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식 일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치권에서는 친문 실세그룹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크게 운동권 그룹, 광흥창팀, 시민단체 그룹, 친문 성골 의원 등으로 나눈다. 몇몇 인사는 이렇게 나눈 그룹에서 겹치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문재인 정부에서 입김이 가장 센 실세 그룹의 현황을 취재해봤다.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하는데 캠프 출신보다는 운동권 출신인 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캠프 출신 중에서도 공교롭게도 운동권 경력이 있는 인사만 더 잘 발탁되는 것 같다.”
민주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운동권 출신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문재인 정부 내각과 청와대에는 ‘운동권 출신’이 약 35%가 될 만큼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운동권 출신의 배경에는 명실상부한 청와대 2인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는 문 대통령과 큰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뒤에는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문재인 정부 최대 중점 사업인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준비위원장을 맡아 문 대통령의 높은 신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번 인선으로 다시 한 번 문재인 정부 최고 실세라는 세간의 평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흔히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가 일정 관리나 수행 등 흔히 아는 ‘비서일’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부속실에서 하는 일이다. 비서실장은 청와대 내 각 수석실을 관할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는 신뢰가 없으면 맡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전설적인 운동권 출신이다. 이외에도 수석급에서 대표적인 운동권 그룹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한병도 정무수석과 정태호 일자리수석이 있다. 한 수석은 원광대 총학생회장 출신, 정 수석은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2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8월 홍보기획비서관에 새롭게 발탁된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도 성균관대 운동권 출신이다. 그는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대변인실과 연설기획비서관실을 거쳐 ‘마지막 춘추관장’을 거쳤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언론담당을 맡아 ‘안철수 사람’으로 꼽혀왔기 때문에 이번 청와대 발탁을 두고 누가 추천했는지 관심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 한 핵심관계자는 “대선후보로도 꼽혔던 A 도지사가 추천했다고 들었다”며 “다만 유 비서관을 두고 캠프 출신에서는 화가 많이 났다. 캠프 출신 대신 저 분을 꼭 써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 했다”고 귀띔했다.
오래전부터 실세그룹의 요람으로 주목받던 곳이 광흥창팀이다. 광흥창팀은 문재인 최고 핵심으로 꼽혔던 ‘3철’ 중 한 명인 ‘양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광흥창팀은 2016년 10월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 준비를 위한 실무팀을 이르는 말이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잡아 광흥창팀으로 불린다.
청와대 핵심 중 이곳 출신이 많다. 앞서의 임종석 실장을 비롯해,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한병도 정무수석, 제1부속비서관에서 자리를 옮긴 송인배 정무비서관, 의전비서관에서 자리를 옮긴 조한기 제1부속실장, 지난 7월 새롭게 임명된 김종천 의전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조용호 국정기록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이 모두 광흥창팀으로 꼽힌다.
또한 지난 5월 임명돼 낙하산 논란이 일기도 했던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신임 사장도 광흥창팀 출신이다. 13명으로 꼽히는 광흥창팀 멤버 중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 직을 받지 못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광흥창팀을 꾸린 양 전 비서관 한 명뿐이다. 양 전 비서관은 스스로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참여연대도 또 다른 성골로 통한다. ‘만사참통(모든 일은 참여연대로 통한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 현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참여연대 출신은 특히 금융 쪽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야당의 파상공세를 받고 있는 장하성 정책실장도 참여연대 출신이다. 참여정부는 대표적인 정책실장의 입김이 셌던 정부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도 정책실장에 힘이 실린다고 알려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대표적인 참여연대 인물이다. 지난 4월 낙마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도 참여연대 출신이다. 김 전 원장은 당 내 진보·개혁 성향 의원들의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를 이끌며 당 내 브레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시민단체 출신은 이외에도 다수 포진해 있다. 8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들끓으면서 신설된 자영업비서관 자리에 임명된 인태연 자영업비서관도 시민단체 출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 비서관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 한국 중소상인 자영업자 총연합회 회장을 거쳤다.
당에서는 단연 친문 직계 인사들이 실세그룹으로 분류된다. 박범계, 손혜원, 황희 의원 등이 의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문 대통령을 지지해와 ‘성골 친문’으로 꼽힌다. 반면 8·25 민주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이른바 ‘신친문’의 시대가 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친문 핵심 중 핵심으로 꼽혔던 ‘3철’의 전해철 의원이 김진표 전 당 대표 후보를 밀었으나 꽤 큰 차이로 3위로 떨어지면서 체면을 구겼다. 지난 지방선거 송파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국회로 돌아온 최재성 의원도 ‘친문 복심’임을 강조했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이야기도 들린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도 최재성 의원이 친문 복심을 강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들었다”며 “실제로 복심이라해도 그럴 뿐만 아니라 만약 복심이 아니라해도 ‘최재성은 복심 아니다’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떤 쪽이라도 청와대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어느 쪽이 실세인지, 누가 더 파워풀한지는 집권 3년차로 가면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차기 대권을 두고 눈치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서로 다른 그룹이 이합집산을 통해 소속 그룹에 유리한 대권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집권 2년차부터 하나의 코드로 묶일 만큼 획일화된 인재풀, 그에 따라 실세 논란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와대 인선을 보면 뻔한 우물에서 물을 구하다보니 운동권, 참여연대, 참여정부 출신 등 특정 그룹 인사만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체계적인 충원 시스템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한 쪽으로 쏠릴 수 없다. 인재 데이터베이스가 굉장히 협소하고 충원 구조가 시스템적으로 돼 있지 않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실세그룹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증거다. 실세는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다는 뜻인데 대통령이 제왕적이지 않다면 실세라는 말이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