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민간 외교란 말이 있다. 불모지나 척박한 환경에 놓인 종목을 맡아 팀을 성장시키고 결과를 일궈낼 때 지도자들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최근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박항서 감독은 축구 하나로 ‘베트남 영웅’이 됐다.
지도자 인생의 마지막 도전으로 선택한 베트남에서 박 감독은 성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 태국에서 열린 M150컵 U-23 국제 토너먼트 3, 4위 결정전에서 10년 만에 태국을 이기며 주목을 받았고, 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처음으로 호주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사상 처음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베트남 축구를 아시안게임 4강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왼쪽)과 베트남 사격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박충건 감독. 연합뉴스
베트남 축구대표팀에서 박 감독을 보좌하는 이영진 수석코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아침마다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면서 “전임 감독이었던 미우라 도시야 감독(2014년 5월~2016년 1월)은 선수들과의 스킨십이 거의 없었던 터라 박 감독님의 방법이 선수들에게 남다른 감동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과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잇따라 2관왕(1000m, 3000m 계주 금메달)에 올랐던 여자 쇼트트랙의 전설, 전이경 감독. 그는 은퇴 후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선수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2015년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쇼트트랙과 무관하게 자녀 교육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싱가포르 빙상연맹이 러브콜을 보냈다. 잠시 고민하던 전 감독은 2015년 10월부터 싱가포르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 감독이 가장 힘들어 한 부분은 아이스링크.
“싱가포르에는 빙상장이 한 곳밖에 없다. 빙상 종목에서는 개발도상국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대관료도 1시간에 1000달러(약 120만 원)다. 한국은 아침저녁으로, 일주일 내내 스케이트를 타는 반면에 여긴 일주일에 두 차례 연습하는 게 전부다. 기본기가 떨어지고 훈련 시간마저 부족한 탓에 자세 수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싱가포르는 학업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이라 시험이 겹치면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훈련하러 나오지 않는다. 훈련도 대부분 저녁에 이뤄진다. 수업을 마친 후에야 가능하다.”
이런 환경에서도 전 감독은 지난 평창올림픽에 싱가포르 쇼트트랙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전 감독의 지도를 받은 샤이넨 고가 쇼트트랙 여자 1500m에 출전하게 된 것. 그러나 샤이넨 고는 여자 1500m 준준결승에 출전, 5위로 탈락했다.
“아직은 더 성장해야 하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이 눈에 띈다. 그런 선수들은 한국으로 훈련 유학을 보낸다. 얼음이 있는 곳에서 많은 연습을 통해 실력을 끌어 올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지도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전 감독은 선수들이 점차 기록을 단축해 나갈 때마다 표현 못할 전율을 느낀다고 말한다.
“500m에서 한 바퀴 정도가 빨라졌다. 53초 타던 선수들이 44초에 들어온다. 이런 조건에서도 성적을 내는 선수들인데 만약 링크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훈련 시간에 많은 공을 들인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일주일에 세 번이라도 탔으면 좋겠다. 아무 때나 마음대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한국 선수들이 부러울 정도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싱가포르 쇼트트랙 대표팀 전이경 감독. 연합뉴스
언젠가는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전 감독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힘들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한국대표팀은 선수로서 충분히 경험했다. 지도자로선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할 것 같다. 언제까지 싱가포르 대표팀을 맡게 될지 모르지만 주어진 시간 동안 싱가포르 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싶다.”
일본 배드민턴은 ‘셔틀콕 황제’ 박주봉 감독이 대표팀을 맡기 전과 후로 나뉜다. 약체였던 일본 배드민턴은 박주봉 감독 부임 후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2016 리우올림픽 여자복식에서 금메달을, 2018 세계배드민턴 여자단체전 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 금메달 획득 등 박 감독이 이끄는 일본 배드민턴은 국제대회 우승을 휩쓸고 있는 중이다. 한국 배드민턴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40년 만에 단체전 노메달이란 충격적인 결과를 나타낸 것에 비하면 박 감독의 일본 배드민턴은 극적인 반전을 이룬 셈이다.
박주봉 감독은 “내가 대표팀에서 활약했을 때만 해도(1980년대) 일본 배드민턴이 한국을 압도했었다”면서 “그러다 한국이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금메달만 4개를 거머쥐면서 배드민턴 종합 1위에 올랐다. 나 외에도 방수현, 김동문, 라경민, 이용대 등이 세계 배드민턴 무대를 주름잡았다”고 회상했다.
일본 배드민턴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참패하자 박주봉 감독을 영입했다. 박 감독은 은퇴 후 영국과 말레이시아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다 일본대표팀 사령탑에 올라섰다.
“일본대표팀을 맡고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시스템 정비였다. 대표팀 선발전부터 합숙 훈련 일정 등을 조절하고 각 파트별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는 등 기본적인 뼈대를 구축한 다음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허황된 큰 목표를 세우지 않고 단계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그렇게 한 단계씩 밟아가면서 조금씩 성과를 냈던 게 국제대회 성적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일본 배드민턴을 완성시켰다. 그렇게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일본 배드민턴협회와 올림픽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하자 지원이 늘어났고 박 감독에 대한 신뢰도 상승됐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런던올림픽에서 첫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던 일이다. 92년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첫 번째 올림픽 메달이라 많은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냈다. 리우올림픽에서 다시 최초의 금메달을 얻게 되면서 여러 회사들과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예산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도쿄올림픽을 위해 모든 걸 집중하고 있는데 예산 관련해선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이다.”
박 감독은 일본대표팀을 맡을 당시 이렇게 오랫동안 한 팀에 머물게 될지 몰랐다고 말한다. “지도자들은 올림픽 주기인 4년 주기로 계약을 맺는다. 성적을 못 내면 당연히 잘릴 수밖에 없는데 성적이 나면서 연장 계약이 이어졌다. 지금은 도쿄올림픽까지 계약이 돼 있는 상태다.”
박 감독은 남녀 대표팀과 상비군 총감독이다. 그의 밑에는 10명의 코칭스태프와 58명의 선수들이 팀을 이룬다. 모든 스케줄은 박 감독의 관리 감독 하에 행해진다.
“처음에는 코치가 4명밖에 없었다. 지원이 늘어나면서 코치를 더 충원했고 파트별로 코치 전담제를 둔 다음 성적으로 평가한다. 파트별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경쟁들이 국제대회 성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일본대표팀을 이끌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일본대표팀의 색다른 시스템과 부딪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일본은 대표팀보다 선수들이 속한 실업팀의 입김이 훨씬 강하다. 대표팀에 선수를 보낸 이후 사사건건 간섭한다. 복식과 혼합복식에 출전할 선수를 감독이 결정해야 하는데 실업팀에서 선수 출전 여부를 결정하려고 대표팀을 흔들 때도 있다. 대표팀 합류시기를 발표하면 자신의 선수만 늦게 들여보내겠다고 반발하는 실업팀도 나온다. 그런 실업팀과 의견 충돌을 빚을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협회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지금은 그런 갈등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그 대립은 존재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실업팀 감독, 코치를 맡고 있어 지금은 이전보다 그 갈등의 수위가 한층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의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박주봉 감독. 연합뉴스
한국 배드민턴 관계자들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한국 배드민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박주봉 감독과 같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감독에게 도쿄올림픽 이후의 거취를 물었다.
“나도 마지막에는 한국에 가서 봉사하고 싶고 대표팀을 맡아 지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 자리는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예민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지금은 다른 데 신경 쓰고 싶지 않고 도쿄올림픽에만 집중하고 싶다.”
베트남 사격대표팀을 이끄는 박충건 감독은 박항서 감독보다 먼저 베트남에서 한류 열풍을 이끌어낸 지도자이다. 4년 전 사격 불모지였고 국제대회 메달과는 인연조차 없었던 베트남 사격대표팀을 맡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수들과 호흡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애제자 호앙 쑤안 빈이 이룬 남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 획득은 그의 지도자 인생에 정점을 찍었다. 50m 공기권총에서는 한국의 진종오와 1위 싸움을 벌이다 마지막에 무너지면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베트남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박 감독은 호앙 쑤안 빈과 함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호앙 쑤안 빈의 금메달은 선수도, 나도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호앙 쑤안 빈은 지금도 베트남의 사격 역사를 쓰고 있다. 세계 신기록을 기록한 이도 그가 처음이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도 호앙 쑤안 빈이 처음이다. 내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와 준 선수 덕분에 베트남에서 제2의 인생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 중이다.”
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현정화, 홍차옥 등과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권미숙은 현재 필리핀 탁구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지난 리우올림픽에서 권 감독은 필리핀 탁구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을 이뤄냈다. 라리바 란이란 선수를 처음으로 올림픽에 내보낸 것이다. 현재 필리핀 선수를 데리고 포항으로 전지훈련을 온 권 감독은 열악한 필리핀 훈련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남녀 대표 선수가 10명인데 훈련장에는 탁구 테이블이 두 대밖에 없다. 협회 지원이 열악한 것은 물론 감독 월급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 교민들의 도움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국제대회에 출전한다. 너무 힘든 환경이라 언제까지 이 일을 지속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를 따르고, 나한테 탁구를 배우려고 찾아오는 선수들이 있는 한 쉽게 대표팀을 떠나기 어렵다.”
권 감독은 한국에 나올 때마다 한국 선수들의 뛰어난 훈련 환경에 감탄을 넘어 부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필리핀 선수들이 이런 환경에서 탁구를 배운다면 실력이 한층 향상될 것”이라면서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고 한편으론 가슴이 아프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