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전 대표가 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빠져나가고 있다. 이종현 기자
기자들이 홍 전 대표에게 제일 먼저 질문한 것도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할 계획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홍 전 대표는 “당권을 잡으려고 새롭게 정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출마를 안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느냐’는 질문에는 “마음대로 해석하라”며 여지를 남겼다.
홍 전 대표 귀국현장에는 환영인파가 몰렸지만 정작 당내 반응은 싸늘했다. 이날 홍 전 대표를 마중 나온 당내 인사는 비서실장을 지냈던 강효상 의원과 김대식 전 여의도연구원장, 배현진 대변인, 강연재 서울 노원구병 당협위원장뿐이었다.
홍 전 대표의 도움으로 복당했던 바른정당 복당파 의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홍 전 대표 체제에서 수석대변인을 지낸 장제원 의원 측은 마중 나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지역구 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수석대변인 시절 홍 전 대표를 적극 방어하며 친홍(친 홍준표)계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역시 친홍계로 분류됐던 복당파 김성태 원내대표는 한 방송에서 홍 전 대표를 ‘자연인’이라고 칭하면서 선을 그었다. 김 원내대표는 방송에서 “홍 전 대표가 당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그의 고향인 경남 창녕행을 권유하기도 했다. 복당파가 주도해 영입해온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홍 전 대표를 ‘평당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비대위에서는 홍 전 대표를 당에서 제명하는 방안도 논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호 한국당 비대위원은 “그런(홍 전 대표 제명)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맞다. 여러 주장들, 요청들은 있었다”면서도 “공식적인 테이블에서 논의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비대위는 당 개혁을 위한 기구인데 특정인에 대한 제명이 논의된 이유에 대해서는 “당 개혁을 위해 왔으니까 이야기하는 거다. 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이 있는 분이 다시 당 대표로 출마한다면 이 당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 비대위원은 “다만 홍 전 대표가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비대위에서 홍 전 대표 제명을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비대위는 복당파의 주도로 꾸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비대위를 통해 홍 전 대표를 제명하려한 것이 복당파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김병준 비대위는 최근 당무감사에 착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친홍계 당협위원장들이 대거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홍 전 대표도 대표 시절 당무감사를 통해 친박(친박근혜)계 당협위원장들을 대거 교체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대해 최병길 한국당 비대위원은 “비대위 활동하면서 외부의 압력은 전혀 없었다”면서 “우리는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복당파는 홍 전 대표 체제에서 주요당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홍 전 대표는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복당파의 당협위원장 복귀도 적극 지원했었다. 복당파가 탈당하면서 공석이 된 지역구를 관리하고 있던 기존 당협위원장들은 졸지에 자리에서 쫓겨났다.
당시 당내에선 당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이 오히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홍 전 대표는 복당파의 당협위원장 복귀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복당파가 이제 와서 홍 전 대표와 선을 그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태 원내대표의 입장을 직접 청취해보려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 원내대표의 보좌진도 “보좌진이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거 같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전직 한국당 의원은 “(복당파는) 한 번 배신했던 사람들 아니냐. 그런 사람들을 믿었다면 홍 전 대표가 순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치연구소 박정희 소장은 “자신들(복당파)에게 홍 전 대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소장은 “복당파는 친홍계라기보다는 홍 전 대표와 전략적 동맹에 가까운 관계였다. 홍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출마해도 당선될 가능성은 낮고, 당선되어도 당 지지율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선을 긋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당 내에서는 홍 전 대표가 당에 필요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당 대표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거부감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홍 전 대표가) 대표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여권) 저격수 역할을 해주시는 게 당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복당파가 외면하면서 홍 전 대표의 당내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홍 전 대표의 정계은퇴를 요구했던 한국당 원외 당협위원장 모임 재건비상행동의 구본철 대변인은 “홍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해도 이에 항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구 대변인은 “그 분은 이미 국민들이나 당원들에게 아웃된 분인데 더 이상 관심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박정희 소장도 “복당파를 제외하면 홍 전 대표는 당내 세력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결과는 뻔하다. 본인도 잘 알 거다. 당 대표보다는 재보선 등을 통해 정치 복귀를 노리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홍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분간 전당대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선거가 없는데 굳이 이 시점에 귀국한 것은 정치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차기 전당대회에 홍 전 대표가 출마할 경우 비박계의 표가 갈릴 것을 우려해 복당파가 홍 전 대표를 견제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복당파 중 유력 차기 당권주자로 떠오르는 인물은 김무성 의원이다. 김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권 도전설에 대해 “우리 당의 변화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제가 역할이 있으면 하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고 답했다. 복당파 중 상당수는 과거 김무성계로 분류됐던 의원들이다.
김 의원의 차기 당권 도전설은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서 회자됐었다. 지난해 11월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 의원 8인의 입당식에 홍 전 대표는 15분 정도 지각했다. 이를 두고 당시 정치권에선 홍 전 대표가 차기 당권 경쟁자가 될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각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었다.
복당파의 선긋기에 대해 홍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귀국 당시) 공항에서 그런 것(복당파 선긋기)과 관련한 말씀은 없으셨다”면서 “어떤 생각이신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