 블루투스 이어폰을 잡는 게 목표”라며 “잘 되고 나서 배신하지나 말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비프렌은 CJ ENM 제안을 받아 2016년 8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약 100억 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했다. 2016년 13억 6000억 원, 2017년 40억 원, 2018년 45억 원이다. 또 모비프렌과 CJ ENM이 체결한 상품 거래 계약서상 100억 원은 최소 구매 금액이며 ‘모비프렌은 국내에 판매되는 모비프렌 제품을 CJ ENM에 독점 공급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모비프렌은 100억 원 넘는 구매가 이뤄질 것으로 판단했다.
CJ디지털뮤직 뮤직디바이스팀이 CJ ENM 홈페이지에서 모비프렌 공식 판매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CJ ENM 홈페이지
모비프렌의 판단은 거래 3개월째 오판으로 드러났다. 거래 첫 달인 2016년 8월 4억 9100만 원어치 블루투스 이어폰을 가져간 CJ ENM은 같은 해 9월과 10월 각각 1억 1400만 원, 1억 800만 원어치만 구매하는 데 그쳤다. 2016년 말 구매 실적은 3200만 원에 그쳤다. 계약상 2016년 최소 구매금액은 13억 6000만 원이었지만, CJ ENM은 총 8억 8900만 원을 구매해 계약 이행률이 65% 수준에 그쳤다.
거래 첫 달 구매 규모만 고려해 모비프렌은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고용을 늘렸지만 이는 부채로 돌아왔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대기업 갑질 철폐’ 움직임이 일기 전까지 CJ ENM의 계약 이행은 계속 저조했다. 실제로 CJ ENM은 2017년 5월부터 블루투스 이어폰 구매 금액을 5억~7억 원 규모로 늘린 뒤 최소 구매 수량 및 거래 금액 미이행에 대한 합의를 모비프렌에 요청하기도 했다.
의아한 점은 모비프렌이 CJ ENM과 블루투스 이어폰 국내 판매 독점 공급을 계약해 총판권을 넘긴 후 모비프렌 제품이 시장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모비프렌 제품 판매 유통망 현황에 따르면 CJ ENM으로 총판권이 넘어가기 전 모비프렌 제품은 5개 유통업체를 통해 판매됐다. 현재 CJ ENM이 모비프렌 블루투스 이어폰를 1개 유통업체에 주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대형 유통점인 하이마트와 이마트, 공항·시내 면세점의 판매 입점은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 CJ ENM이 유통 거래선을 계약 한 달 만에 정리, 직접 시장을 키우겠다고 한 뒤 지키지 못한 것이다. CJ ENM은 8월 말 기준으로 150곳 판매 점포를 확보했다고 설명하지만 당초 1000여 개였던 판매 점포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 모비프렌은 온라인 유통망이라도 회복하겠다며 CJ ENM에 납품하는 블루투스 이어폰에 납품가 기준 10% 웃돈을 얹어 되사오고 있다.
올해 말로 예정된 상품 거래 계약이 완료되면 모비프렌은 무너진 유통망을 혼자 힘으로 다시 복구해야 한다. 허주원 모비프렌 대표는 “최소 구매 금액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 사이 기업 신용등급은 BBB+에서 BB+로 세 단계 하락했다”며 “한 번 무너진 유통망을 다시 갖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민회 CJ ENM 대표는 모비프렌에 “디바이스팀과 함께 통합마케팅 조직 디지털마케팅 영업팀도 확대해 운영했지만 음향기기 쪽 판매 전문성을 보유하지 않아 판매 증진이 어렵다”고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CJ ENM 측의 사업 역량 부족을 인정한 셈이다. 또 CJ ENM 경영지원실은 “올해 말 계약이 종료되면 사업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지금부터 생산을 중단하고 보상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고 전했다. 모비프렌은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부가 강소기업으로 선정한 기술 기업으로 꼽혔지만, CJ ENM의 생산 중단 요청을 받았다.
모비프렌이 작성한 CJ ENM의 블루투스 이어폰 계약금액 및 구매 실적. 일요신문
법조계에선 CJ ENM이 유망한 중소기업의 상품을 죽인 불공정행위를 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3조의 2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금지 3항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 공정거래 전문 한 변호사는 “계약서에서 독점 공급 지위를 가진 CJ ENM은 독점 판매자로서 거래상 우월지위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제품을 구매해 간 CJ ENM이 제품 처분 권한을 갖는 것은 맞지만 CJ ENM이 유통을 하지 않은, 즉 유통 거절 탓에 모비프렌은 제품을 팔아 사업을 영위할 능력이 없어지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CJ ENM은 모비프렌과 계약에 대한 이행만큼은 정상적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모비프렌과 계약은 현재까지 최소 구매 금액을 기준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것. CJ ENM은 “계약 이후 애플의 아이팟 출시 등 블루투스 이어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매 저조로 인한 누적 재고 발생이 지속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CJ ENM은 약 75억 원 규모 블루투스 이어폰을 재고로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허주원 모비프렌 대표는 “구매 이후 시장에 풀리지 않으면 중소기업으로선 다음을 준비할 수가 없게 된다”고 했다.
모비프렌과 CJ ENM 간 계약이 대기업 유통망과 홍보 능력을 활용한 상생 취지를 가진 만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위반 소지도 불거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상생협력법은 공정거래법 등에 저촉하지 않는 행위에 대한 제한 목적”이라며 “25조 준수사항은 수탁·위탁거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