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김 위원장을 국회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쉴틈이 없다며 ‘약간 늦게 출근한 오늘이 60일 만에 처음 쉬는 것 같다’고 했다. 참여정부에서 정책실장으로 오래 일한 김 위원장에게 문재인 정부를 두고 ‘참여정부 시즌2’라는 비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책실장직을 수행했던 사람으로서 평가하는 장하성 정책실장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는 “번번이 참여정부 정책을 반대하던 사람들인데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국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비대위원장 제안이 왔을 때 주변에서 많이들 만류했다 들었다.
“주변에서 하지 말라는 사람이 많았다. 나를 걱정하는 분들은 다 하지 말라고 했다. ‘김병준 개인한테 이로울 게 없다’, ‘좀 더 기다려봐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무슨 잘되고 못되는 게 뭐가 중요하냐. 우리 정치 균형이 깨져서 한쪽이 너무 강하고, 견제세력이 없다보면 정부여당조차 일종의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다. 그런 게 걱정이다.”
―들어오기 전 문제라고 봤던 게 안에서 보니 다른 것도 있나.
“정치권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들어와 보니 대체로 비슷했다. 다른 게 있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의 재정문제가 좀 더 심각했다.”
―유력한 대권주자가 야당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명망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할 생각도 있나.
“내 일은 아니다. 거기까지 신경 쓸 시간은 없다. 당의 새로운 비전을 정립하고 당 내부의 노후화된 시스템을 고치고 그 외 필요한 일을 하고 매듭짓는 게 내 일이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맡으면서 당의 가치와 좌표를 재정립하겠다고 했다. 그 작업은 어디까지 왔다고 보나.
“가치, 좌표 문제는 16일 발표한 새로운 성장담론에서 내놨다. 물론 의원총회 등을 통해 더 다듬어서 내놓겠지만 대강의 모습은 드러냈다. 그 안에 가치와 좌표 문제가 다 들어있다. 상당히 진행됐다고 봐야 한다. 가치, 좌표를 설정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 소속 의원들, 당협위원장들, 대의원들, 당원들에게 공유가 되어야 한다. 한국당의 당헌, 당규에도 좋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공유가 안 되기 때문에 문제다. 이번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유가 되어야 하고 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자율이란 가치가 있고 그 자율은 몇 사람에게만 공유된 가치였다면 이번에 재정립 때 모두의 가치가 되도록 할 생각이다.”
―정당 특성상 다양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 있다. 모두를 설득하는 작업이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이는데.
“대체로 보면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성장은 공정한 분배가 있어야 한다는 데 다 같이 생각한다. 별 무리가 없다. 오히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은 국민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가지자고 한다.”
―제대로 된 인식은 무엇인가.
“우리 국민은 대단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어떤 국민이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 몇 안 되는 국민이다. 우리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전 세계로 진출도 한다. 이 국민을 뛰게 해야 한다. 붙들어 두면 안 된다. 우리는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정부여당이나 진보집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규제해야 하고 감독해야 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곳곳에 가서 규제하고 감독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에서 한미FTA를 추진할 때 진보집단은 대한민국 국민을 믿지 않는다. 시장을 열면 대한민국 국민은 다 죽는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열어도 충분히 미국의 압박을 견디고 일어서서 더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개방주의자다. 그래서 한국당은 반대로 우리 국민이 어떤지 확신을 가지자고 한다. 다만 열심히 뛰다 보면 더 잘 뛰는 사람, 못 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차이는 국가가 분배를 통해 잘 살게 해주고, 기회의 균등을 마련해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본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국민 무시 발언’도 자주 나온다.
“이 쪽 당이건, 저 쪽 당이건 품위 없는 사람도 있고 품위 있는 사람도 있다. 서로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한다.”
―문재인 대통령 북한 방문에 기업인들을 포함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기업인과 같이 간 것은 참 잘못한 거다. 우선 기업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그들이 따라가긴 따라갔지만 약속 잘못하면 UN제재 위반이다. UN제재가 강한 시점에 왜 같이 간지 모르겠다. 국가는 우리 국민과 기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서 UN제재가 풀리거나 완화되면 그때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가서 이야기할 수 있지, 그게 안된 상태에서 재계 인사가 동행한 건 국가가 기업을 보호하는 건가. 차라리 북핵 문제에 집중하고 차후에 경제인 그룹을 보내는 게 나앗으리라 본다.”
―참여정부에서도 평양 방문할 때 기업인들과 같이 갔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강한 대북제재가 없을 때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우리 기업인이 가서 할 일이 없다. UN제재가 있는 상황에도 마치 주종관계처럼 대통령이 가자고 하면 굴지의 기업인이 꼼짝없이 대통령의 수행원처럼 따라가는 국가주의적 모습만 전 세계에 보여줬다. 한번 생각해보자. 외국기업들이 봤을 때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우리 나라에 투자를 많이 할까, 대통령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체제에서 한국에 더 투자를 하겠나. 기업인 동행은 우리 기업을 위해서나 경제를 위해서나 반대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국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본인의 저서인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에서 ‘집권보다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쓰셨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그렇다.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국가를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실현가능한 계획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대체로 보면 집권하는 세력이 집권하는 데 바빠 준비가 없다. 들어가 헤매기 시작한다. 그 결과가 뭐냐. 전부 비극적으로 끝난다.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다. 집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집권 이후 준비를 안했다. 준비가 없으니 소득주도성장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을 주력으로 시작했다. 그게 우리 경제를 이렇게 몰아가고 있다. 집권 준비를 안 하면 권력의 칼은 오히려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
―청와대나 여당에서는 지금의 소득주도성장이 산업구조를 바꾸는 시간이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다. 소득주도성장은 일부 국가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수기반 국가면 내수를 활성화시키면 소비가 물건을 더 만들게 해 돌고 돌아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국가라 물가가 오르고 근로자 임금이 오르면 수출경쟁력을 낮출 수 있다. 또는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회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제조업을 포함한 산업체 고용률이 높은 국가라면 가능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고용의 30% 이상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 기업들도 그만한 월급을 줄 능력이 있고, 그렇게 월급이 오르면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소상공인을 포함한 자영업자 수가 낮게 잡아서 26%, 많이 잡으면 30% 되는 국가다. 소상공인 포함 자영업자 수가 미국은 6.5%, 유럽은 12~15%밖에 안된다. 우리나라에는 안 맞는 모델이다. 안 맞는 모델이기 때문에 보조금 주겠다는 거다. 보조금 주면 제대로 돌아갈까. 첫 번째, 정부는 한시적으로 지급한다고 하지만 보조금을 주기 시작하면 중단하기 힘들다. 앞으로 경제가 좋아지거나 안 좋아져도 미래의 정부가 3조 원씩 지원하던 걸 끊기 어렵다. 한 번 나가면 계속 나가게 된다.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두 번째는 자영업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신고하지도 않고 문 닫아 버린다. 우리에게는 안 맞는다는 게 증명이 됐음에도 끝까지 가보겠다는 거다. 경기라는 건 순환론이 있어서 망할 게 다 망하면 언젠가 한 번은 회복기가 돌아오게 돼 있어 그 회복기를 기다리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의 전부가 아니다’라는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은 폐기하지 않으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 속에 다른 정책을 집어 넣을 수 있다. 둘 다 어렵다고 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틀렸다고 인정하고 투자가 일어나는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투자가 일어나서 생산이 늘어나야 일자리가 생긴다. 자꾸 일자리를 국민 세금으로 만들면 안 된다. 공공부문에 17만 명 늘린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공무원 되고 싶어 한다. 17만 명에 최고 엘리트들이 간다. 이 사람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부문에서 우리나라 혁신을 주도해야 할 사람이다. 고용보장, 연공서열 중심, 순환보직 등 공직사회는 그 속성상 혁신이 어려운 집단이다. 공직사회, 공공부문 혁신을 민간 기업과 비교할 수 있나. 공직사회에 핵심 인재를 집어넣는 정부가 우리나라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 맞나. 만약 공공부문에서 대규모 일자리를 뽑는다면 사전에 공공부문에 대대적인 혁신부터 해야 한다. 지금 공공부문 혁신 이야기 나오는 거 있나.”
―현재 부동산을 두고 논란이 많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어떻게 보나.
“중요한 건 보유세나 양도세가 아니다. 쌓여 있는 부동자금을 산업 쪽으로 빼줘야 한다. 그게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다. 참여정부 때는 한미FTA, 서비스산업 육성 등을 주장해 돈을 산업에 투자하게 했다. 참여정부 시작에 종합주가지수가 630 정도에서 시작해 2000이 넘어 끝났다. 주식을 통해 산업으로 돈이 갔다는 얘기다. 당시 강남 부동산이 2~3배 올랐다는 말이 있는데 주가는 그보다 더 많이 올랐다. 이 정부는 가장 근본적인 산업정책이 없다. 쌓인 돈을 자본시장으로 빼주질 못하기 때문에 돈이 부동산 안에 갇혀 있어 문제다.”
―민주당에서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부동산 관련 발언 정리’라는 어록 시리즈를 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다 틀렸다. 내가 한 발언을 시리즈로 냈는데 보면 종부세(종합부동산세) 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종부세 반대한 적 있나. 종부세 반대한 적 없다. ‘보유과세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게 종부세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신 거래관련과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참여정부 때도 거래과세인 취등록세를 낮췄다. 그때도 양도관련세까지 낮추려고 했지만 소위 진보세력 때문에 관철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여전히 나는 보유과세는 올리고 양도소득세를 포함한 거래관련과세를 내려야 한다는 게 소신이다. 지금도 똑같고 그때도 똑같다. 내 어록 만들 시간에 산업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국회의장, 여당, 제1야당 당 대표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요직을 맡고 있다. 배경은 뭐라고 보나.
“참여정부 운영이 다른 정부와 비교해 비교적 토론을 좋아하고, 자율성을 존중했다. 여러 면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지적 훈련을 받기 좋았으리라 본다.”
―자유한국당 당 차원에서 장하성 정책실장 경질을 주장하고 있다. 참여정부 정책실장으로서 장하성 실장을 평가한다면 어떤가.
“현 정부 내부 메커니즘은 모르지만 난 장하성 정책실장이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인상’ 등 문제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다른 큰 힘에 눌리고 있거나, 진실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얼마나 괴롭겠나. 상당히 괴로울 것 같다.”
―자유한국당 유튜브인 ‘오른소리’에서 인적청산이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했다. 배경은 뭔가.
“인적청산은 시원한 일종의 사이다 같은 거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2016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당 총선 공천에서 누구부터 잘랐나. 이해찬 의원 컷오프시켰다. 지금 뭐하고 있나. 민주당 대표 하고 있다. 그때 일시적으로 잘랐다가 다시 돌아온 문희상 의원도 있다. 지금 뭐하고 있나. 국회의장하고 있다. 그때 유인태 전 의원도 컷오프시켰다. 지금 국회 사무총장하고 있다. 자진해서 나갔던 최재성 의원은 뭐하고 있나. 친문 핵심이자 당의 실세다. 누굴 잘랐다는 건가. ‘아 김종인 위원장이 잘라서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 커서 돌아왔다. 정치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그때 사이다 한 잔 마시고 시원했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더 못한 구도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가치를 먼저 세우고 그걸 토대로 어떤 사람을 맞다, 안 맞다 판단해야 한다. 인적청산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후순위 중에 후순위고 아차 하는 순간에 도돌이표 된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연초에 비하면 크게 떨어졌지만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생각하는 이유와 대책을 말해 달라.
“그만큼 국민이 컸다는 이야기다. 개선 방안 따로 없다. 반사 이익 기대하지 말고 당 내 혁신엔진을 다시 돌려야 한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더 좋은 환경이라고도 생각한다.”
―최근 ‘출산주도성장’이라는 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출산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출산율이 워낙 낮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한 거다. 저쪽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을 쓰니까 비판하기 위해 쓴 단어지, 키워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대위원장으로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정에 맞춰 혁신을 마무리 짓고 나는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거다.”
―교수, 정책가에 이어 당직까지 맡았다. 어떤 게 본인에게 가장 맞는다고 생각하나.
“나는 교수를 하면서 글 쓰고 강연하는 게 가장 맞다. 다만 어떤 상황에 놓이면 최선을 다하는 거다.”
―세간에는 대선에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선 이야기 하기엔 세월 한참 남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