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인적청산 시나리오’가 당무감사를 통해 이뤄질 전망이다. 잠시나마 가라앉았던 계파갈등이 이번 당무감사로 다시 한 번 불거질지, 21대 총선 앞두고 인적 청산의 신호탄이 될지 정치권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박은숙 기자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출범 2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다. 보수 가치를 재정립하겠다는 목표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만 할 뿐 당을 재건할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한국당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계파 갈등은 잠시 잠잠해졌지만, 국민들이 요구하는 인적 청산 수준의 혁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한국당의 지지율은 10%대에 머물며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속이 탄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 내 계파도 없고 뿌리도 없다. 그런 그가 앞으로 정치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선 국민의 절대적 지지가 필수적이다. 김 위원장의 영향력이 2020년 21대 총선까지는 미칠 수 없지만, 이번 당무감사를 통해 인적 쇄신을 보여줘야만 국민적 지지를 얻고 당내 지지기반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비박(비박근혜)계’와 김 위원장은 지금 상생하는 관계다. 비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간의 샅바싸움에서 비박계는 김 위원장을 앞에 내세웠고, 김 위원장도 자신을 뒷받침해줄 동력으로 비박계와 손잡았다.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고, 김 사무총장은 당무감사를 실행하는 중앙당 당무감사실장과 조직 정보를 관리하는 조직국장을 바꿨다. 이는 당무감사와 관련된 주요 요직을 비박계 라인으로 교체한 셈이다. 이외에도 비박계인 김성태 원내대표, 홍철호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 김세연 중앙연수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부산‧서울시당과 경기도당 위원장도 비박계 의원들로 꾸려지며 사실상 당은 비박계가 장악한 꼴이다.
결국 큰 그림에서 볼 때 김 위원장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친박계를 대상으로 한 인적 쇄신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김 위원장에게 칼을 쥐어주는 세력은 비박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당무감사를 통한 당협위원장 교체의 규모도 관심을 끌고 있다. 친박계만을 대상으로 당협위원장을 교체할 경우, 친박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계파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적다. 때문에 현재 공석인 당협위원장을 우선적으로 임명한 뒤 친박계 위원장이 있는 일부 지역을 교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TK(대구‧경북)에서 수성갑은 김문수 전 서울시장 후보가 사퇴한 곳이다. 이곳은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과 이동희 전 대구시의회 의장, 정순천 전 시의회 부의장이 3파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북구갑은 ‘이부망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정태옥 의원이 탈당하며 공석이 됐다. 북구갑은 이명규 전 의원과 함께 양명모 전 대구시약사회장도 물망에 올랐는데, 정태옥 무소속 의원이 복당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의 복당 여부에 눈길이 쏠린다.
홍준표 전 대표가 사퇴하며 공석이 된 북구을에는 서상기‧주성영 전 의원이 이름을 올렸고,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은 현재 박영문 당협위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친박계인 김재원 의원이 자리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동구을은 이재만 현 당협위원장이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키며 김재수 전 농림부 장관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경북 경산은 의사인 이덕영 당협위원장이 있지만, 그의 병원이 최근 의료사고 논란에 휘말리며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PK(부산‧경남)도 교체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이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PK지역 참패를 했기 때문에 당협 정비 차원에서 교체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경훈 전 당협위원장이 지방선거 패배 후 사퇴해 부산 사하갑이 공석이 됐다. 이외에도 서용교 전 위원장이 사망하며 부산 남구을 지역, 강길부 의원이 한국당을 탈당하며 울산 울주군도 공석이다.
김무성‧윤상직‧이군현 의원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부산 중영도와 기장, 경남 통영‧고성 지역에 당협위원장을 새로 선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아울러 당협위원장과 지역구 의원이 일치하지 않는 곳인 부산 서동(정오규 당협위원장‧유기준 의원)과 금정(백종헌 당협위원장‧김세연 의원)도 교체 가능성이 점쳐진다.
앞서 한국당 초선 의원 14명은 “재창당 수준의 당의 개혁과 혁신, 그리고 새 출발을 위해 자기 희생을 담은 전면적 쇄신을 촉구한다”면서 “이를 위한 실천적 노력으로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백의종군한다”고 밝혔다. 당협위원장직을 자진 사퇴한 것이다. 장석춘·송언석·김규환·김성원·김성찬·김성태(비례)·김순례·문진국·성일종·이양수·이은권·이종명·임이자·정유섭 의원이 그 인물이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현역 의원들이 결의를 보여준 것은 고마운 일”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현 당협위원장도 아닌 김순례‧이종명‧김규환‧임이자 의원이 사퇴 명단에 이름을 함께 올렸다는 점에서 특별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또한, TK 지역구를 둔 의원들 가운데 송언석(경북김천) 의원 단 한 명만이 당협위원장 사퇴 서명에 이름을 올렸을 뿐, TK 지역구 의원들 단 한 명도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점을 두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신경전을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한국당 당무감사의 기준에 대해 두 가지를 제시했다. 전 평론가는 “당협 활동을 제대로 안 했거나 지방선거에 기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사퇴시키는 것과 한국당이 지향하는 당의 강령과 철학에 위배되는 사람을 추려내는 인적청산으로 나눌 수 있다”며 “전자는 큰 이의제기가 없을 것이고, 후자는 당내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정치력과 내부 권한 등이 작동될 수 있는지, 주체적인 역량과 당의 개혁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객관적인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만 인적청산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14명의 의원이 자진사퇴한 것에 대해선 “이들이 자진사퇴를 한 것은 정치적 위험이 큰 건데, 당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당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실행한 것”이라며 “선언 자체로서의 의미는 있지만, 당 쇄신에 다수 의원들이 동참한다는 흐름을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당무감사가 ‘친박 대 비박’의 구도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선 “이는 친박과 비박의 문제보다는 ‘개혁 대 반개혁’이다. 개혁을 하기 위해선 친박과 비박의 논쟁이 아닌 쇄신에 대한 ‘적합과 부적합’으로 강력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김 위원장은 이번 임기에서 당무감사가 (성적표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제대로 된 적합과 부적합 기준을 마련하고 당무감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당 내부가 아닌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