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솔릭 상륙 예보로 기상청은 또 다시 오보청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예보관들이 종합관제시스템으로 제19호 태풍 솔릭 현황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중형 크기 이상의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강타할 것으로 점쳐져 태풍정보에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다. 우리 기상청은 솔릭의 한반도 최초 상륙지를 충남 보령으로 관측했다. 상륙 지점은 전북 군산으로, 전남 영광, 전북 부안으로 계속해서 수정됐다. 기상청은 계속 예보를 수정했지만 솔릭은 야속하게도 전남 해안에 상륙했다.
일본과 미국도 솔릭 오보를 내긴 마찬가지였다. 가장 근접한 예보를 내놓은 일본 기상청은 솔릭 최초 상륙지를 군산으로 점쳤다가 전남 목포로 수정했다. 미국합동태풍경보센터는 당초 솔릭 상륙지점을 인천 강화로 예측했다가 목포로 수정했다. 결국 우리 기상청과 일본, 미국 모두 솔릭 상륙지점과 경로를 맞추지 못했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가장 근사하게 맞춘 것이 일본으로 평가된 것이다.
기상청 신뢰도가 나날이 떨어지자 감사원은 2017년 특정감사를 벌였다. 기상청 특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상청이 비가 올 것으로 예보한 5193회 중 실제 비가 온 경우는 62%에 불과한 3228회다. 반면 비가 올 것으로 예보하지 않았으나 비가 온 경우는 1808회에 달해 강수유무 적중률이 46%에 불과하다.
최근 5년간 나라별 수치예보 오차를 보면 2012년에 비해 2016년 EU는 24시간 예측오차가 13.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캐나다는 18.6%, 일본은 2.8% 예측오차가 감소했는데 우리나라는 도리어 1.4% 예측오차가 증가했다. 기술이 발전해 하드웨어가 업그레이드되는데도 기상청의 기상예보 오차가 더 벌어지는 것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왜 기상예보 수준에 차이가 벌어질까. 기상예보는 위성, 레이더 등으로 수집한 기상자료를 슈퍼컴퓨터 프로그램인 수치예보모델에 입력해 대기방정식 등 연산을 거쳐 미래 기상상황을 예상일기도 등으로 작성한다. 예보관은 슈퍼컴퓨터의 예상일기도 등 수치예보자료를 분석·판단하고 이를 언론에 전달한다. 결국 크게는 위성 및 레이더 자료의 정확성, 슈퍼컴퓨터 수치예보모델의 정확성, 예보관의 판단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예보 정확도에 영향을 미친다.
기상청은 기상 관측을 위해 2010년부터 천리안위성을 운영했지만 정작 이 자료를 예보로 활용하는 기술을 제대로 개발하지 않았다. 자료를 수집하고도 예보에 써먹지 못한 것이다. 지난 2월 동계올림픽 시기에는 정체불명의 위성장애로 며칠 동안 자료 수신이 되지 않아 일본의 위성 영상을 받아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슈퍼컴퓨터의 수치예보모델 활용도 우리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상청에서 사용하는 슈퍼컴퓨터는 1999년 최초로 도입했고, 2016년에는 4호기인 미국 크레이사의 ‘Cray XC40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구매하고도 예보 정확도가 향상되지 않는 데는 ‘수치예보모델’이 한반도에 맞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우리는 영국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지형과 기후에 맞춰진 수치예보모델을 한반도에 적용하는데 오차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치예보모델은 한 번 개발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기후 변화와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단순히 영국 수치예보모델을 우리에게 맞춰 발전시키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상청은 고도로 복잡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을 뜯어고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기상청은 우리나라 맞춤형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등 우리보다 기상예보 정확도가 높은 나라들은 거의 자국의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기술적 한계로 선진국보다 수치예보에 관련된 하드웨어 수준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보관의 능력도 주요 문제로 거론된다. 기상청 인력 풀이 제한적이고 해외전문가보다 예보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은 2000년대부터 줄곧 제기됐다. 기상청으로서도 여러 해법을 강구했다. 기상청은 2008년 주말 날씨 예보를 연속 6주간 맞히지 못해 강도 높은 질타를 받자, 2009년 미국 기상전문가를 영입하는 파격안을 내놨다.
기상청은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의 케네스 크로퍼드 교수를 차관급인 기상선진화추진단장으로 임명하고, 당시 대통령보다 많은 수준의 연봉을 제시했다. ‘예보 히딩크’로 기대를 모은 케네스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은 2009~2013년 기상선진화추진단의 수장으로 재임하며 기상청의 예보역량, 관측기술, 대외 서비스 등 업무 현황을 진단해 분야별 세부 계획을 수립했다.
기상학계에서는 기술 수준의 발달이 어느 정도 예보 정확도에 기여하겠지만, 예보관의 전문성을 더욱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와 자주 비교되는 일본의 경우 슈퍼컴퓨터를 사용한 경험이 20년 이상 길다. 같은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해도 이를 활용해 분석하고 판단하는 인간 예보관의 경험치가 쌓여야 예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공무원 조직 특성상 보직 변경이 자주 이뤄져 예보관이 전문성을 제고할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 심지어 기상청장의 경우만 해도 오보 논란에 휩싸여 빈번한 경질성 교체가 이뤄졌다.
일각에서는 기상청 입사자의 대부분이 서울대와 연세대 등이어서 자기들만의 리그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기상학과의 경우 초창기 서울대와 연세대 두 학교에만 관련학과가 개설돼 국장 이상 인원 중 다수가 두 대학 출신이다.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특정대학 마피아가 자리를 꿰차면 그 대학 출신에게 유리한 인사가 나고 장비용역 업체도 같은 학교 출신이 차린 업체가 선정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는 10개 대학에 기상학과가 개설돼 기상청 입사자의 출신대학 다양화가 이뤄졌다. 기상청 관계자는 “서울대 연대 출신이 기상청에 많은 것은 과거 기상관련 학과가 두 학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후배들은 여러 학교 출신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며 “예보를 물론 꼭 맞히면 좋겠지만 완벽히 맞힐 수 없고, 계속해서 오차를 줄이고자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업계 관계자는 “우리 예보수준이 기술수준과 비례해 낮은 편이 아니다”며 “다만 기상 선진국 1, 2위를 다투는 일본과 미국을 단번에 따라잡으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예보 히딩크 케네스 전 추진단장은 임기 중 출석했던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경우 예보가 빗나가도 언론과 여론이 강한 질타를 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는 한 번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지만, 이런 비판은 도리어 기상청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