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트랙 선수 노아름. 사진=일요신문 DB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의 관리단체 지정 여부를 두고 빙상발전TF(Task Force•특별임시조직)를 발족해 8월부터 최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회의를 가졌다.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현 집행부는 모두 사퇴하고 대한체육회가 정상화까지 조직을 대신 관리하게 된다. 빙상연맹은 2004년 폭행 사건이 불거진 이래 비정상적인 운영으로 4년에 한 번인 동계올림픽 때마다 국민의 지탄을 받아 왔다. 올 초 있었던 문체부의 감사 뒤 관리단체 지정 권고를 받았다.
김인수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장을 위원장으로 고석봉 전 국가대표 쇼트 트랙 코치, 권복희 강원도빙상경기연맹 회장, 김현기 스포츠서울 기자, 쇼트 트랙 선수 노아름, 박선예 대한체육회 법무팀장, 쇼트 트랙 선수 안현수 부친 안기원 씨, 여준형 전 국가대표 쇼트 트랙 코치, 이명실 빙상 원로 대표, 정용철 서강대 교수, 전 쇼트 트랙 선수 조해리, 허정훈 중앙대 교수 등 위원 12명이 빙상발전TF를 채웠다.
빙상연맹의 관리단체 지정 찬반을 두고 위원 12명 가운데 고석봉 코치와 노아름, 권복희 회장, 이명실 대표 등 4명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고 코치와 권 회장, 이 대표 등 빙상계 기득권층이나 수뇌부의 반대는 이해가 갔지만 현직 선수 노아름의 반대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게 대다수 빙상 선수의 반응이었다. 이제껏 가장 큰 피해를 받아 온 건 모두 빙상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노아름은 일각에서 계속된 빙상연맹을 향한 성토가 실력 없는 선수의 자격지심이라고 말하거나 국가대표 대부분이 빙상연맹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8월 2일 1차 회의에서 “저는 현재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 보고 느껴 왔다. 빙상연맹이 이렇게 된 점에 대해 잘 하는 선수, 못 하는 선수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가리켜 ‘특혜를 받았다’, ‘빙상연맹 울타리 안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한다. 더 발전할 수 있는 건 선수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6일 3차 회의 때에는 “연맹이 관리단체로 넘어가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지금 이대로가 좋은지 국가대표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다 물어봤다. 사실 선수들은 연맹에 대해서 편한 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해외 시합에 참석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재정적인 문제도 없었다. 빙상연맹은 부족한 점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제껏 나온 문제점을 보면 선수에게 방해가 된 건 외적인 부분이 많았다. 한 사람의 독단적인 권력 때문에 선수 발전이 없었다는 식의 의견이 많았다. 대표팀에 들어가 있는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런 회의를 통해서 빙상연맹이 관리단체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아름의 발언은 거짓이었다. ‘일요신문’은 19일 오후에 쇼트 트랙 국가대표 전체에게 전화를 돌렸다. 현재 진천에서 훈련하고 있는 쇼트 트랙 국가대표 16명 가운데 노아름 본인을 제외한 15명은 “노아름에게 빙상연맹 관리단체 지정 관련 찬반 의견을 말한 적 없었다”고 한 입 모아 말했다.
이런 노아름의 이상한 행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전명규 한체대 교수의 특혜를 받았다고 알려진 노아름이 전 교수의 사주를 받고 이러한 발언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아름은 몇 해 전 국가대표 코치와 불미스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전 교수의 제안을 받고 사건을 덮는 조건으로 빙상 실업팀 전북도청에 편히 갔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노아름과 문제를 일으켰던 국가대표 코치는 전 교수의 조교 출신이었다. 현재 한체대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전 교수의 최측근이다. 전북도청 감독 역시 한체대에 자주 들리는 전명규 교수의 측근이라고 전해졌다.
특혜 의혹은 이 뿐만 아니었다. 한체대 옛 조교에 따르면 한체대에 입학한 빙상 선수는 전명규 교수의 지시에 따라 졸업 때까지 최소 4번 이상 한체대 소속으로 전국동계체전에 나가야 한다. 교수에겐 소속 선수의 전국동계체전 성적이 곧 실적인 까닭이다. 노아름은 2014년 2월에 열린 4번째 전국동계체전 때 한체대 소속이 아닌 전북도청 소속으로 대회를 참가했다. 성적 포상금을 받으면 스스로 챙길 수 있게 전 교수가 노아름을 풀어준 것 아니냐는 말이 빙상계에서 흘러 나왔다. 한체대는 대회 성적이 좋아도 별다른 포상금을 배정하지 않지만 실업팀은 소속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포상금을 준다. 이런 광경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는 게 한체대 옛 조교의 증언이었다.
이에 대해 노아름은 “빙상연맹 관리단체 지정 관련 내용 말도 안 하고 다녔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전명규 교수를 최근에 본 적도 없다”고 처음에 말했다가 말을 바꿔 “난 한 번도 개인적으로 전 교수가 선수들에게 맘대로 뭘 한다고 느껴본 적 없다. 빙상연맹 관리단체 지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빙상연맹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고 나서 국제대회가 취소됐다. 지원도 줄어든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노아름의 해명은 이제껏 빙상연맹 쪽과 지도자 사이에서 퍼졌던 유언비어와 궤를 같이했다. 이는 거짓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관리단체로 지정된 모든 연맹이나 협회는 정상적으로 국제대회에 빠짐 없이 나갔고 지원도 아무 문제 없이 나간다. 국제대회 못 나간다느니 지원이 어려워 질 거라는 건 유언비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물론 2018-2019 시즌 서울에서 열릴 계획이었던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와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가 취소되긴 했다. 이는 돈 몇 천만 원 쓰기 싫어했던 빙상연맹 탓이라고 전해졌다. 대회 취소와 관련해 빙상연맹 관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안전 펜스 규정이 변경되면서 기존에 서울에서 대회를 열고자 했지만 바뀐 안전펜스 규정에 맞춰 대회를 열 수 있는 곳은 강릉 아이스 아레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빙상계 인사는 이를 두고 “유리 펜스를 제거해야 새로운 규정에 맞다. 한 100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 허나 그 돈을 선뜻 내줄 지자체는 없다. 이사회에서 ‘누가 내주겠냐’는 식의 논의를 계속하다가 결국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원 예산 또한 축소되는 건 사실이다. 다만 큰 규모가 아니다. 게다가 새 회장사가 들어오면 그만이다. 삼성그룹은 1년에 17억 원씩 빙상연맹을 지원했다. 17억 원이 커 보이지만 빙상연맹 연예산이 50억 원 정도였던 시절 이야기다. 2018년 빙상연맹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빙상연맹 전체 예산은 약 120억 6742만 원이다. 삼성그룹의 지원이 끊겨도 빙상연맹 예산은 14% 정도만 깎이는 셈이다.
더군다나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돈 먹는 하마였던 빙상연맹의 사조직 상임이사회 유지 비용과 삼성그룹 출신 직원에게 투입됐던 인건비 등 행정 비용이 감소한다. 빙상연맹은 전명규 교수가 부회장으로 복귀했던 2017년 초부터 정관에도 없는 상임이사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수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회의 참가비용으로 나눠 먹거나 전화비로 썼다. 이런 비용만 줄여도 삼성그룹 없이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게 빙상인의 주요 목소리다. 더군다나 최근 기업 두세 곳이 빙상연맹 회장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회장사가 생기면 지원 축소는 아예 없다.
노아름은 전명규 교수와의 은폐 조건부 전북도청 입단 거래 의혹에 대해서 “나는 그 당시 성적이 좋았다. 전북도청 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전 교수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빙상발전TF 거짓 발언과 전북도청 소속으로 2014년 전국동계체전에 나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