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청문회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12월 5일 국민들의 시선은 국회로 향했다. ‘박근혜정부의최순실등민간인에의한국정농단의혹사건진상규명을위한국정조사(최순실 청문회)’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2017년 1월 9일까지 열린 청문회는 진상을 규명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았다. 동시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정치권 이슈의 중심에 섰다.
우선 화려한 증인 명단이 눈길을 모았다. 이재용 신동빈 정몽구 김승연 회장 등 재계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장시호 우병우 김기춘 등 국정농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인사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이화여대의 최경희 김경숙, 청와대 간호장교 출신 조여옥 등도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증인들이었다.
일부 증인들은 소신 있는 답변으로 많은 호응을 받았다. 고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은 ‘사이다’ 발언으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반면, 애매모호한 답변이나 모르쇠로 일관한 증인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법꾸라지’로 불렸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경우 최순실을 모른다고 했다가 추후 관련 자료가 제시되자 “나이가 먹어서”라는 희대의 변명을 남기기도 했다. 증인들 중 일부는 청문회 위증으로 추후 사법처리를 받았다.
청문위원들은 명암이 엇갈렸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증인들의 답변을 이끌어냈던 청문위원들은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부 청문위원들은 노골적인 증인 편들기로 빈축을 샀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처럼 “숨기는 자가 범인입니다” “영업비밀입니까”와 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의원들도 있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사회 도중 갑자기 웃음을 터트려 ‘박뿜계’라는 별명을 얻었고,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질의 도중 ‘누가 그랬을까’라는 발언을 해 ‘쓰까요정’으로 불렸다.
이처럼 청문회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치러지고 있던 무렵 박근혜 정부 몇몇 사정기관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뒤늦게 포착됐다. 주요 청문위원들과 증인들의 비리 의혹 등이 담긴 보고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계엄 문건’으로 해체된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소속의 청문위원 대부분이 ‘타깃’이 됐다. 또 증인으로 나왔던 재계와 학계 등 여러 관계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위원으로 활약했던 한 민주당 의원과 관련된 사정기관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여기엔 그의 신상명세와 주요 경력이 기록돼 있었다. 또 이 의원과 개인친분이 있는 유명인들 실명이 적혀있었다. 눈길을 끄는 항목은 이 의원이 상임위 시절 유관기관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정보보고 차원이라기보다는 광범위한 뒷조사를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누리당이었지만 청문회에서 활약이 돋보였던 한 의원의 경우 자녀 문제와 관련된 보고서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 의원의 또 다른 보고서엔 치명적인 ‘스캔들’이 적혀 있었는데 이는 올해 초 루머로 판명된 것이었다. 청문위원이었던 한 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보고서를 본 뒤 “소름이 돋는다. 박근혜 정부 최후의 발악이었던 것 같다”면서 “청문위원들과 증인들에 대한 자료를 무슨 용도로 수집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청문회를 방해하려 한,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다.
참고인으로 요청됐던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 측의 갑작스런 해외 출장으로 출석이 무산됐는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움직였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이 이 회사의 최고위층에게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했던 한 대학교수는 청문회 출석 요청을 받고 수락했지만 며칠 뒤 이를 취소했다고 털어놨다. 간접적인 압박을 받고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일한 경력이 있던 동료 교수로부터 말을 전해 들었다. 청문회 나가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얘기였다. 아무리 힘이 빠진 정권이지만 맞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는데 반협박조로 들렸다. 그 동료 교수가 내 개인적인 문제를 거론해서였다. 어떻게 알았나 싶었다. 나를 사찰하지 않고선 알기 힘든 것이었다. 고민 끝에 개인 사정을 이유로 청문회에 나가지 않기로 하고 청문위원들에게 양해를 부탁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 사정기관의 이러한 움직임은 우선 청문위원이나 증인들의 입에서 불리한 얘기가 나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 이들의 도덕성을 흠집 내기 위한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또 다른 의원은 “청문회 내내 위원들은 국정농단과는 무관한, 논점을 흐리는 도덕성 논란에 시달렸었다. 이 보고서들 역시 그런 차원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사들은 이를 어떤 ‘라인’에서 기획하고 실행했는지에 대해 조사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청문회 기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였다. 박 전 대통령 참모를 비롯한 친박계 실세들 대부분 검찰과 특검 수사를 받고 있던 터라 운신의 폭이 좁았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과연 누가 청문회에 부적절한 개입을 시도하려 했는지 관심이 모아진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 인사는 “그때는 사정기관도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런 지시가 청와대에서 내려온다 하더라도 따를 리 없다”면서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 비선을 통해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